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에서 힌트받아 득도한 성우(惺牛:영리한 소)

by 진의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온갑사로 가는 이라는 수필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때 글을 읽고 작은 방랑의 편으로 동학사와 갑사를 등산한 적이 있기에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갑사를 찾았다. 절에서 보기 드문 아치형 석문을 통해 마당에 나오니 수수하고도 무던하게 생긴 3 탑이 모퉁이에 서있다. 탑신에 새겨진 공우탑(功牛塔)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전쟁으로 파괴된 절을 복구하는 불사를 하면 자재나 식량을 산이나 암자까지 날라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똑똑한 소가 등에 짐만 실어주면 척척 목적지에 물건을 배달했다. 소는 사람이 끌고 이유가 없이 혼자 알아서 일을 하니 고삐가 필요 없었고 코뚜레 또한 없었다. 소가 죽자 스님들이 탑을 만들어 공을 기렸다고 한다. 득도하여 속에 안치되는 영광은 고승(高僧)만의 점유물이 아니라, 코뚜레 없는 소에게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아마 코뚜레가 아니라 아예 콧구멍 없는 소로 알려진 같다.


사명대사 이후 끊어진 선종(禪宗) 법맥을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고승이며 한국 , 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 경허(鏡虛) 1846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속명은 송동욱(宋東旭)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영리할 , )이다. 9 의왕 청계산 청계사에 출가하여 동학사 등에서 화두를 품고 용맹 정진하였다. 아마 그는 31 되던 계룡산에서 공부하던 공우탑의 이야기를 들은 같다.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 한다 말에 바로 깨달음을 얻어 득도했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 지으며 기쁨에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忽聞人於無鼻孔),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이어라! (頓覺三千是我家)

(최인호의 없는 에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콧구멍이 없다면 그는 얽매임이 없게 된다. 진정한 자유이다. 콧구멍 없는 !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나도 글을 읽고 정말로 무릎을 쳤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동글이에게 코뚜레를 끼는 것을 50년이 되어서야 얻은, 그야말로 막힌 속을 뚫어 주는 같은 시원한 진리이다.


깨달음을 얻은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경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낮잠을 자면서 없음을 일삼아 (無事猶成事)’라는 유명한 득도 시를 남긴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그는 아무 때나 낮잠을 자도 편히 있었고, 아무런 얽매임이나 마음의 부담이 없는 그야말로 일없는 것을 일로 여기는 행복한 경지가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면서 천장사, 수덕사, 마곡사 호서에서 선풍(禪風) 진작하며 보임하던 그는 만공(滿空; 1871~1946) 수제자로 양성했다. 경허는 수덕사 방장을 제자 만공에게 넘긴 해인사, 월정사, 금강산을 거쳐 보임 생활을 마치고 주장자 그의 모든 물건을 불태우고 56세에 홀연히 환속하여 난주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속이고 함경도에서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훈장 생활을 하다가 1912 열반에 들었다.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자유인으로서 나의 동경 대상 방랑인 최고 이상형이다.

경허 선사

만공이 스승 경허와 길을 개울가에 어떤 처자가 물을 건너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고 있었다. 이에 경허는 처자를 등에 엎고 개울을 건너 내려 주었다. 이를 마땅하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만공은 걸어가다가 드디어 스승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처자를 등에 엎은 것은 수행자로서 적절한 몸가짐이 아닙니다 불만을 들은 경허는나는 이미 처자를 개울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라고 혼내 주었다는 유명한 선문답이 전해 내려온다.


한형조 교수의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에 나오는 만공의음담패설 법문이라는 일화가 있다. 1930년대 만공이 수덕사 방장으로 있을 그를 모시던 어린 동자승이 동네 나무꾼들의 장난에 속아 해괴한 딱따구리 노래를 배워 와서 절에서 구성지게 부르고 다녔다.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뚫는구나!”

어느 서울에서 지체 높은 여인들이 수덕사에 찾아와 만공에게 법문을 청했다. 이에 만공은 동자승을 불러 딱따구리노래를 부르게 했다. 철없는 어린 동자승이 노래를 불러 대는 동안 서울에서 내려온 여인들은 민망해서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줄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때 만공이 말했다. “바로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요. 원래 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 중생도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땅에 태어났소. 모든 사람은 뚫린 부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면 멍텅구리요. 뚫린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이지요.”

경허.jpg 경허 (성우)




keyword
이전 06화(2)  방랑의 시작과 끝,  그러나 아직도 행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