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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0. 2022

6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쓰레기 집에 사는 엄마

 아빠와 지내면서 6년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쌓여만 갔다. TV '엄마'라는 단어만 나와도 울음이 터졌고, 무심한 아빠와 달리 과하게(?) 내게 집착하던 엄마의 관심이 그리웠다. 무관심보다는 과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일부러 연락을 끊고 지냈는데 염치없이 연락해도 될지 수많은 밤을 고민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전활 받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오랫동안 차단을 했는데 엄마도 내가 미울 거야.'


 속상하지만 어쩔  없었다.  후로도 아빠가 원망스러울 때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만 갔다.   ,    용기 내서 연락을 하기 위해 차단을 풀고  프로필 사진  엄마는 너무나도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난하고 칙칙하게 사는 아빠와 달리 엄만 행복해 보여 다행이었다. 때마침 작은엄마에게서 연락이 왔고,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아직도 엄마와 연락하고 싶지 않냐 물으셨다.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만 지난 6년간의 공백을 잊은  환하게 맞이해줬다. 미안함과 반가움에 한참을 울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랐던 엄마와 연락하게 되어 행복했다. 엄마는 엄마가 사는 지역으로 와서 같이 지내자고 했다. 감옥 같고 갑갑한 가난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말에 몹시 기뻤다. 그렇게 엄마를 만나러  약속을 하고, 6 만에 보는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하루하루 행복한 상상을 하며 약속한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엄마를 보러 가던 날, KTX를 타고 한 시간이 걸려 역에 도착하였다. 한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가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미움과 그리움의 복잡한 감정으로 가로막혀있었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엄마와 사이가 나빴던 예전 기억이 떠올라 또다시 싸우고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했다.


 6년 만에 만난 엄마는 통통했던 예전과 다르게 살이 쏙 빠져있었다. 엄마와 함께 역에서 나오는 길에 꽃집이 보였다. 엄마는 돈 쓰지 말라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엄마를 위해 꼭 선물하고 싶었다. 결국 엄마는 노란색, 분홍색, 다홍색 예쁜 꽃을 뒤로하고 제일 값이 저렴한 화분을 골랐다. "꽃은 금방 시드니까 오래가는 걸로 골랐어." '그까짓 꽃 자주 사주면 되는데.'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가 고른 화분을 사들고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좌석 문을 연 순간, 쾨쾨한 냄새가 잊고 있었던 기억과 함께 피어올랐다. 버리지 않은 물건들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시트와 쓰레기로 가득 찬 트렁크를 나는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엄마는 그대로였다.


 내비게이션이 위치를 잘 못 잡자 엄마는 당황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휴대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켜서 길을 알려줘도 믿지 않았다. 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 차가 쉴 새 없이 쿵덕쿵덕 뛰었다. 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줄여달라 했지만 엄마는 내내 화만 냈고, 쿵덕이는 차에서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엄마에 대한 기억이 꽤나 미화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장을 보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한참 동안 엄마의 수다를 들어주다 말을 꺼냈다. "엄마,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있어. 글을 쓰면서 엄마와 아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어. 글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돼." 신이 나서 얘기하려는 나를 엄마는 "과거 얘기는 하지 않으면 안 될까?"라며 가로막았다. 나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 엄마와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간 미워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결국 제대로 말도 못 꺼내보고 대화가 끊겨버렸다. 엄마는 글 쓰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 이곳으로 올라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 했다. 식탁을 가운데로 마주 보고 있는 엄마와의 거리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엄마 주변 사람들의 직업 얘기, 남의 자식 대학 얘기, 여기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얘기만 이어졌다. 나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다. 6년 전 엄마를 떠나온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엄마와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만 쏙 빼놓은 얘기로 가득 찬 저녁식사는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6년 전 그대로 또다시 해선 안될 말로 나의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어린 딸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줬던 엄마는 하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엄마에게서 벗어나 살면서 망각했을 뿐,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나의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엄마와의 만남은 기대와 다르게 산산조각 나버렸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6년이나 연을 끊고 늦게나마 내 삶을 살고 있었는데, 바보같이 제 발로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하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 문을 잠그고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울다 둘러본 방안은 어릴 적에 함께 살던 집의 가구와 짐들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뿌옇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봤던 날이 떠올랐다. 세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 집은 충격적으로 지저분하게 변해버렸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과일박스 옆에 새로 사 온듯한 똑같은 과일박스가 있었고, 온 집을 가득 채운 짐들 때문에 발로 짐을 툭툭 치워가며 다녀야 했다. 더러운 식기들과 유통기한 지난 곰팡이 가득한 음식들로 가득 찬 냉장고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와 내가 떠나간 후로 우리 집은 끔찍하게 변해버렸었다. 엄마는 새로 이사 온 좋은 집, 좋은 동네에서도 그때와 똑같이 살고 있었다. 겉보기에만 화려한 집에서 엄마는 여전히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밤이 어두웠기에 하는 수 없이 잠을 청하기 위해 내가 잘 공간만큼만 짐을 발로 밀어내고 휴지로 슥슥 바닥을 닦았는데 벌레 시체들이 계속 묻어 나왔다. 도저히 그 방에서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박차고 나오니 엄마는 나에게 안방에서 자라고 했다. 하지만 안방 화장실도 충격적이었다. 화장실에 온통 묻어있는 검은 염색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얼룩, 아무렇게나 바닥에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과 먼지들, 걸레처럼 쭈글쭈글한 상태로 걸려있는 냄새나는 수건, 사람 사는 곳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지저분한 욕실이었다. 나는 동이 트자마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마음먹고 얼른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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