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26. 2022

나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이혼 가정 자식의 연애는 참 어렵다.

 통화 연결음이 울린다. '... ...'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짜증 나."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딜 가면 늦게까지 연락이  되기 일쑤다. 내가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있을  할머니가 전화 오는 일도 잦다. "너거 아빠  전활 안받노." 아빠는 바빠서 전화를  받는  아니다. 귀찮으면 의도적으로 받지 않는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직접 봤기 때문에 안다. 휴대폰 배터리도 자주 방전된다. 외출을 오래 하는 날엔 충전기를 챙기면 좋은데 그러는 법이 없다.  덕에 가족들은 피가 마른다.


  날은 매주 듣는 수업 때문에 가방을 챙기는데  챙기던 보온 물병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서울에 가고 없었다. 보온 물병을 찾느라 수업에 지각하고 오늘따라 수업 내용도 어려워서 잔뜩 예민해져 있던 차에 설마 아빠가 가져갔나 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은 것이다. 문자로  물병을 가져갔냐 했더니 그렇다고 답장이 왔다. 전화를 다시 걸었다.  받질 않는다. 화가 잔뜩 나서 '아빠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화  받을 거지? 가족이라곤   밖에 없는데 전화받는  그렇게 힘들어?' 하고 날이  문자를 보냈다.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실컷 하소연을 했다.


 내가 아빠의 부재중에 예민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잦았다. 아빠는 자주 집을 나갔다. 엄마는 하루 종일 아빠에게 전활 걸었고 나에게도 전활 걸라고 했다. '... ...'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하염없이 늘어지는 통화연결음을 듣는 날이 반복되었다. 사라진 아빠에 대한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갔다. 엄마는 아빠가 외도를 하는  분명하다고 했지만 사실인지   없었다. 나는 너무도 어렸고, 외도가 뭔지 몰랐다. 하나 확실한   후로 늘어지는 통화연결음이 지속되는  듣다 보면 잔뜩 예민해져서 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사랑, 결혼에 대한 영원함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곁에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같았다. 아빠는 우리가 기다리다 지쳐 아빠가 없는 것에 익숙해질 즈음 아무 일도 없었단  집에 들어오곤 했다. 어린 나의  속엔 커다란 멍이 생겨버렸다.


 어릴 적엔 매일 화를 내는 엄마가 싫어서 아빠 곁을 쫄쫄 따라다녔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빠가 밉기도 하.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는커녕 엄마와의 지옥 같은 나날들을 회피하고자 소중한 딸의 가슴에 구멍을 내버렸으니 말이다. 어릴  나의 마음은 정서가 불안한 엄마보단 아빠에게 붙어야   있다는 생존본능었던  같다. 금쪽같은  새끼 74회에 나오는 가스 라이팅 가족 사연을 보면  가족이 엄마를 욕하고 무시하는 가운데 아이도 엄마를 미워하는 '' 한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비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도 엄마를 싫어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마찬가지였던  같다. 정말 아빠가 좋아서라기 보단, 아빠를 택해야 내가 조금  '정상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판단했던  같다.


 성인이 되고 타지에서 10년을 자취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자취방부터 지금 사는 집까지 모두 혼자 구했다. 혼자 생활비를 마련해서 사는 것이 너무나 빠듯, 그놈의  때문에 힘들어서 운 날이 많았. 21세기에 온갖 편안함을  누리고 사는 MZ 세대인 내가 돈이 없어 굶고 살았다는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아닌  살았지만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끼니를 때우거나 그마저도  먹고 굶은 날이 많았다. 제대로  챙겨 먹어서 몸이 자주 아팠다. 친구들과 자취하는 데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를  때도, 친구들의 부모님은 주기적으로 자취방에 와서 청소를 해주시고 냉장고도 채워주고 간다는 사실을 들었을   많이 부럽고 서글펐다.  우리 부모님은 타지에 사는 내가 어디 사는지,  먹고 사는지, 용돈은 있는지 관심이 없었을까?  우리 부모님은, 학자금이 얼마가 나왔는지  번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름으로 빚이 쌓이는 동안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까? 전공서적을 살 돈이 없어 처음으로 생활비 대출을 던 날도 생생하. 당장 생활할 돈이 없었다. 내가 대학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부모님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 4학년일 무렵 이혼을 했다고 한다.  마디 상의 없이 부모님의 이혼을 통보받았던 , 어차피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분이 별거하고 지냈기에 '그랬구나. 잘했어.'라고 대답했지만 마침내 공식적으로  쪽짜리 이혼가정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쪽짜리 가정을 반겨줄 집안이 있을까 싶었다. 나의 이력에 커다란 흠이 생긴 것만 같아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그때부터였던  같다. 연애를 해도 사람을  믿지 않고, 조금만 틀어져도  자르듯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부모님은 관심이라도 있을까? 친구들과 얘기하다 부모님 얘기가 나오면 어느새 주눅 들어 버리는  심정 알기나 할까?


 아빠는 요즘 자꾸만 나에게 의지하려 한다. 일을 쉬고 있는  밑으로 덜컥 건강보험을 달아버렸다. 거덜  버린  마음과 잔고는 아빠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나도 도움받지 못하고 자랐는데 무슨 염치로 이러는 .' 하는 못된 생각이 자꾸 든다. 마음에 모가 난다. 예전엔 요리도 많이 해드리고 패딩, 시계, 가방, 간식 등을 자주 선물하 챙겨드렸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사랑할  아는 딸을 당연하게 여기는  싫다. 지난날들에 대한 미운 마음이 응어리져서 도무지 용서가 안된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진다. 보상받지 못한다면 이젠 조금이라도 희생하고 싶지 않다.


 임신과 출산은 분명 축복이지만 내겐 비극이다. 버려지는 아이들, 방치되는 아이들을 보면   같지 않다. 무책임한 부모를 극도로 혐오한다. 학창 시절 도덕 시간에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배웠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긴 하겠지만  번이라도 그런 무조건적인 따뜻한 사랑을 느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필요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의 이나 손길을 내밀지 않고 방관해온 모습이 너무도 밉다. 모래로 쌓인 딸의 마음은 서른한 번째 해에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자리에 어느새 '증오'라는 싹이 자라났다.


 삼십 대가 되고부턴 남자 친구가 길 때마다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없. 혹시라도 나중에 결혼 얘기가 나온다면 상대 집안에서 나의 상황을 알고 반대하거나 싫어할  있다고 생각하니 지레 겁이 난. 그래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겁이 난다. 마음껏 사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빠는 통장잔고가 0원이라고 한다. 여태 제대로  적금 하나 넣지 않고 살았다는  믿기지 않아  대단하단 생각이 든. "아빠  결혼은 포기했어."라는 말에 아빤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딸의 결혼에 대해 경제적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집도 돈도 없는 아빠가 가끔 세상을 우습게 보는 속 편한 소리를  때마다  밉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마치고 따닥따닥 늘어서 있는 빌라 촌에 사는  부끄러워 멀리 지하철  앞에서 헤어졌다. 숨기고 조심하느라  마음이 주눅 들어 있다. 언젠가 이런 사정을 말하게  날이 두렵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살았던 내게 아낌없이 따뜻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너무도 고맙다.  사랑에 나도 맘껏 보답하고 싶은데, 못난  집안과 못난  상황이 너무 야속하다. 집에 들어오니 아빠는  편하게 소파에 가로로 누워 정치인을 비방하는 유튜브를 보고 있다. 통장 잔고 0원을 벗어나려는 노력 없이 아무 의미 없는 일에 열을 내고 있는 아빠를 보곤 오늘도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는다.


 나도,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이전 10화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