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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6. 2022

잠시 길을 잃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오랜만에 아는 오빠를 만났다. 나는 평소에 사람을 만날  긴장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솔직함과 공감을 잘해주는 , 밝고 활발한 점이 나의 장점이라 생각해서 사람들과 대화할   당당한 편이다. 그런데 이날은 식사를     만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오빠는 외국계 회사를 운영 중이고 어릴 적에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주변 지인들의 학력과 직업도 출중했다. 순간 나의 솔직함이 흠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단점을 최대한 감추는 편이  사람과의 대화를 편안하게 이어가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던  갑자기 오늘 입은 옷에서 삐져나온 실오라기  가닥이 눈에 띄었다.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실을 뜯어서 감췄다. 평소에 가성비 좋은 옷을 주로 입는 편이었는데 그날따라 올이 풀린  옷이 초라해 보였다. 다행히 오빠는 나의 근황이나 차림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보였다. 오빠는 요즘 만나고 있는 여성 분의 이야기를 했다. 그분의 학력과 직업에 대해, 자신의 집안처럼 가정이 화목해서 매력을 느꼈다는 말에  학력과 직업, 집안 분위기가 대비되어 점점 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의 일상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그와 대비되는 나의 초라함을 견딜  없어 숨이  막혔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없었다. 열등감 없이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내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오빠의 흥미롭다는 표정과 '재밌네.'라는 대답, 그때의 온도와 습도, 날씨, 분위기 모두가 생생하게 뇌리에 박혔다. 여유롭게 세상의 좋은 것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 아등바등 세상과 맞서 싸우며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흥미로울 만도 했다. 크게 관심은 없지만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며 신선하다는 듯한 표정을 잊을  없다. 오빠는 그날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겠지만 나는  후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생각났다. 그레이트 헝거를 꿈꾸며 아프리카 부족 춤을 추는 하층민 해미와 그녀를 바라보며 지루하단 듯 하품하는 상류층 벤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손에 진 흉터를 보며 고생과 아픔을 떠올리는 나와 달리 재밌는 경험이었다는 오빠의 말에서도 괴리감이 느껴졌다. 입원 생활이 지루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병원에 아는 지인이 있어서 재밌었다는 대답이 또 한 번 가슴에 쿵 하고 박혔다. 한밤중에 갑자기 어디가 아파도 응급실에선 뭘 해도 비싸니 평일 아침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입원은 하루하루 돈이 들기 때문에 통원을 당연히 생각하는, 수술을 하면 돈이 많이 들고 회복할 때까지 돈을 벌 수 없으니 자연치료법을 검색하는 나와는 너무도 다르고 편안한 여유가 부러우면서도 마음이 쓰렸다.


 그 후로 몇 날 며칠을 그날 느낀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홀로 악착같이 살면서 겪은 여러 경험들이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저런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어울릴 수 없는 것일까? 자수성가해서 대성하지 않으면 저런 사람들처럼 여유롭고 온화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수없이 물음을 던지다 잠든 어느 날, 동이 트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벌떡 일어나 글로 썼다.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적은 글을 다시금 들여다봤다. 오빠와 나는 걸어온 삶이 완연하게 다르다. 나의 부모, 직업, 학력, 통장 잔고를 지금 당장 모두 바꿀 수 없다. 태어나서 가지고 겪어 온 것이 모두 다르기에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생각'이다. 나는 고작 서른한 살이고, 앞으로도 수십 년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테다. 여태껏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느라 처음 겪은 시선의 차이에 잠시 혼란이 온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방식으로 대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대로를 드러내며 대화하고,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만 걷어낸다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세상의 모든 숨이 달려 있는 존재들은 같은 종족이라 해도 똑같이 태어나는 법이 없다. 지나온 환경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르게 태어나서 다른 삶을 산 것은 그 누구의 탓을 해도 소용없다. 이미 가진 것, 지나온 것에서 손을 떼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이런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고 저런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구나.' 하며 지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하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아주 잠깐 방황했다. 나와 다른 환경에 개의치 않고, 그들을 관찰하며 새로운 것을 깨달아 가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 할 지라도 해가 지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길을 잃을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기에 실수할 수도, 잠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 지를 잊지 않는다면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환경이 달라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가까이서 보면 사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겉보기에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그들과 나의 삶을 비교해가며 아까운 우리의 젊은 날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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