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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2. 2022

거짓말하는 모녀

 아빠와 한창 갈등이 심했을  6 만에 연락이 닿은 엄마가 내게 엄마 집으로 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드디어 빌라와 원룸을 전전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오랜만에 햇살이 드는 넓고 안정된 아파트에서   있겠단 꿈에 부풀어 엄마를 만날 날만을 기다렸다.


 바람은 서늘하지만 햇살만은 모처럼 따뜻했던 어느 겨울, 부푼 마음을 가지고 엄마가 사는 아파트에 갔다. 과연 신축 아파트답게 깔끔하고 수납공간도 넉넉한 제법 좋은 집이었다. 하지만  넓고 좋은 집을 엄마는 쓰레기로 가득 채워 살고 있었다.  개의    개의 방은 쓰지 않는 오래된 짐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두었고,  개의 화장실   개는 정체를   없는 얼룩덜룩한 자국들과 뒤엉킨 머리카락들로 방치되어 있었다. 냉장고와 찬장은 유통기한이 최소 5년은 지난 음식들로 가득  있었다. 엄마는 내게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권했다. 도대체  좋은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낸 걸까.


 TV 유튜브를 통해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을  적이 있었다. 대부분, 아니 전부가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도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사람들처럼 마음의 병을 가지고 쓰레기와 함께  집에 갇혀 버린 것 같았다. 엄마와 이야기를  봐도 자기 이야기는 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6  기억에 멈춰 있었다. 번지르르한 차를 몰고 번지르르한 아파트에 사는 엄마의 시간은 6 전의 쓰레기들과 함께  6  그대로 멈춰져 있었다.


  번도 청소한  없어 보이는 베란다 창틀에 쌓인 시커먼 먼지를 닦아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엄마는 짐들을  정리하고 나와 함께 살자고 했다.  따윈 접어버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다.  앞에 좋은 도서관이 있으니 여기서 공부하면 된다,  동네는 공무원이 많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사람이 되라고 했다.


  "엄마, 난 글을 쓰고 싶어."


 그건 알겠는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란 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같았다. 아니 돌이켜보면, 6 전에도 엄마는 대화를   몰랐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남 탓으로 돌리던 엄마가 지긋지긋해서 연락을 끊어버린 나였다. 엄마와 오랜만에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고 었지 엄마는 불행의 씨앗을 나에게 돌렸다. 며칠간 두통에 시달렸다. 그랬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잊고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내내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 비로소  삶을 살면서 두통도 사라졌던 것이었다.


 엄마는 6 전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20    일을 이어하고 있는 엄마가 대단했다. 엄마는  200 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대출 상환금이  200이라고 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좋은 집에 살기 위해  가족의 추억이 깃든 아파트를 팔고 우릴  덕에 아빠와 나는 집 한 채 없이 따로 떨어져 살고 는데, 엄마는  집을 가진 대신   꼬박  돈을 그대로 상환하 살고 있었다. 노후를 위한 돈을 모아놨을  없었다. 나이가  들어  일조차 못하게 되면  빚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생각인지 걱정되었다. 문득 빌라 사는 아빠와 내가 더 이상 가난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넓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어느샌가  숨을 옥죄고 있었다.


 감당할  없는 빚을 안고 스스로 이곳에서의 삶을 택한 엄마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엄마는 그런  우려를 모르는지 " 여기 오면  수술시켜줄게.", " 차도   뽑아 줄게."라는  비현실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집을 갖기 위해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의 인생을 택한  보였다. 하루살이의 삶과 맞바꾼 쓰레기로 가득  집이라니, 무엇을 위해 이렇게  걸까? 외삼촌이 자주 놀러 온다던 며칠  통화 내용과는 달리 외삼촌 부부는 6 전에    잠시 들렀을   집에  누구도 들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없을 정도로 엄마는 쓰레기 집에서 이해할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엄마 집에 놀러 오던 첫날, 장을 보기 위해 들른 대형마트에서 엄마의 단골 가게 사장님은 내게 엄마를 가리키며 "엄마라고요?"를 연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해도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번이나 되물었다. 알고 보니 엄만 이곳에서 골드미스인  살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이 있다고, 딸이 있다고 하면 딸은 어딨는지, 남편은 어딨는지 사람들이 물어볼 까 봐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은  거짓말하고 지내  것이었다. 엄마의 기억이 6 전에 머물렀던 이유를   같았다.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진실이 들통날 수 있기에 벽을 치고 엄마가 만든 쓰레기집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엄마는 귀를 막고 있는 나를 보며 쉴 새 없이 가슴 아픈 말 쏟아 냈다. 내가 이상하다는 ,  엄마를 힘들게 하냐는 , 엄마를  이해해 주지 않냐는  내 탓을 이어갔다.  가족의 추억이 깃든  아파트에 살던 시절, 엄마의 그런 말들을 견뎌내기 힘들어  문을 걸어 잠그고 이어폰 음악 소리를 크게 틀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났다. 서른한 살의 나는 그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크게 틀어 엄마의 공격을 차단했다. 요란한 음악이  귀를 타고 흐르는 동안   없이 움직이는 엄마의 입을 보며, 살기 위해 이곳을 얼른 빠져나와야겠단 생각뿐이었다.


 육십이  되어 가족 없이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엄마를 구제해줄 경제적 능력도, 마음적 여유 부족했다. 엄마의 혀는 오랫동안 나의 심장을 갉아먹었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겨우 회복한 심장은 엄마와의 만남으로   만에 다시 부서지고 있었다. 삼일 내내 마음이 아팠고, 비참했다. 어렵게 다시 만난 엄마는 예전과 그대로 하나 변한  없이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  


 엄마가 어디 가서 결혼을   , 딸이 없는  거짓말한 것처럼,  또한 어디 가서 솔직하게 말할  없었다. 굳이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모두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 그저 엄마는 멀리 산다 말하고, 아빠와 함께 빌라에 사는 것을 숨기고 혼자 자취한다고 거짓말했다. 나는 진실되지 않은 것을 싫어한다. 거짓말하지 않고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오직 부모님 얘기에만은 자꾸 거짓말이 나온다. 부모님 얘기가, 사는 집 얘기가 나올까 봐 불안해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곤 한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자꾸 비참해져서 눈물이 나온다. 번듯한 직장 생활    본 적 없는 가난한 아빠는 자꾸 사기를 당하고 집에  연인을 데려오고, 쓰레기집에 사는 엄마는  자꾸 나를 . 부모님의 보호를 받아   없는 나는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엄마의 쓰레기집에서 나와 아빠와 사는 빌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나에게 엄마란 평생의 숙제와 같은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연이기에 쉽게 끊어   없지만 엄마란 존재는 내게 그리움에 사무쳐 때때로 열어보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다시 닫아버리는 녹슨 상자와도 같은 것이다. 가슴속에 녹슨 상자를 다시 묻어  채로 또다시 살아간다. 언제,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다시 열어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오래도록 괴롭히는 녹슨 상자를 차마 버릴 수는 없어 오늘도 가슴  켠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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