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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Mar 04. 2022

꾸릉내 나던 도시락 반찬, 콩잎 김치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국민학교 2학년 초겨울 즈음, 저녁 밥상에 처음 보는 반찬이 올랐다. 깻잎 김치랑은 다른데 특유의 맛이 너무 좋았다. 이건 뭐냐고 물으니 할머니가 "콩잎파리"라고 하셨다. 내일 학교 도시락 반찬으로 싸 달라고 했었다.


학예회 준비를 하는 시기였나 보다. 반 친구들이 모두 있던 것은 아니고 교실에 드문드문 앉아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누군가 "야 어디 도시락에서 꾸릉내가 난다아!!"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발랄한 9살들은 밥 먹던 것도 제쳐두고 냄새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교실 한 바퀴를 돌아본 결과 냄새나는 도시락은


아... 내 도시락이었다. 전날 저녁 너무 맛나게 먹은 그 반찬에서 나는 냄새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놀리기 시작했고, 나는 눈물이 났다. 왈가닥 여자애가 울음을 터뜨리자 당황했던 짝꿍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먹보 여자아이는 "니 도시락 반찬에 오뎅 볶음 내 주면 용서해줄게"라고 했고 착한 짝꿍은 본인의 반찬을 선뜻 내어주었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친정집의 밥상에 콩잎 김치가 오르면 우리 아빠는 꾸릉내로 시작해 어묵 볶음으로 끝난 그날의 이야기를 하시며 웃으신다. 자식을 키워보니 반찬에서 냄새가 나 놀림을 받고 울었다는 말에 내려앉았을 가슴도, 다른 반찬을 얻어먹고 용서해줬다는 딸의 말에 웃기기도 짠하기도 했을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다.


다른 지역에서는 잘 먹지 않는다는 콩잎을 경상도에서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다. 콩잎이 푸르고 연한 여름에는 물김치를 담가 먹거나, 간장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다. 친정 엄마는 콩잎을 넣고 전을 부쳐주시기도 한다. 콩잎이 억세지고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단풍 진 콩잎을 거두어 소금물에 몇 날을 삭히고 먹기 전에는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담가 짠 기운을 뺀다. 그런 다음 한 장 한 장 양념을 발라 콩잎 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양념을 너무 많이 바르면 짜고, 적게 바르면 싱겁고 맛이 없다. 서너 장씩 묶어서 양념을 바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가운데 있는 콩잎은 맛이 없다. 수고와 노력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하지만 소금물에 삭힌 채소인 데다가, 양념에 쿰쿰한 젓갈이 듬뿍 들어가니 어린 아이들의 코에는 "꾸릉내 나는"음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따로 방을 얻지 않고 졸업을 할 때까지 이모 댁에서 지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집에 왔는데 이모가 콩잎 김치를 갈무리하고 계셨다. 마산 외가에 다녀오시는 길에 외할머니가 서울 유학 간 외손녀 먹이라며 보내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잘 먹던 반찬인데 서울서는 구하기 힘들다며 한 장 한 장 양념을 발라 담그셨을 나이 든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조카가 잘 먹는 반찬이라는 말에 마산에서 고속버스에 실어 서울까지 올라왔을 이모의 여정을 생각하니 죄송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이제 나이가 드셨는지 음식이 좀 짜게 되었다며 멸치 육수를 새로 내어 갈무리를 하고 있는 이모 옆에 찬 밥 한 공기를 들고 앉아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식은 밥에 김치 하나뿐인 저녁 상이었지만 주린 배도, 타향에서 지내던 외로운 마음도 채워졌던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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