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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유민 Sep 20. 2024

가을 궤도 센터

<우주의 삼차원> 1부 제1우주. 1장

 방금 지구가 내 앞을 지나갔다.


 금방이라도 덮칠 듯이 다가온 지구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이다. 그 뒷모습은 더 빠르게 사라진다. 왠지 모르게 아쉽다.


 지금은 2999년, 내가 지구의 공전 궤도 엔지니어로 일한 지 벌써 십 년째다. 행성이 궤도를 따라 정상적으로 공전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궤도 엔지니어로서의 삶은 나쁘진 않다. 적어도 지구에서 사는 것보다는 낫다.


 온 세상이 암흑인 우주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잊게 만든다. 궤도 센터 내의 전자 달력이 없다면 ‘시간’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렸겠. 지구에서 살았던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을 금처럼 여기는 세상이었는데. 다행히 나는 매일 근무 전, 아무 의미 없는 달력을 확인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제 시간은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


 오늘은 11월 29일. 지구에서 내가 살던 마을에는 찬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지고 나무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을 때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남겨두고 곧 다가올 연말 분위기에 설레기도 할 11월 말. 방금 지나간 지구를 보니 그 행성에서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


 "지구가 가을 센터를 정상적으로 지나갔습니다."


 나는 지구가 궤도를 따라 지나갔다는 보고를 남기고 까만 우주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실 내 기억 속 지구는 아름답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보다 새까만 곳이었다. 푸른 바다와 높은 하늘을 자랑하지만 생명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2000년대부터 지구 온난화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온갖 개발로 점차 가속화되어 2100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2200년에는 지구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는 모든 작업을 전면 중단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불길 속에서 아주 천천히 죽어갈 수라도 있도록 한 결정이었다.


 인간은 그 불길 속에서 극히 소수만 살아남았다. 아니, 종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야 할까. 중단 선언 이후 일자리가 사라졌고 대체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강한 종인 줄 알았던 인간은 나약하게 사라졌고 몇몇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더 무서운 재앙이 덮쳤다. 지구의 공전 궤도가 흔들리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현상의 크기와 빈도가 심해졌고,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공통적인 현상을 보였다. 이렇게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지구 온난화의 뜨거운 불길에 덮여 죽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토미! 거기 앉아서 뭐 해?”


 누군가 나를 불렀다. 같이 일하는 미랑 언니였다.


 “수업 가야지, 수업! 이미 시작했겠다.”


 아, 맞다. 너무 깊이 생각에 잠긴 바람에 수업이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급히 가방을 챙겨 복도로 뛰어나갔다.


 “고마워요, 언니!”


 궤도 센터의 복도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다. 도대체 누가 유리로 만든 걸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우주를 즐기라고 만들진 않았을 텐데. 그렇기에 일 년에 한 번 스치는 푸른 지구의 모습을 내내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궤도 엔지니어라는 직업의 탄생은 지구에 살아남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우주로 데려갔다. 그동안 지구 대신 우주 개발에 힘쓴 보람이 대단했다. 수많은 우주 정거장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각 행성의 궤도별로 네 개의 궤도 센터를 짓는 일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네 개의 센터는 태양과의 거리를 고려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근일점 근처에는 여름, 원일점 근처에는 겨울 센터가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은 지구의 가을 궤도 센터다.


 열 살에 지구와 작별하고 어느덧 스무 살을 앞두고 있다. 태양계 행성 중 지구의 궤도 엔지니어로 임명된 것은 19년 인생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평생 지구를 보며 곱씹을 수 있을 테니.




 강의실로 가보니 이미 수업이 시작한 상태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또 결석할 뻔했다.


 궤도 센터는 나처럼 어린 나이에 우주로 나와 일한 청소년을 위해 공부를 가르친다.


 “암흑 물질은 전자기장과 상호작용하지 않아 관측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중력적 효과를 통해 그 존재를 유추할 수 있어...”


 인공지능 녀석이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저 녀석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0년 동안 봐도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그저 ‘컴퓨터’일 뿐이다.


