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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Oct 05. 2024

네임펜 2개

합숙훈련 동안 나는 동기 J양와 같은 방을 썼다.

(J양 기억해 주세요! 다음화에 또 등장합니다^^)


수다쟁이다 나는!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살아온 것을 만회하려는 것처럼

한 번 터진 말문은 쉽게 닫힐지 몰랐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말을 언제 해봤어야 말이지..

뒤늦게 터진 말문에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담아둬야 할 얘기도, 저 깊숙이 묻어놔야 할 비밀도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내뱉고 있었다.

 J양동생이지만 정말 내 말을 잘 들어줬다.

결혼도 안한 미혼이 시댁얘기며 울 아버님 뒷담화가

뭐그리 재밌었겠냐만은

잠도 안자고 넘쳐나는 리액션으로 나를 고조시키게 만들어 우리는 새벽까지 늘 이야기꽃을 피웠더랬다.

J양은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랑 언니랑 산단다. 엄마가 너무 그립단다.

나를 보니 엄마가 생각나서 너무 좋다며..

(J양! 어머님이 한 미모하셨나봐~ 나랑 많이 닮으신 걸 보면 ㅋㅋㅋㅋㅋㅋ)

김장 때 김치 한 통 담가서 언니가

엄마처럼 가져다 줄께~ J양!!



그렇게 짧고도 긴 교육을 마치고 출근 한 날!!

늘 쌩~하던 도우미 언니도 내가 보고 싶었나베??

눈이 반달처럼 둥글어 지는거 다봤음!! ㅋㅋㅋ아닌척 하기는ㅋㅋ 물론 공익 한솔군이 젤루 반겨줬고

서사수님은 늘 그렇듯! 손으로만 휙 안녕!했다.


나 없는 사이 선풍기를 뺐나보다.

근데...

없다! 내 꺼는..

행정쪽 주사님들은 1인 1선풍기인데

우리쪽(사회복지)은 4명이서 1대??


“주사님!  왜 우리는 선풍기가 1대 밖에 없어요?”


사수님께 물었더니


"난 선풍기 바람 싫어해!"


아니! 그건 개취(개인취향)니까 알고 싶지않고  

제꺼 선풍기 말이에요!

도우미 언니꺼는요?

장애인 도우미꺼는요???

 

동사무소는 덥다.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선풍기 없이는

여름을 견뎌낼 수가 없다.

늦은 나이에 입사했음에도 워낙 오래

근무하신 주무관님들이 많아 내가 막내다.

같이 근무하는 작은 동사무소지만 잘 보면 뭔가 흘러다니는 권력?힘싸움? 이런 게 있다.


정확히 말하면 행정이랑 사회복지가 나눠져 있다.

지금은 사회복지쪽행정쪽 각각의 사무장님이 따로 계시지만 내가 근무할 때만 해도

동사무소 살림을 관장하는 총무님이며 사무장님들이 행정쪽 주무관님들여서

사회복지쪽으로는 뭔가가 인색하다.


민원대 앉아계신 주사님들(여자 3분)은 1인 1선풍기로 시원하게 근무하고 계신데

나는..덥다.

회전을 해도 바람이 안온다.

저 아름다운 사수 양반을 그냥!

자기 더위 안탄다고 배정받은 선풍기까지 다 줘버리면

나랑 나머지 사회복지쪽 식구들은 우짜라고...


진짜 확마!! 오늘 한 번 하극상 제대로 보여줘부까 어찌까..


아참!

나 시보였지?

(공무원 입사 후 6개월 동안은 시보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일종이 인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보라고 해서 다른 특이사항은 전혀 없고 6개월 동안 근무성적이 부진하거나

불량할 시 짤릴 수 있다!)

조심하자 나는 시보니께 몸사려야지..참는다 내가 진짜!

이런 시~~보(욕처럼 발음해봤어요!ㅋㅋ)



제일 왕고참 행정 주사님께서 내가 딱해 보였는지

아님 땀을 너무 뻘뻘 흘리고 있어서 짠해 보였는지

본인 선풍기를 선뜻 내주셨다. 안 받고 싶어도 내 손이 벌써 덥석 선풍기를 안아버렸네? 감사합니다~

집에 작은 선풍기 있으니 그거 가져오면 된다며 괜찮다고 하신다. 얼마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했는지 원...

좀 창피했다. 이게 다 사수님 때문이! 찌릿!


덥다고만 해봐라 사수님!!

선풍기 바람 0.0000001%도 안 나눠줄꼬다 진짜!!

도우미 언니랑 나만 써야지 흥!



장애인주차표지판  걸 내가 쓴다. 손수!

(장애인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그거!) 

네임펜으로다가..


숫자를 칼각으로 써야해서 자 대고

A4용지에 엄청시리 연습했어도...

실제 주차표지에 쓸라니! 

떨린다...

