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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Oct 12. 2024

나는야 9급(나부랭이) 사회복지공무원

오늘도 나는 한솔이(공익)랑 정장 쫙 빼입고(스판 3% 함유)얼핏 보면 구두처럼 생긴 운동화(검정색)를 신고 출장에 나섰다.


저의 도움이 필요하신 곳이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동사무소 바로 근처 사시는 독거노인(할머니)이신데

부양하는 아드님도 있고 해서 복지서비스 대상자는 아니다.


옛날 미닫이 나무문 아실랑가?

가게도 아닌 같은 곳에나 달려있을 법한 그런 나무문..


2평 겨우 될까말까한 그 빵 나무문 유리 사이로 할머니 한분이 같은 자세로 앉아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 눈빛이 나를 부르시는 것만 같아

어느 날인가는 퇴근하는 길에 인사라도 드릴까 하고 찾아갔더니 세상 뻑뻑한 나무문을 밀고 나오셔서 반갑게도 맞아주신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 요앞 동사무소 직원이에요. 혹시 어디 불편하시거나 그런건 없으세요?”


물었더니 조용히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주시며 내 손을 쓰윽 잡으신다. 담배랑 우유 정도 판매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이 전빵 안쪽에 있는 방한칸에 살고 계신데 화장실이 고장났단다.

아 그러시냐고 그럼 제가 주인분에게 말씀드려서 고쳐달라고 하겠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왜요 어르신? 화장실이 고장났으면 급할 땐 어쩌실라고 그러신대요?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볼일을 보셨대요?”


근처 노인정도 갔다가 아는 지인집도 갔다가 하셨다며...본인은 괜찮다고 절대 집주인한테 말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어르신 왜요? 집주인 성질이 안좋아요? 험한 말 들으실까봐 그러세요?”


“아니여~ 나같은 늙은이한테 여그서 담배도 팔 수 있게 해주고 을매나 좋은 사람인디 이것저것 귀찮게 하믄 쓰것는가? 쫓겨나제...

방세도 안받아~ 원래 집주인은 죽고 아들이 인자 주인인디 서울 살아서 여기도 잘 안와~

 집 관리해주면서 그냥 꽁짜로 얹혀사는 거여.

그란디 으뜩해 화장실을 고쳐달라 한당가..“


그럼 일단 그 문제의 화장실을 한 번 봐야겠다.

흠.. 심각했다.

수리로 끝날 게 아니라 아예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야 할 판이다.


“어르신! 그럼 제가 어르신 아드님이랑 통화라도 한 번 하면 안될까요?”


절대 안되신단다.

입때껏 도움 한 번 제대로 못주고 밥만 안 굶기고 겨우 키워준 죄인인데 이제와 어떻게 화장실을 고쳐달라고 하냐며 소스라치게 놀라시는 거다.

바쁠 텐데 요구르트 다 마셨으면 나보고 그만 가란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왔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실 못가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주변머리 없는 할머니 성격으로 봤을땐 근처 노인정 화장실을  이용한다 쳐도 10번 갈거 참고 참다가 1번에 압축해서 가셨을 게 자명했다.


어르신을 안심시키면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은...음..

다시 뒤돌아 나무문을 열어젖혔다


“어르신! 바로 앞이 동사무소니깐 급할 땐 달려오셔!! 화장실 개방 화장실이에요. 우리 동네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니까 참지 마시고 아셨죠?

참으면 병나요!! 글믄 병원가서 줄달린 주사도 맞고 해야되니까 아드님이 걱정하실 거에요.

꼭 참지 말고 바로 오셔야 해요! 아셨죠?“


“진짜? 아무나 이용해도 된대?” 환한 얼굴로 물어보신다.


“그럼요~ 여기 근처 사시는 분들 다 오셔서 볼일보고 손도 씻고 그러고 가시는 걸요. 그러니깐 참지 말고 오셔요.”


그러마 하신다.


하~ 근데 동사무소 문 닫을 시간이 또 문제네.

암튼 일단 절반은 해결!

어르신이 동사무소 문 열린 동안이라도 자주자주 오셔야 할텐데...일지를 쓸까부다.


어르신 화장실 사용 일지 ㅋㅋㅋ




교육 받을 때 꼭 지켜야 할 사항 중에 이런게 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친모보다 더 울지 않기!! (동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뭐 완전 잘해낼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친모보다 더 울기야 하겠어?암암 그렇고 말고!


통장님이 짠한 집이라며 혹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하신 사례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은 구청에서 부여한다.

신청 전에 그래도 뭘 더 해드릴게 있을까 싶어 오늘 방문하겠노라 약속을 해놨다.


H군은 중2 남학생이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에 일은 안하고 사고만 쳐대는 바람에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고 친할머니 댁에 살고 있다.

친할머니 마저 연로해서 H군의 실제 보호자는 미혼인 고모다.

오늘은 그 고모와의 상담이다.

H군의 등교시간에 맞춰 방문했고 몹시 어두운 표정의 고모가 나를 어색하게 맞아줬다.