 다른 학생들은 저 인공지능 녀석이 하는 말에 집중이 잘 되는 모양이다. 우리 센터에는 총 여섯 명의 청소년이 있는데 센터장은 이들을 잘 교육시켜 우리 센터를 더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지구로부터 많은 자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적은 자원, 궤도 센터들이 공평하게 나눠가지면 되지 않나.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우리 센터에 내가 있어서 참 죄송한 마음이다.


 나는 학문과는 영 맞지 않다. 이 수업은 그냥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구경하는 시간.


 수업이 곧 끝나려나 보다. 인공지능 녀석이 준비한 강의 화면이 끝났다. 곧이어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저번 시험 결과입니다. 이름이 빨간 글자로 된 학생은 이 수업 끝나고 센터장실로 가서 상담을 받기 바랍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름이 빨간 글자로 된 학생’은 나다. 이럴 때는 저 인공지능 녀석이 고맙다.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알고 보면 착한 친구인가?




 나는 텅 빈 가방을 들고 일어나 센터장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자동으로 열렸다.


 “토미는 언제까지 여기를 찾아올 생각일까요?”


 문이 열리자마자 센터장의 동굴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뒷짐을 지고 암흑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한 마디 인사를 드리고 센터장 옆 의자로 익숙하게 향했다. 오늘도 센터장의 훈계를 듣겠지.


 “아닙니다. 오늘은 앉지 않아도 돼요. 금방 끝날 겁니다.”


 내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 말했다. 그의 두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토미 양은 곧 성인인데 말이죠, 매 시험마다 어린 학생들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더군요. 심지어 결석도 많이 하고.”


 나는 그의 눈동자를 그대로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내렸다.


 “지금 우리 가을 센터는 결코 안전하지 않아요. 똑똑하고 능력 있는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지구로부터 개발 지원을 많이 받고 발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저기 겨울 센터처럼 되지 말자고.”


 겨울 궤도 센터는 지구 공전 궤도에서 태양과의 거리가 가장 먼 원일점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센터에 비해 지구로부터 자원을 적게 받고 개발도 느려졌다.


 “토미, 지금이 마지막 경고야. 한 달 뒤면 너도 우주로 나가 일해야 하는 것 알고 있을 거야. 지금부터라도 나머지 학생들한테 폐 끼치지 말라고. 나가 봐.”


 나는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향했다. 오늘 상담은 이전과는 좀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센터장은 잔소리를 항상 두 시간씩이나 쏘아댔는데 오늘은 고작 5분이었다. 이번에는 잔소리도 아니었다. 오늘 하루 안 했다고 이렇게 허전하다니. 그래도 빨리 끝나서 기분은 좋다.




 나의 유일한 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랑 언니와 저녁을 먹고 우편함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은 각자의 우편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지구를 비롯한 우주 곳곳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보낸 편지가 보관된다. 편지가 도착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편함은 개인 통신 수단이 금지된 궤도 엔지니어를 위한 유일한 소통 창구다.


 “어머! 내 남자친구가 보낸 편지잖아!”


 미랑 언니는 화성 궤도 센터에서 일하는 남자친구한테 매일 편지를 받으면서 항상 저렇게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게 자랑을 한다. 나는 언니의 그런 순수한 마음을 웃으며 받아준다.


 나는 우편함을 그냥 지나쳤다. 내게 올 편지는 없다. 내게 편지를 쓸 사람도 없다. 부모님은 지구에 있을 때부터 없었다. 아주 어릴 때는 계셨겠지만, 지금의 내 기억 속에는 없다.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한 나이부터 나는 기숙학교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학교에는 나처럼 부모님의 행방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끔 부모님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지금 꽤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 궁금증은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지고 만다.


 다시 방으로 걸어가려는 그때, 미랑 언니가 나를 불렀다.


 “토미야? 이거 봐!”


 남자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을 줄 알았는데. 미랑 언니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토미, 여기 네 우편함 아니야?”


 나는 언니 쪽으로 갔다. 맞다. 저거 내 우편함인데.

 이상하다. 분명 내 이름이 적힌 내 우편함이었다. 항상 비어있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무언가 들어있다.


 그런데 편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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