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의 일이다. 제대 다음 날부터 근무했던 여의도의 직장에 한 달 못되게 다니다가 사표 냈고 그때 받은 월급으로 호주머니가 두둑한 날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수첩의 전화번호를 뒤지던 중 군대 동기가 적어 준 한 여자의 이름을 발견하곤 방배동 어느 지하 경양식 집에서 만났다. 첫눈에는 피차간 만족하지는 않았다. 내 모습은 군대에서 막 제대했으니 머리는 짧고 얼굴은 시커멓고 몸은 삐쩍 여윈 상태였다. 초면이니 그때 당시의 전형적인 남녀 미팅의 순서대로 호구 조사하듯이 취미는 무엇이고 가족 관계는 무엇인지 다 물어보고 난 후에는 심드렁해졌다. 잠시 후 나온 돈가스 후딱 먹어 치우고 밥 값 내고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데 그녀가 안 가고 같이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멋쩍고 거북한 침묵이 한 참 흐르고 나서 버스가 왔다. 급히 버스에 오르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버스 토큰은 없고 만 원짜리 여러 장만 있었다. 만 원짜리를 내미니 버스 운전수가 짜증을 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데, 갑자기 그녀가 버스에 오르더니 “토큰 없지요?” 하면서 토큰 하나를 통에 넣어 주고 내렸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국민은행 돈화문 지점에서 입사 동기가 연대 보증을 서서 대출받은 200만 원으로 외부로부터 아무런 재정적 도움 없이 결혼해 버렸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은 작은 버스 토큰 하나 때문에 바뀌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내 결혼 자금 연대 보증을 서 준 입사 동기가 나에게 연대 보증 품앗이를 요구했다. 내가 보증 서자 그도 똑 같이 국민은행에서 2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나처럼 가난했던 그는 그 돈으로 결혼 대신 주식 투자를 선택했다. 그는 돈이 고팠다. 그가 주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가 속한 부서의 대리부터 중역까지 모든 사람이 그에게 주식 투자를 위임했고, 그는 업무 시간에 증권회사 객장에서 살았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2~3 년 후 그는 고급 주택지 평창동에 빌라를 한 채 사고, 시내 모처에 아파트를 하나 더 장만했다. 여러 번의 과감한 배팅이 적중된 결과였다.
그때는 주식 시황이 상승세였다는 시대적 배경도 좋았지만 그의 과감한, 어찌 보면 무모한 배팅은 보통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때 모 자동차 회사 외국 정부와의 무역 문제로 피소되어 그 최종 판정을 앞두고 그 주가가 반 토막 났다. 그는 그 최종 판정의 결과 예측을 나에게 물어봤다. 최고 경영층에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50대 50’이라고 보고 했다고 하자, 그는 즉시 모든 주식을 처분하고 신용까지 써서 그 자동차 회사의 주식에 올인했다. 곧 무혐의 판정이 나자 주가는 금방 2배나 뛰었고 그는 한 방에 평창동 집 한 채를 벌었다. 보통 사람은 50대 50이라면 비관적으로 보고 크게 배팅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엄청난 확률이니까 모든 것을 걸 만하다고 낙관적으로 보았다. 또 그는 말했다. 추석 날 밤 보름 달빛이 온 누리를 골고루 비추듯 어디 가든 돈은 하늘에 떠있다. 배짱이 크고 손이 큰 사람은 허공에 떠 있는 돈을 많이 잡을 것이고, 작은 사람은 적게 잡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름달을 쳐다보며 복을 빈다. 복은 하늘에 골고루 떠 있다. 다만 그 복을 많이 받으려면 자신의 복 담는 그릇을 키워야 한다. 자기 그릇이 종지 만하면 종지만큼 만 받을 것이고, 대접 만하면 대접만큼, 함지박 만하면 함지박만큼 받을 것이다. 같이 대출받은 200만 원으로 누구는 장가들었고 누구는 집 두 채를 샀다. 어느 게 더 큰 복인지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지금 밖에는 장대비가 내린다.
雨寶益生滿虛空(보배로운 비는 허공을 가득 채워 고루 내리지만)
衆生隨器得利益(사람들은 자기 그릇 크기에 따라 받는 양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