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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2. 2022

어른 아이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화가 많은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려서부터 철이 들었다.  속에 어른이  것처럼 의젓하고 얌전했다. 떼써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   들어서 고생했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 ' 하던 엄마는 장을 보고 오면 영수증을 보고 분노했다. 나는 불똥이 튈까  미리 방으로 숨었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아빠는 종종 집을 나갔다. 학창 시절 나의 최고 목표는 좋은 성적도, 좋은 대학도 아닌 '출가하기'였다. 수능을 제대로 말아먹었지만 재수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루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방의 한 사립 대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댈 곳이 없는지라 곧 돈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늘 가난에 허덕였다. 작고 낡은 자취방에서의 차디찬 겨울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치게 차갑던 공기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피어오르던 입김이 생각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니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자주 아팠지만 아픈 것도 내게 사치였다. 병원비가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고 차가운 방에서 이불을 싸매고 끙끙 앓기 일쑤였다. 생일에 미역국 먹었냔 당연한 말은 매년 나를 아프게 했다.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본 적은 있지만 내 생일 미역국마저 스스로 끓이고 싶진 않았다.


 십 년 동안 총 열한 번 이사했다. 그래서 이사에는 도가 텄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시절부터 혼자 저렴한 방을 알아보느라 다 낡아빠지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집에도 살아봤다. 인테리어는 고사하고 발 뻗고 잘 만한 안전한 보금자리만 있다면 그걸로 다행이었다. 수납공간이 없어서 여기저기 나와있는 짐들 때문에 집에서 찍은 사진은 남에게 보여주기도 부끄러워 숨기곤 했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나서서 누군가를 기꺼이 돕는 건 익숙하지만 부탁하는 건 어렵다. 아마 눈치 보는 환경에서 자랐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기꺼이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쉽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보면 그 편안한 마음이 참 부럽다. 마음 둘 곳 없이 그저 악착같이 살다 보니 내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사실은 어른 아이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딱 삼십일 년이 걸렸다. 겨우 쌓은 성이 파도 한 번이면 휩쓸려 사라질 모래성임을 깨달았다.

 

 가끔 보통의 삶을 바라는 것이 그렇게 욕심일까 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내 삶을 카드 뒤집듯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내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모두가 각자의 삶이 있다. 나는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보다 더 거친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누군가는 그래도 내 글을 보고 '아 나 말고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다.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단 것을, 그 누구보다 아파봤고 힘들어봤기에 벅찬 행복을 맘껏 누릴 가치가 있으니 절대, 무너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의 모든 어른 아이들, 우린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어요. 힘내서 살아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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