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랑의 시작과 끝,
그러나 아직도 행복은?

by 진의환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의 방랑은 시작되었다. 작전대로 상고로 보내려는 아버지의 꿈을 무산시키고 서울로 진학하기 위해 편법으로 중졸 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러나 방랑 시작지로서 서울은 적합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울 대신 당시 충청도에서 유서 깊은 교육 도시의 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진학했다. 명문고라서 입학시험 당락은 장담할 없었다.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 , 검정 칠의 나무판자 벽에 붙여진 종이에서 수험 번호를 발견했는데 이는 방랑의 시작을 알리는 변곡점(變曲點)이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입학식에 혼자서 갔다. , 이불 그리고 베개를 보자기에 싸서 매고, 고무신과 내복 등을 담은 가방 하나를 들고 완행 버스에 탔다. 버스는 내가 어릴 우물을 붙잡고 그토록 하염없이 쳐다보던 구름 아래 산을 넘어 먼지 풀풀 날리며 3시간을 달렸다. 가는 길에콩밭 매는 아낙네야라는 가사로 유명해진 칠갑산 산마루를 굽이굽이 돌아 간신히 넘었다.


가족과 헤어져 살기 시작하는 일이 그리움을 알게 주었다. 방랑은 나를 철들게 만들었다. 적어도 달에 번씩은부친 전상서형님 상서 보냈다. 하숙 방에서 저녁에는 자유롭게 술도 먹었고, 아무 때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종 아닌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하는 하숙 생활이었다. 그러나 방랑은 방랑이었다. 고등학교 3 동안 나는 하숙집을 10 곳이나 옮겨 다녀야 하는 비운의 방랑객이 되었다.


대학 생활은 자유롭지 못했다. 현실로서는 가지기 어려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는 자체가 나에게는 마음의 코뚜레였다. 고시 공부를 한다고 산사에 들어갔다. 보이는 것은 산과 나무뿐인 거기에서는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할 있었다. 군대 26개월 동안은 의지와 상관없는 강제적 방랑으로 4, 5개월마다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제대 다음 날부터 시작된 직장 생활 35 동안 나는 24년을 외국에서 떠도는 그야말로 국제적 방랑이 시작되었다. 의지대로 떠도는 것은 아니었으니 엄격히 말하자면 방랑은 아닐지라도 나는 방랑을 즐겼다. 많은 곳을 여행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을 배웠고, 많은 생각을 하며 많은 성과도 냈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누님같이 오랜 방랑을 끝내고 곳에 뿌리내리고자 한다. 환갑을 지나 되돌아보니 육체적 방랑은 내가 동경하고 바라던 일이었다. 방랑을 통해 얻으려 했던 행복은 그때그때 수시로 느끼고 즐겼다.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육신의 방랑을 끝낸 지금에도 아직 심리적 방랑 상태에 있는 같다. 곳에 뿌리내리고 살아도 행복할 있을까? 은퇴 100세가 되는 앞으로 40 동안 나는 행복할 있을까? 요즘 같이 사회, 경제적 변화가 급격하게 요동치는 디지털 사회에서 나는 행복하리라는 확신이 없을까? 아직도 나는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을까? 이젠 방랑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나? 지금은 코뚜레를 벗어 버릴 때가 아닌가? 지금까지 했길래 아직도 마음속의 코뚜레를 달고 다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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