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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5. 2022

별게 다 슬플 나이

 어느 , 자주 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초코바를 건네주었다. '전부터 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친절해서 주고 싶었다고 한다. 보통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손님이 가끔 뭔갈 건네는데 손님인 내가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 후로  편의점을 들를 때마다  마디씩 나누다 보니  아이가 3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이라니,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 하고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없길래 아픈 게 아닐까 걱정했더니 다음 주에 수척해진 얼굴로 돌아.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일하러 오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에 반짝 빛나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풀이 죽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다음 주엔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 그다음 주엔 언제 그랬냔  방방 뛰며 다시 해맑은 모습으로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했다.  귀엽고 순수한 아이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학교를 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 했던 나의 스물네 살이 떠올랐다.  밝고 순수했다. 너무 맑아서 쉽게 다른 색으로 물들었고 쉽게 탁해지기도 했다. 사람을 쉽게 믿고, 쉽게 데고, 사람을  좋아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세상이  무너진  슬퍼했고, 시간이 흘러 또다시 연애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곤 했다. 친구 관계 때문에 서글퍼하다가 또다시 친구 덕분 웃곤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일도 아닌 것에 쉽게 연연해하고 힘들어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알았다. 별게  슬프고 별게  기쁜 나이였다.


  번의 만남과 이별,  번의 매섭도록 추운 겨울과  번의 뜨겁고 힘든 여름이 났다. 나는 꼭 그때의 나처럼 해맑은 이 친구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삼십  언니가 되었다. 친구만 만나면 뭐가 힘들었고 뭐가 싫었고 한탄하던 내가 어느덧 어린 동생들의 푸념을 들어주는 언니가 되었다. 얕고 좁아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계곡이었던 나는 조금 탁해지긴 했지만 제법 깊고 넓은 강이 되어 있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도 고요히 원을 그리며 나아가다 이내 다시 잔잔해지는 강이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돌멩이와 바위들이 나를 기다릴 테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 보면 언젠가 드넓은 바다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요동치고   없이 출렁였던 지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이 무너질  출렁이며 쏟아진 덕에 평온하고 잔잔한 강이, 그리고 드넓은 바다가  것이라고. 네가 후회하고 힘겨워하던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 주었으니  고생 많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힘차게 흘러와 주어  대견하고 고맙다는 말을  주고 싶다.


 때론 별게  슬프고 별게  기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가끔 친구와 만나 실컷 수다를 떨면서 '요즘 이 정도로 웃을 일이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너무 즐겁네.'라는 말을 종종 한다. ,  시절에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모든  새로웠는데, 이젠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  많아졌다.  익숙함이 진 않지만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모험 앞에 서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불쑥 발을 내딛어 버리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젊은 게 참 좋아. 벌써 이 만큼이나 공부했네 허허."


 도서관에서 수업을 듣고 남아서 공부하던 내게 빼곡하게 채운 노트를 보고 같은 수업을 듣는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젊음이란  상대적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며  시절을 떠올리는 나지만, 어르신들이 보면  아직 한참 꼬마이니 말이다. '벌써 4월이야? 엊그제가 새해였던  같은데, 말도 안 돼!'를 외치는 요즈음. 갈수록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진다. 서른한 살의 봄을 그리워할 마흔,  살의 나도 금방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맑고 순수하던 이십 대의 내가 열심히 방황해  덕에 글을 쓰는 삼십 대가 되었으니, 오늘 하루도 열심히 생각하고 글을 쓰며 성찰해서 드넓은 바다의 마음을 가진 멋진 아줌마가, 할머니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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