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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6. 2022

결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남들 다 하는' 평범함을 내려놓으면 행복이 보여요.

 나는 태어나 보니 가난한 집에 살고 있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없이 7 동안 고시 공부만  백수 아빠와 남동생 뒷바라지만 하다 혼기가 차서 결혼한 백수 엄마 사이에서 신혼여행  생긴 '한방이' 바로 나다. 어릴  그다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자주 먹어서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 토마토가 사실은  시절 과일 가게에서 제일 저렴했다는 사실을   최근이었다. 활짝 웃는 사진 속에서 입고 있던 예쁜 꼬까옷들도 사촌들에게 물려받아 입은 옷이었다. 집주인 부부가 사글세 독촉을 하러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우리가 돈이 없어서 벌어진 일인 줄은 몰랐다.


 엄마가 아빠를 '    갖다 주는 무능력한 인간'이라 부를 때도 아빠가 돈을  벌어 온다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엄마가 화가 많은 사람인  알았다. 엄마는  돈이 없어 아빠와 다퉜고, 장을 보고 오면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며 분노했다. 그래서 장을 보고  날엔 엄마 몰래 영수증을  멀리 숨긴 적도 있었다. 영수증만 숨기면 엄마가 화를 내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엄마에겐 아빠가 무능력하고 미운 남편이었지만 어릴  나에게 아빠는  좋은 부모였다. 엄마가 돈을 벌러  사이 나를 돌봐 준건 아빠였기 때문이다. 씻겨 주고 머리 묶어 주고, 인형도 사주고 놀아 주는 건 아빠의 몫이었다.  10시가 넘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엄마는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기 일쑤였다. 혼날 일을  적이 없는데 항상 혼났으니 지금 내가 눈치가 빠른 것은 그때 엄마의 눈치를 보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있다. 엄마는 경제력이 부족한 아빠를 대신해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바깥을 쏘다닌 것뿐인데 나에겐 무섭고 화내는 엄마로 기억되어 버렸다.


 내가 가난한 아파트에 살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친구가 내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 살고 있다기에 ", 반갑다!  ○○아파트 살았어!"라고 했더니, "거기 가난한 아파트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와 함께 거론된 몇몇 아파트를 묶어 '가난한 아파트 사는 애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에겐 행복한 어린 시절 추억의 아파트인데 다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우릴 그렇게 보고 있었다니,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우리 집이 부유하진 않아도 평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다.


 우리 집이 다른  보다 가난하단 것을 또다시 깨달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대학 동기들의 아버지는 죄다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기에 동기들은 나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졸업하자마자  회사에서 일할 것이고, 나중엔 회사를 물려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학교에서 벚꽃놀이를 즐기며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 나는 전공서적 값을 벌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며 폐기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권할 때에도 금액을 듣고 놀란 나는 부모님께 말할  없었다. 지나고 보면  비싼 치아 교정을 중, 고등학교 시절 다들 했던  보면 우리 집만   푼에 덜덜 떨었던  같다.


 대학생활 내내 생활비가 부족해서 주로 굶고 다녔다. 알바를 전전했고, 친구를 만나면 친구들이 자꾸 밥값을 계산했다. 반반 나눠서 계산하자 해도 친구들이 자꾸 계산을 했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이 우리 집이 가난하단  나보다도 먼저 알고 있었던  같다. 그래도 , 열등감, 편견 없이 자존감 높고 올곧게  자란 것은 가난했다는  사실 하나에만은 지독하게 눈치가 없었던  덕분인  같다.


 어느 , 대학생  사귀던 남자 친구가 '생일에  갖고 싶어?'라고 물었다. 나는  갖고 싶은지 한참 생각하다 그만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번도 무언갈 갖고 싶다는 생각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조금 불편해도 그것에 적응하고 사는  익숙했던 탓에, 돈을 주고 갖고 싶다는 생각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릴 , '롤러 브레이드' 유행할 때도, ' 보드', '힐리스'가 유행할 때도, 친구들이 타는   시간 내내 쫓아다니다가 친구가 지루함을 느낄 때쯤 빌려서 잠깐  보는 걸로 만족했다. 그저 그걸로 행복했을 ,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적이 없었다.