40대 후반의 고모도 허리디스크로 몸이 좋지 않아 일을 계속 쉬다가 H군의 양육비를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아빠는 양육비는 커녕 사고만 치고 돌아댕기고

엄마라는 인간은 아들이 어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연락 한통 없다며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혼도 안한 고모가 사춘기의 절정인 중학생 H군을 도맡아 키울려니 힘들기도 하겠구나 싶어..


“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하고 넌지시 위로를 전하니


“제가 힘든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허리 그까짓거 주사 맞아가며 일할 수 있어요. 근데..H가 점점 말도 없어지고 학교 적응도 못하는 것 같아 고모로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렇네요.

이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 하면 제가 덜어주고 막아줄 수 있을까요?

친부모는 아니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키워주고 싶어요.

나라 도움 같은 거 애 기죽을까봐 안받을려고 했는데..그래도 그건 제 생각이고 조금이라도 H에게 도움이 된다면 받겠습니다.

혹시..정신상담이나 마음치유 같은 게 있으면 꼭 좀 받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하시며 내 손을 꽉 잡으시는 거다.


내 예상이 빗나갔다.


이모는 몰라도 ‘고모’이미지는 이게 아닌데...

흘리는 눈물의 속뜻은 내가 결혼도 안했는데 오빠네 중학생 아이를 떠안아 이렇게 개고생 중이다...요런 스토리였는데...

시..나는 B급..속물...


너무 서럽게 우시니 아..이러면 안되지만..나도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몇 번 찍어내고 눈에 힘도 줘봤지만 ...무쓸모..

또르륵 흘러내릴 찰나에 나도 모르게 그만 벌떡 일어나 버렸다. 고모님도 한솔이도 놀라서 나만 쳐다보고...(머쓱)

고모님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꼭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보겠노라며 큰소리로 외치고 후다닥 나와버렸다.




나와서 엉엉 울었다.코까지 팽~ 풀어가며..

한솔이가 으이구! 가지가지 한다...라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쳐다보더니

그래도 그칠때까지 아무말도 않고 기다려준다. (츤데레 같은 짜식! ㅋㅋㅋ)



퇴근 시간도 미루고 보고서를 일단 작성하고 무슨 도움을 드릴까 엄청 찾아봤다.

그때 마침! OO전자에서 저소득 자녀들에게 주는 장학금 신청이 눈에 들어왔다.(100만원 상당)

구청 담당 나으리께 이러한 사례자가 있다고 말씀드리니 신청서를 써서 보내달라신다.

구구절절 애달픈 사연과 함께 신청서를 작성해서 전송해 드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늦은 퇴근을 하려는데


동기 J양이 울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왜? 뭔일이여? 민원인이랑 싸웠어?”


“언니~ 나 구청으로 발령났어! 그것도 장애인과!


기피부서다.

민원의 정도와 업무 이해도가 높아 우리같은 초짜들이 맡을 일도 아닌데 뭔 정기 인사도 아니고 동에서 근무 잘하고 있는 2개월된 신입을 구청으로 투입한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당장 만났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개진 J양은 내일부터 바로 구청으로 출근이란다. 우리가 뭐 이삿짐이냣!

본인의사도 묻지 않고 어찌 하루아침에 부서를 이렇게 막 옮긴단 말인가!

구청 장애인과에 근무하시던 주무관님이 갑자기 병가휴직을 내는 바람에 비는 인원을 동에서 착출했다고..


“혹시 총무과에서 연락왔었어? 구청으로 옮겨야 된다는 뭐 그런..”


아니란다. 본인도 모르고 사수님도 모르는 인사가 그냥 전자문서 1장으로 띡!하고 날라왔다며..

동장님만 알고 계셨던 듯 한데 알려주시지도 않고 퇴근해 버리셨다고 한다.


아무리 시보라도 그렇지 우리도 사람인데 어찌 이런 인사가 있단 말입니까?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닌 오늘 나의 하루도 무시당한 것만 같아 온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당장 노조를 찾아가? 감사에 연해서 고충을 토로해?


물건이 아닌 사람이니까 2개월이지만 적응하려고 나름 무진 애쓰고 최선을 다했던 신입사원에게 의사는 물어봤어야 했다.

아니면 전자문서로 발송하기 전에 최소한 유선상으로라도 알려줬어야 했다.


이게 다 힘없는 9급 나부랭이 시보라서 그런거다

이런 시~~~~~보~~~~~~~~~



그나저나 담배(파시는)어르신 화장실은 안가고 싶으실까?

급똥이면 큰일인데..아니지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동기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위로를 해줘야지 오지랖은..



그때 문자가 왔다

발신자는 아까 보고서 올린 구청 나으리!

H군 사정이 딱하니 이번 장학금 신청에 선정될 것 같다며!


악!! 오예~

하고 소리 지를뻔..

.

.

.



J양! 진짜 미얀~

언니가 어깨춤 한 번만 추면 안될까?

(내적으로다가 조신하게 딱 한 번만 튕길께~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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