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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6. 2022

잠에서 깨면 우는 아이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와 길을 걷다    사이 시야가 까마득한 곳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어져 있던 높은 통나무 계단을 힘겹게 올라 겨우 걷던 길로 올라왔는데, 아빠는 겁이 없고 평소에 등산을 했던 터라 재빠르게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서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올라가는 길이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손으로  계단씩 덜덜 떨면서 잡고 겨우 엉금엉금 길로 올라오자마자 긴장이 풀려 엉엉 울고 말았다.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서도 꿈에서 느낀 공포감이 생생해서 한동안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릴  잔병치레가 많았다. 지금도 면역력이 약해서 쉽게 아프고, 두려워하는 것도 많다. 아빠는 내가 몸이 약해서 속상해할 때 무언갈 두려워할 때마다 몸이 약하다 생각하지 말라고,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니 부숴 버리라고, 이겨내라고 했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없었다. 몸이 약한데  약하지 않다 생각해야 하고 두려운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어둬 하는지 이유를   없었다.  후로 나는 아프거나 두려울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혼자 울면서 삭히거나 어떻게든 버텨냈. 외롭고도 힘든 시간을 거쳐 삼십 대가  나는 꿈에서 느낀 공포감과 홀로 지상까지 올라온 내내 느낀 외로움과 버거움이 떠올라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꿈속의 내가 어른이었는지 아이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 깨달은 것은 아빠가 어린 나에게 이겨내란  대신 따뜻하게   안아줬더라면  안의 두려움을  빨리 극복하고 치유했을 것이란 거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든 것들을 혼자 감내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나를 애써 외면하는 방식으로 잊지 말아 달라고, 마치 어린  자아가 꿈에서나마 알려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분명히 있다. 나는 아픔과 두려움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애써 묻어두는 방식으로 홀로 버텨냈던  같다.  안엔 아직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단  오늘  꿈을 통해 깨달았다.


 어릴 ,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홀로 집에서 TV 보다 종종 잠이 들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 마주한 집안은 해가 지고 밤이 되어  비고 캄캄한 가운데 TV 소음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매일  시간 즈음 잠에서 깨어나면 엉엉 울었다. 어릴  내가  우는지도 몰랐는데   캄캄한 집에서 홀로 있다는 공포감에 무섭고 외로워서   같다. 아빠도 퇴근하고 집에 왔을  내가 그렇게 우는 것을 종종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캄캄한 집에서 혼자 곤히 자고 있다가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깨서  적도 많다. 나는 그때부터 두운 것과 기계음을 무서워하게 되었. 지금 여전히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리거나 전화벨 소리라도 들리 심장이 뛰고  신경이 바짝 선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학교에서 지능 검사를  적이 있다. IQ 포함한 대부분의 항목에서 꽤 괜찮은 수치가 나왔는데 '안정성'이라는 항목만 유달리 기준치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가 나왔다. 공부도 잘하고 의젓하고 활발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나는 항상 부반장을 맡아왔지만 (반장 후보가 됐을  반장은 부담스럽다고 기권해서 만년 부반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면에 불안감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IQ 높다고 신이 나서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안정성이 낮게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으셨던  같다. 그렇게 불안한 내면을 애써 묻은 채로 자라 버린 삼십 대 어른 아이이다.  


 글을 쓰고 있는데 아빠가 운동을 다녀와 방에 들어갔다. 망설이다 아빠 방에 따라 들어갔다. '와앙-' 하고 아빠를 뒤에서 껴안았다. 아빠가 허허 웃으며 '오늘 기분 좋나 보네.'라고 했다. 사실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이런 꿈을 꿨다고 말했다. 아빠는 어릴  내게 했던 말을 반복하며 그것 또한 네가 이겨내야 한다고,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가 없다고 했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아빠에게  아픔이 자꾸 나만의 숙제처럼 되는 것이 속상했다. 모든 것을 지우고 잊고 비우는 것이 아빠만의 삶의 깨달음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마주하고 직면하고 해결해야 두려움을 극복할  있을  같았다. 나는 아빠가 살아있고, 지금  옆에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같이 해결할  있다고 했다. 그저 '힘들었겠네. 고생 많았어.' 하고  안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육십 , 삼십  부녀는 오랜만에 따뜻한 포옹을 했다.  강제적인 방법이었지만 어린 나를 그만 울게 하고 싶었던  욕심일지도 모른다.  안에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빠의 따뜻한 온기를 전해 주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안부를 자주 묻는다. 때론 상대방이 의문을 갖기도 한다. '며칠 전에  놓고   안부를 묻는 거지?' 하는 표정이다.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에 내가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타인에게 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안에 있는 어린 시절에 멈춰 버린 외로운 아이를 이제야 발견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가여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시간을 되돌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있다면 괜찮다고, 아파도 된다고, 두려워해도 된다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토닥이며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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