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빠지면 곤란해

숙제 먼저 하고 놀아야지

by 오아린
게임 먼저 하면 안 돼요?

매일같이 듣는 말. 아들은 언제나 숙제에 앞서 놀고 싶어 한다. 그러면 나는 늘 단호하게 말한다. 할 일을 먼저 끝내야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다고. 아빠는 회사 일을 모두 마쳐야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엄마는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서야 책이라도 편하게 펴 볼 수 있는 순리다. 노동 후에 휴식이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초딩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가 일곱 살 때까지는 미디어 노출은 있었어도 굳이 게임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는 오락실을 다니거나 집에서 동생과 게임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1인 1 핸드폰 시대가 되어 빠르면 일곱 살 때부터 모바일기기를 휴대하고 다닌다. 특히, 놀이터에 보호자 없이 나와 노는 아이들 중 누구 하나가 휴대폰을 갖고 있다면 삼삼오오 모여 게임 영상을 보거나 쇼츠를 보게 된다. 예전과 달라진 요즘 아이들의 놀이터 문화다. 무조건 미디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해로 내용에 노출되거나 어린 뇌가 게임이나 영상에 중독이 될 수 있는 점이 우려스럽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중독성 강한 것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다. 검열되지 않은 영상 환경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이 미디어 시대를 살 수는 없으니, 부모의 적절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성숙한 자녀의 게임중독을 방지하고자 쓰는 글은 아니다. 이쯤에서, 이것은 미숙한 배드민턴 수강생의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회고 에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레슨을 받는 사람들은 체육관에 도착한 순서대로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 겪으면 길게 느껴지는 10분간 코칭을 받는다. 조금 늦게 도착하는 날에는 앞에 대여섯 명이 있다. 그러면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내 순서가 된다. 신발을 갈아 신고 스트레칭 5분, 자세 연습 5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난타에 10분을 할애한다. 그러고도 레슨은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하므로, 멀뚱히 다른 사람들의 게임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한두 게임 정도 하게 된다. 대개 복식 게임인데 대충 하다가는 게임 분위기를 흐리거나 파트너에게 민폐가 되므로 진지한 눈빛으로 임한다. 한 게임이 끝나는 데는 15분에서 20분이 걸린다. 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레슨 차례가 되어 이만 총총 재미 좀 본 기분으로 코치님 곁으로 간다. 땀 좀 흘린 수강생은 숨을 고르며 선생님 얼굴을 살핀다.


게임하면서 힘 빼고 오면 레슨 받을 수 있겠어요?


아차, 싶었다. 그전에도, 그 지난번에도 아뿔싸 했었는데. 혼나는 다른 왕초들도 많이 목격했었다. 나야말로 숙제하고 놀아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망각한 채 눈앞의 게임에 현혹되었다. 훅 들어오는 게임하실래요?라는 말에 Why not?같은 표정으로 넙죽넙죽 응했던 나였다.


클럽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게임 규칙도 모르고 할 줄 아는 기술도 없어서 게임이라는 것은 보고 듣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저기 감히 낀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권하지 않았다. 클럽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클럽은 왕초도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선배들이 게임 룰도 알려주고 난타를 치듯 게임도 시켜준다. 2개월이 넘어갈 때쯤 준비운동이 끝나고 멀뚱히 있으면 게임에 초대되어 한 두 게임하다가 레슨에 들어가는 루틴이 생겨버렸다.


그전까지는 코치가 지난 시간에 가르쳐준 자세를 레슨 순서가 될 때까지 연습했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수업하는 코트 근처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면 선생님은 즉석에서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옆에서 콕 던지는 연습을 하라거나, 제자리에서 라켓을 잡고 손목 쓰는 연습, 런지 자세로 스텝을 밟아 떨어진 셔틀콕을 주워 오는 것 등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왕초들은 줄지어 서서 레슨에 최적화된 컨디션으로 워밍업 할 수 있었다.


아까워요. 처음에는 자세가 아주 좋았는데.


이런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내가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높아야 할 타점이 점점 낮아졌다. 실점하지 않으려면 공을 놓치지 않는 안전한 위치에서만 치게 되었다. 없는 실력으로 게임에서 이기려다 보니 듣보잡 기술들이 펼쳐졌다. 멀리서 코치는 이런 왕초들을 애석하게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코치는 더 이상 돌리지 않고 말해주었다.


"게임하고 오니까 자세 다 흐트러졌어요. 고치는 데는 배로 시간이 걸려요."

아, 그제야 깨달았다. 레슨순서가 언제든 간에 정석으로 배운 자세를 복습하며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야 복습할 시간이 확보되고 최소한 자세가 잊히거나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복습 1시간+자세 망가지는 신나는 게임 1시간=그나마 실력유지" 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때부터는 게임 요청을 거절하기는 힘드니 애초에 선생님 뒤편 사각지대에서 레슨을 기다리며 혼자 연습했다. 지루하면 레슨이 끝난 분이 치워야 할 셔틀콕들을 앉아서 같이 주우며 다른 회원들이 배우는 것을 구경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운동, 개인 연습, 난타로 꼼꼼하게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수업 전 게임은? 금물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일단 편하게 느껴지는 자세를 고수한다면, 손목이나 팔목 어깨가 고장 날 수 있다고 한다. 당장은 잡는 법이 낯설고, 휘두르는 자세가 몸에 익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드민턴의 역사만큼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완성된 방법이니 믿고 따라야 한다. 내 몸이 편한 대로, 공이 잘 맞는 위치를 고집하면 실력은 늘지 않고, 통증이 생긴다고 한다. 대회에 나가서 우승한 동호인 중에 엘보 통증을 호소하는 분이 있었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쳐서 그렇다고 했다. 이기고 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즐거운 운동을 오래도록 하려면 정석을 익혀야 할 것이다.


배우고 나서 칠 것. 이제 개인 연습 시에는 무대 위 한편에 달린 전신거울을 보며 자세를 확인한다. 처음에는 어쩐지 부끄러워서 거울 앞을 피했는데, '선생님 저 게임 안 하고 개인 연습합니다.'라고 보여주기식이지만 어필하고 싶었다. 게임을 거절하지 못할까 봐 순서도 아닌데 총총총 레슨 코트 쪽으로 간다. 어쩐지 그때부터는 코치님의 지적이 덜 매서웠고, 못해도 응원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숙제하고 올게 기다려라 얘들아.


게임에 빠지는 순간 배드민턴이 더 좋아지고 잘하고 싶어지는 것은 맞다. 왕초들의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들을 많이 보았다. 동시에 스트로크와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도 보였다. 게임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배드민턴의 섭리를 지키자는 것. 제대로 배워서 똑바로 치자.


레슨이 끝나고 떨어진 셔틀콕을 다 줍고 나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1시간.


자- 이제 놀아볼까! 눈빛을 갈아 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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