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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0. 2022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

볼펜 똥이 가득한 내 작업 노트

 대형 완구점에 갔다. 일을 쉬면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다 보니, 수년간 서랍에 방치했던 볼펜을 최근에 거의  썼다. 검은색 볼펜 코너에 갔다. 오천 오백 원짜리와  원짜리 볼펜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무슨 볼펜이 오천 오백 원이나 하지?' 하고 샘플 종이에 테스트해봤는데 펜촉이 종이 위로 춤을 추듯 미끄러진다. 비싼 볼펜을 쓰면 글도   써지고 기분도 좋을  같았다.  볼펜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가려다 왠지  빤히 보고 있는 듯한  원짜리 볼펜도   테스트해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 결국  원짜리 볼펜  개를 집어 들었다. '그래.  값으로 하나를 사는 것보단 여러 개를 사는   이득이지!' 기왕이면 다다익선이라고 신나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어딘가 아쉽긴 하지만 내겐 익숙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연습 노트에 글을  내려간다. 역시나 볼펜 똥이  마디마다 나온다.   비지떡이라더니 그냥 비싼    그랬나 싶다. 볼펜 똥이 묻어 노트가 엉망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나에게 흔하게 있는 일이다. 중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이테크'라는 일본 펜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볼펜 똥이  나올  아니라 글씨도  써지고 색상도 다양해서 친구들의 필통은 항상 형형색색의 하이테크  자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의 하이테크 펜을 빌려   적이 있었으나,  불편해서  글자 쓰다 말고 다시 돌려주곤 했다. 펜촉이 약해서 조금만  눌러쓰면 휘어져서 기능을 못하고 곧바로 쓰레기통 행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필기가  된다    쓰지 못하는 펜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이걸 사서 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번을  쓰다 버리고 새로 사도 하이테크   자루보다 값이 저렴한, 볼펜 똥이 잔뜩 나오는 나의 싸구려 볼펜이 편했다.


 가방, , 신발  매사에 그랬다. 왠지 고가의 물건엔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옷과 가방엔  풀린 실과 보풀이 제법 많다. 외출 전엔 실밥과 보풀 제거가 필수이다. 제법 불편해 보일  있지만 보풀을 제거하는 일련의 수고로운 과정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끔  사는 지인을 만날  미처 정리하지 못해 눈에 띄는 보풀과 실밥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내 신경이 쓰이면서도 또다시 가성비 좋은 것을 찾곤 한다. 고가의 물건에 정이  가는 것은  주머니 사정 탓도 있지만 무리해 가면서까지 편리함을 구매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런  보면 나도 제법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데도 도가 텄다.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차를 몰고 편하게 다니는  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버스를 타고  둘러서 다니다 보면, 차를 타고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나쳤을 만한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볼  있어 재미있다. 걷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과 지저귀는  쌍의 직박구리 새들, 향긋한 아카시아 향이 여름을 알리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온 감각에 담을  있다. 많이 걷다 보니 건강을 챙기는  덤이다. 나는 불편하고 촌스러운 삶의 방식을 사랑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남의 시선을 좇다 보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숨이 막혀 온다.  


 나는 주변에 나를 '시골쥐'라고 소개한다.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의 번화가 보단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분위기를 사랑한다. 떠올려 보면, 촌스럽던 학창 시절과 삼십 대의 백수가 되어 글을 쓰는 지금이 남의 시선을 신경 쓰던 이십   보다 행복하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매번 능사는 아니다. 또래와 취향이 다른, 어딘가 독특하고 느리게 려고 애쓰 지금  삶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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