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때 그 글을 읽고 작은 방랑의 한 편으로 동학사와 갑사를 등산한 적이 있기에 그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며 몇 년 전 다시 갑사를 찾았다. 절에서 보기 드문 아치형 석문을 통해 마당에 나오니 수수하고도 무던하게 생긴 3층 탑이 길 모퉁이에 서있다. 탑신에 새겨진 공우탑(功牛塔)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전쟁으로 파괴된 절을 복구하는 불사를 하면 자재나 식량을 산이나 암자까지 날라 주는 게 큰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똑똑한 소가 등에 짐만 실어주면 척척 목적지에 물건을 배달했다. 그 소는 사람이 끌고 갈 이유가 없이 혼자 알아서 일을 하니 고삐가 필요 없었고 코뚜레 또한 없었다. 소가 죽자 스님들이 탑을 만들어 공을 기렸다고 한다. 득도하여 탑 속에 안치되는 영광은 고승(高僧)만의 점유물이 아니라, 코뚜레 없는 소에게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아마 코뚜레가 아니라 아예 콧구멍 없는 소로 알려진 것 같다.
사명대사 이후 끊어진 선종(禪宗)의 법맥을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고승이며 한국 근, 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 경허(鏡虛)는 1846년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속명은 송동욱(宋東旭)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영리할 성, 소 우)이다. 9살 때 의왕 청계산 청계사에 출가하여 동학사 등에서 화두를 품고 용맹 정진하였다. 아마 그는 31 살 되던 해 계룡산에서 공부하던 중 공우탑의 소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바로 깨달음을 얻어 득도했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으며 그 기쁨에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忽聞人於無鼻孔),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다 내 집 이어라! (頓覺三千是我家)
(최인호의 ‘길 없는 길’에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낄 콧구멍이 없다면 그는 얽매임이 없게 된다. 즉 진정한 자유이다. 콧구멍 없는 소! 이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나도 이 글을 읽고 정말로 무릎을 탁 쳤다.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동글이에게 코뚜레를 끼는 것을 본 후 50년이 되어서야 얻은, 그야말로 막힌 속을 뻥 뚫어 주는 것 같은 시원한 진리이다.
깨달음을 얻은 즉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경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낮잠을 자면서 ‘일 없음을 일삼아 (無事猶成事)’라는 유명한 득도 시를 남긴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그는 아무 때나 낮잠을 자도 맘 편히 푹 잘 수 있었고, 아무런 얽매임이나 마음의 부담이 없는 그야말로 일없는 것을 일로 여기는 행복한 경지가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면서 천장사, 수덕사, 마곡사 등 호서에서 선풍(禪風)을 진작하며 보임하던 그는 만공(滿空; 1871~1946)을 수제자로 양성했다. 경허는 수덕사 방장을 제자 만공에게 넘긴 후 해인사, 월정사, 금강산을 거쳐 보임 생활을 마치고 주장자 등 그의 모든 물건을 불태우고 56세에 홀연히 환속하여 박 난주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속이고 함경도에서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훈장 생활을 하다가 1912년 열반에 들었다.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자유인으로서 나의 동경 대상 방랑인 중 최고 이상형이다.
경허 선사
만공이 스승 경허와 길을 갈 때 큰 개울가에 어떤 처자가 물을 못 건너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고 있었다. 이에 경허는 그 처자를 등에 엎고 개울을 건너 내려 주었다. 이를 못 마땅하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만공은 한 참 걸어가다가 드디어 스승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처자를 등에 엎은 것은 수행자로서 적절한 몸가짐이 아닙니다” 이 불만을 들은 경허는 “나는 이미 그 처자를 개울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라고 혼내 주었다는 유명한 선문답이 전해 내려온다.
한형조 교수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에 나오는 만공의 ‘음담패설 법문’이라는 일화가 있다. 1930년대 말 만공이 수덕사 방장으로 있을 때 그를 모시던 어린 동자승이 동네 나무꾼들의 장난에 속아 해괴한 딱따구리 노래를 배워 와서 절에서 구성지게 부르고 다녔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어느 날 서울에서 지체 높은 여인들이 수덕사에 찾아와 만공에게 법문을 청했다. 이에 만공은 동자승을 불러 그 ‘딱따구리’ 노래를 부르게 했다. 철없는 어린 동자승이 이 노래를 불러 대는 동안 서울에서 내려온 여인들은 민망해서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때 만공이 말했다.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요. 원래 참 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 중생도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소.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면 멍텅구리요. 뚫린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 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