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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8. 2022

삼십 대 백수 딸과 육십 대 백수 아빠

 실업급여를 받은 지 5개월 차가 되었다. 마지막 실업급여를 받고 나면 나는 '공식적인 백수'가 된다.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직장, 준비되지 않은 채 세상에 나오게 된 나는 삼십 대에 뭘 먹고살아야 할 지에 대해 그간 부단히 고민해왔다. 계속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맞을까, 늦기 전에 또래들처럼 집단에 들어가 회사를 다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안정된 삶과 하고 싶은 걸 하는 불안정한 삶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퇴사와 동시에 바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2년여간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월세를 절약하기 위해 아빠와 집을 합치고부터였다. 꽤 오랜 시간을 각자 살았다 보니 생활패턴이나 공동생활의 룰을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는 자기주장 강하고 예민한 삼십 대 '개인주의' 딸이고 아빠는 육십 대의 자존심 강한 다소 '이기주의'의 경상도 할아버지이다. (어느 글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는 '내 것은 내가 치운다.'와 '내 것도 네가 치운다.'라고 한다. 글을 읽는 순간 아빠와 내가 떠올라 이마를 탁 쳤다.) 둘의 조합으로 가정의 평화를 누리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와의 갈등으로 나는 무수한 밤을 홀로 방에서 눈물로 지새웠다. 그렇게 시작한 방구석 먼지 같은 이야기이다.


 바람 잘날 없던 우리 집에 다툼이 '그나마' 줄기 시작한 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부터였다. 나는 아빠가 자존심이 세고 자주 버럭 하니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다. '부모니까'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길 바랬고 예전의 자상하던 아빠를 그리워했다. 아빠는 무던한 사람인데 엄마의 섬세한 역할까지 바랬던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해진 육십 대 아빠의 변화하기 힘든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둘 다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부딪힐 일이 많았고 서로를 배려할 만한 마음의, 경제적 여유가 없기도 했다. 뭘 하고 먹고살아야 할지 길을 찾아야 했던 나는 내 앞길 찾기 바빠 아빠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사실은 아빠가 나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배려해주고 있단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벽이 쌓이다 보니 갈등의 골도 깊어진 것이다.


 나는 젊음을 이유로 예전과 다르게 변해버린 아빠와 또래의 어른들을 나도 모르게 혐오하고 있었다. 코인 하락과 함께 가난해져 버린 아빠를 탓하며 아빠와, 가난과,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 돈 벌 방법을 찾아 빚도 갚고 벌이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도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 텐데, 느리고 무뎌진 아빠를 그저 한심하게 생각하고 미워했다. 아빠는 아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는데, 나는 참으로 거만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게 된 것이 아빠와의 갈등에서부터였지만 이전으로 거슬러 가 보면 어릴 적부터 서점을 데리고 다닌 아빠의 역할이 컸다. 책을 좋아하고 인생에 대해 깊게 고찰하기 시작한 것도 어릴 적부터 아빠가 항상 해주던 가르침 덕분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빠는 어릴 적 내가 존경하던 아빠 그대로였는데 내 마음이 변한 것뿐이었다. 미운 감정으로 아빠를 대해 왔던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미움의 감정이란 참 부질없는 먼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물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그 무게를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매 순간을 주변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없다. 때론 따로, 때론 함께하며 서로 부딪히기도 부둥켜안기도 하며 살아가야 한다. 혹여 주변 사람과의 갈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관계를 붙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놓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 보길 바란다. 모든 갈등을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한 번에 해결할 순 없지만 아빠의 노력을 미처 보지 못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이었던 모습을 반성한 삼십 대 딸처럼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게 어떨까.


 익숙한 현관 비밀번호 소리와 함께 산책을 다녀온 아빠의 얼굴이 방 너머로 보인다. "잘 다녀왔어요?" 삼십 대 딸과 육십 대 아빠는 어느새 사이좋던 여덟 살 딸과 사십 대 아빠의 얼굴이 되어 서로를 향해 환히 웃는다. 웃는 입꼬리가 제법 닮은 부녀의 모습이다. 오늘은 아빠와 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날이다. 무겁고 어두웠던 집안 공기는 봄 향기와 함께 밝고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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