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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0. 2022

가난과 아빠

가난의 쳇바퀴

 넉넉하진 않아도  삶이 가난하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십 년 동안 자취를 하다 삼십 대가 되고 아빠와 지내기 시작한 요즘, '가난'이란 단어가  많이 떠오른다. 아빠를  때마다 '가난의 모습' 떠오르는  왜일까?


 제멋대로 아무 데나 코를 풀어버리고, 밥을 먹다 젓가락으로 이를 쑤시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멋대로 쓰레기를 버리고, 과일 깎은 과도를 물로 슥슥 헹궈서 다시 제자리에 두고, 설거지해둔 컵으로 양칫물을 헹구고 다시 두는 아빠의 모든 습관들을 처음  순간은  그대로 충격  자체였다. 아빠는 뭐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다.  한마디를 해도 가르친다고 받아들이고 바로 화를 내기 일쑤였다. 학창 시절에 기억하던 아빠 자상하고 교양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락없는 독거노인의 모습만 남아있. 모든 행동은 아빠를 가난해 보이게 했다.


 아빠는 영어학원 원장이었다. 오랫동안 해온 영어 과외 경력을 살려서 내가 중학생이던 때 학원을 차렸고, 부모님 직업을 물으면 떳떳하게 학원 원장이라 하곤 했다. 비슷한 또래 어른들에 비해 동안이기도 했고, 잘생긴 외모에 교육자였던 아빠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웠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모르는 문제가 보이면 정리해뒀다 집에 와서 아빠에게 물어보곤 했다. 고시공부를 했었던 아빠는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 박학다식했다. 우리 아빠가 똑똑하다는 게 제일 자랑스러웠고 멋졌다. 그랬던 아빠는 엄마와 따로 지내게 되었고 학원은 공부방으로, 공부방은 원룸이 되었다. 코인 전업투자자가 되기로 결심한 아빠는 코인이 미래라 생각하고 마지막 수강생들이 수능을 침과 동시에 교육업을 관뒀다.

 

 나는 아빠와 빌라 살고 있다. 잠시 일을 쉬게 되면서 월세를 아껴보고자 아빠와 집을 합친 것이 화근이었다. 아빠의 전재산은 코인에 들어있었고 2021년 연말에 비트코인은 대폭락을 맞이했다.   , 거실 하나인 이 집에 내 보증금까지 묶여버렸다. 빌라가 따닥따닥 붙어있는 탓에 볕이 들지 않는  집에서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은 큰방과 화장실이다. 북향인 방은 그나마 창문이 크고 건물이 앞을 가리지 않아서 창문을 열면 바깥 날씨 정도는   있다.  방은 창문을 열어도 건물이 앞을 가리고 있어 하루 종일 볕이 들어오지 않고 캄캄하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  때마다 화장실에 달린 작은 창문을 열어 하늘색을 보고 바깥 날씨를 체크하곤 한다. 한껏 위를 올려다봤을  파란색이면 맑은 , 하얀색이면 구름  날이다.  이상은  자그마한 창문으로   없다.  키보다 훨씬 높이 있는  자그마한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감옥 같단 생각이 든다. 죄를 지어 독방에 갇힌 죄수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줄기. 창문 너머 세상 밖으로 나갈 날만 기다리는 죄수가  기분으로 내가 지은 죄는 뭘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이 집에 오고부터 종종 우울감을 느끼곤 했다.


 아빠는 부동산 하락론자이다. 아빠는 코인 시장이 좋을  수익이  몇억이라 떵떵거리며 기꺼이 지갑을 열지만 나는   몇억의 돈을   번도   없다. 어김없이 코인 하락의 순간은 다가오고 다시 아빠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운다. 집을 사니, 케딜락을 사니 했지만 결국 월세방에서 똥차를 몰고 있다. 아빠는 애써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인지 정치 유튜브만 주야장천 본다. 자신의 삶에서 사라진 희망을 그걸 보며 찾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김없이 볕이 들지 않는 비좁은 집에서의 가난한 삶이다. 정치판이 아빠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더라도 아빠는 가난과 함께일 것이다. 현실에선 시궁창 같은 삶이 반복될 뿐이다. 현실을 마주할 생각보단  다른 어딘가에 희망을  테다. 아빠에게서 '가난의 쳇바퀴' 보인다.


 아빠는 '살아온 대로 사는  편해서' 똑같은 쳇바퀴를 굴린다. 그럼 또다시 가난이 따라온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하면서도 어느덧 주위에 자리 잡은 가난을 안락하고 편하게 느끼는  같다. 그리고... 가난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다준 고가의 선물보다도 온라인에서 싸게 주고  싸구려 물건들을 좋아한다. 아빠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 가난의 굴레로 파고들려 한다.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았다. 가난이라는 고리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비좁고 금방이고 더러워지는 싸구려 장판의 집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작은 발걸음 소리도 크게 울려 퍼지는 층간소음에 매일 시달리는 이곳에서, 배수관을 타고 툭하면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난한 집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큰방에서 흘러나오는 정치 유튜브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빠는 몹시 즐거워 보인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글을 써내려 간다.


 '절대 가난의 피에 물들지 않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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