 무언  간절히 갖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였다. 바퀴벌레가 주방 배관을 타고 끝도 없이 넘어오던 끔찍하고 허름한 1 자취방에서의 생활을 지금도 잊을  없다. 돈이 없어 가장 저렴한 월세집으로 구한 것이 화근이었다. 얇고 길쭉하고 비교적 크기가 작은 갈색 빛깔의 한국 바퀴벌레와 달리, 새까맣고 오동통하고 크기가 매우  독일 바퀴벌레였다. 웬만한 약으로도 쉽게 죽지 않는 끈질긴 바퀴벌레들이 득실대는 방이었다. 새벽 4, 잠을 자던 나의 팔에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머리카락인가 하여 손으로 쓸어내렸는데, 바닥에 ''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함을 직감한 나는 곧바로 불을 켰고, 손바닥  만한 바퀴벌레가  방을 쏘다니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두꺼운 책을 바퀴벌레에 내리꽂았고, 나는 무서워서   아래를 들여다볼  없었다. 작고 초라한 방에서 엉엉 울었던 새벽 4시의 그날을 영영 잊을  없을  같다. 그렇게 살아온 나의 처절한 이십  였다. 나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 ' 너무나 필요했다.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되었다. 아직도 나에게 따뜻하고 안정적인 ' ' 없다. 꼬박꼬박 주택 청약을 넣고 있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은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 ' ' 없지만, 또래의 친구들이 회사에서 졸음을 떨치기 위해 카페인을 찾는  시간, 퇴사를 하고 백수의 삶을 택한 나는 카페인이 없는 커피를  모금 쓰-읍 들이키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날이 좋을  세수도 안 하고 나가서 따뜻한 햇살에 흠뻑 몸을 적시고, 때때로 흐린 날이면 피로가 풀릴 때까지 늦잠을 자곤 한다. 친구들이 놀러 다니는 주말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다.   ,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미뤄두고 수년  일만 하던 나는 문득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수도 없이 되뇌다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나는 글을 쓰며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다.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길을 택한 내가  좋다. 이십 대엔 내가 택하지 않은 가난에 힘겨웠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택한 가난이기에, 주머니는 가볍지만 마음은 풍요롭다.

 

 따뜻한 햇살 아래, 까르르 웃으며 아이가 아장아장 걷고 있다. 뒤에선 미소를  젊은 부부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삶을 택한 사람들의 안정감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인생의 계획에 결혼과 육아가 있었다면 나는 글을 쓰는 대신 지금도 쉬지 않고 돈을 벌고 있었을 테다. 남들이 취업하고 돈을 모을  나는 학자금을 갚고 있었고 남들이 어느 정도 모았을 , 나는 그제야 학자금을  갚았다. 출발선이 뒤처졌기에  길이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배우며 소소한  걸음  걸음을 내딛고 있다. '남들  하는 평범함' 내려 두고, '나만의 ' 걸어가기로  내가  자랑스럽고 좋다.


 누군가는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 '그래도 자식은 낳아 봐야지.'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평범하고 온화한 가정을 꾸려 보고 싶다. 하지만 '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라는 무책임한  뒤에 숨고 싶지 않다.  그렇게 시작하는 세상도 지났고, 아이들은 빌라에 산다고 '빌거지', LH 산다고 '엘사'라는 별명을 붙이는 세상이다. 가난하고 준비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살아 봤고,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며 청춘을 보냈기에,  자식에겐 그런 경험을 선사하고 싶진 않다. 내가 정말 안정적이고 누군가를 책임    온전한 힘이 생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그전에, ' 자신'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해 보고 싶다. 기왕 택한 , 재미나게 살아 보아야겠단 생각이다.  나이를 듣고 당연하게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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