 후들 후들 하는게 보였나 도우미 언니가 약간 삐져나와도 재빠르게 지우개로 지우면 된다며 그만 떨란다.

책상 흔들린다고..

(근데 왜이리 딱달라붙어 지우개 대령하고 있는거야? 언니도 긴장했지? 틀릴까봐? ㅋㅋ )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쓰려는데..

? 네임펜이 안나온다...

민원인 분께서 다른 볼일이 있으시다며

조금있다 찾으러 오신다고 했으니 망정이지...

도우미 언니한테 네임펜 어딨냐고 했더니 총무님께 사달라고 해야 한단다.


“총무님! 저 네임펜이 필요한데 사주세요! 종류별로 필..


“동장님께 직접 말씀하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쌩 하신다.

네? 네임펜 이거를 동장님께 사달라고 말씀드리라고요?

총무님도 행정쪽 주무관님이시다. 

뭐여 이거 사회복지라고 차별하는거여 지금?


저번에 볼펜도 떨어졌다고 하니깐 집에 있는거 갖다 쓰라더니.

이제는 네임펜 까지??

원래 공무원들은 사무실에서 쓸 사무용품을 본인 돈으로 직접 사나?

아직 월급도 안받았는데??

일단 얼른 문구점에 뛰어가 네임펜을 사서 주차표지판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후


동기들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너희들도 네임펜이며 볼펜이며 다 자급자족하냐?’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며 공용 서랍에 사무용품 꽉 차

있다며 필요한거 알아서 가져다 쓰면 된단다.


이게 무슨...

혼란스러웠다. 총무님 얼굴을 한 번 쳐다봤다.

아까보다 더 화가 잔뜩 나 보이신다.

물어볼까 하다 그냥 말았다.

동기들과 총무님의 엄청난 뒷담화로 화를 날려버렸다.

사수님은 또 사수님대로 난리셨다.

누가 사무실 용품을 본인 돈으로 사오라했냐며

나한테 소리를 지르시고.

(총무님 들으라고)

이쯤되면 내가 동네 북이 아니아니

동사무소 북이 아닐까 싶다...




더 큰 사건은 다음 날 터졌다.

사수님이 장애인서비스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중요한 서류이기 때문에 무조건 등기로 보내야 한다.

(양이 많아 등기비만 총 30만원 가량)


근데..

총무님이 절대 안된다며 이번에 진짜 무섭게 소리를 지르셨다.

동장님께 직접 확인 받지 않고서는 절대 등기는 불가란다. 왜 저러시지?

등기로 보내야 한다고 법령집에도 나와있는데...

(제가 공부좀 했죠 ㅋㅋ)


그날 오후!

동장님 실에서 총무님과 동장님이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캐비닛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물론 동사무소에는 민원인들도 계셨다.

주사님들이 놀래서 뛰쳐 들어가니 총무님이 캐비닛을 주먹으로 쳐서 넘어지는 바람에 동장님실 화분이며 컴퓨터며 아주 난리가 났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동장님이 무조건 사무실 운영비를 아끼라고 족을 치니 총무님이 너무너무 힘드셨다고..

본인은 최선을 다해 아껴도 동장님은 계속 압박을 가했고 급기야는 총무님께 니가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는거 아니냐며...막말을 하셨고.

총무님이 참다참다 폭발을 하신거다.


주사님들에 이끌려 총무님은 강제 퇴장하셨고 얼마 후 노조(노동조합)에서 나왔다. 동장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총무님에 대한 조사도 진행됐다.

와~ 사무실 분위기 숨이 막히는 구나! 안그래도 더워죽겠는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총무님(남)은 마음이 여린 분이시란다. 대가 쎈 동장님이랑 부딪힐까봐

총무직을 안 맡고 싶어하셨으나

어쩔수 없이 떠맡게 되셨다고..동장님은 사무실 운영비로 본인이 써야할 부분을 늘려달라 계속 요구했고 총무님은 사무실에 써야할 정당한 돈으로

동장님 주머니를 늘려드릴수 없다며 맞섰다는 것..


얼마 후 동장님은 징계 후 퇴직을 하셨고 좀 더 밝은 모습의 총무님을 볼 수 있었다.



더워서 선풍기를 끌어안고 잠시 쉬고 있는데

총무님께서 갑자기 나한테 뭔가를 쓰~윽 내미셨다.


“그땐 미안했네..이거 하나 못사줘서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사무용품 필요한 거 있음 말해! 다 사줄게!!”



사람좋게 웃고 계신 총무님이 내민 건 네임펜 2개였다.


같이 일하는 조직에서 행정이며 사회복지가 어딨겠습니까 같은 나랏밥 먹는 사람들인데요 제가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총무님!!

그리고 동기들하고 뒷담화도 그날 쬐~끔 했습니다

그 뒤로는 절대 안했습니다 맹세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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