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개망하는 일

도로아미타불 관세음맙소사

by 오아린

입회 5개월 차 왕초보 두 명이 대회에 나간다는 말이 클럽 내에 퍼졌다. 우리 클럽에는 A레벨 선배들도 여럿 있었으나, 그 사람들이 '진짜'라고 말하는 스트로크의 교과서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A 위에 S레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바로 그분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배드민턴 입문자들은 먼저 책으로 이론 공부를 하면 좋아요."

라는 말을 해줬던 분이다.

'웬 책? 운동을 글로 배우나?'

하고 넘겼었다.


같은 클럽 회원이 대회에 나간다는데 영 준비가 안된 모습에 걱정이 되었는지 수시로 와서 자세를 바로 잡아주거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었다.


"준비운동을 한 자리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죠. 실내이지만 몸을 예열하기 위해서 몇 바퀴 뛰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혼자 뛴다.


"언더클리어를 할 때는,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잘 이해되도록 말하자면, 다른 사람 치마 속을 들여다본다는 듯이 고개까지 숙여 낮은 타점에서 쳐야 합니다." 하며 경쾌한 소리로 빵- 쳐 올린다.


"준비 자세에서 라켓 머리가 바깥쪽을 향하고 있으면 개-망!입니다. 이렇게 들고 있는 사람들은 만년 배워도 안 늡니다. 걸어 다닐 때도 채 끝이 몸 쪽으로 향하게 들고 다녀야 합니다."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개망. 개(매우) 망하는(실패스러운) 준비자세. S급 선배님의 고급진 이미지는 순식간에 흩어진 동시에 준비자세의 정석은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그 이후로는 꼭 라켓 헤드가 안쪽으로 사선 방향이 되게 잡고 준비한다. 그래야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포핸드 또는 백핸드로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왕초 중에는 그립이 돌아가있는 사람도 있고 갑작스럽게 백핸드로 변환이 어려워 왼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는 아쉬운 경우도 많다.




레슨은 주 3일로 월 수 금요일에 있어 주로 해당 요일에만 체육관을 다녔었다. 대회까지 남은 기간은 열흘 남짓.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했다. 파트너 언니와 나는 자연스레 월 수 금 말고도 화요일, 목요일도 연습을 하러 체육관을 찾았다. 그리고, 주말에도 나와서 연습을 하자고 약속했다.

"토요일 배드민턴 치실 분 계신가요?"

밴드에 가입인사글 이후 첫 글을 남겼다. 사정을 아는 내향인 동지 여러 명이 내가 낸 용기에 최고예요를 눌러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2년 차 왕초와 D레벨 선배들은 본인들이 아는 필살기들을 마구 전수해 줬다.


초심자 레벨에서는 롱서브만 제대로 넣어도 몇 점은 딸 수 있다든지,

클리어만으로도 승부를 볼 수 있다든가,

소심한 사람들은 벌벌 떨다 보면 어느새 경기가 끝나 있다나.


그동안 몰랐던 비법들을 입수한 우리는 주말이 끝난 후 월화수목금 매일 체육관에 출석해서 경기력을 다졌다. 왕초 동지들은 우리의 작정한 눈빛에 놀라기도 하였다. 역시 대회 준비하면서 많이 는다는 말이 맞다면서.


대회 전날. 이 정도 준비했으면 됐다 싶었다. 너무 달렸나 싶기도 한 피로가 느껴지기도 했다. 시험 전날은 무리하지 않는 학창시절의 경험도 떠올랐다. 오늘은 좀 쉬엄쉬엄해야겠다 다짐했다. 승부욕에 빠지면 쉬는 것을 까먹기도 하니까. 클럽에 게스트가 많이 온 날이라서 잘하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오늘은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트너 언니는 어깨를 만지며 구석에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다. 우리 한 게임만 하고 집에 가서 쉬자고 했더니 오늘 병원을 가볼까 싶다고 미안해하며 말한다. 어깨가 계속 불편했는데 오늘 염증 주사를 맞고 좀 쉬면서 내일 전력을 다할 거란다. 언니 미안해하지 마요. 오늘은 내일을 위해 쉬는 게 좋겠어요. 그래- 너 하는 거 영상으로 찍어줄게. 저도 한 게임만 하고 쉬러 가야겠어요.


"아린 씨, 우리 애들이랑 한 게임 하자."

갑작스러운 A레벨 선배의 제안. 고등학생 게스트 두 명과 게임을 했다. 기술은 별로 없어도 엄마의 강한 팔을 닮았는지 빵- 빵- 멀리도 잘 치는 학생들이었다. 처음 보는 서브와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에 헉헉댔다. 단식에서 쓰는 롱서브가 기세 좋게 계속해서 날아왔다. 그들은 대각선으로 클리어를 보내는 것이 주특기였다. 학생들 힘이 참 좋다며 기분 좋게 진 것 마냥 빠지는데, 한번 더 하자고 한다. 지쳐서 몸이 좀 무거워진 것 같았지만 혼자가 된 나는 거절할 용기와 명분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들의 수도 보이겠다, 이기고 집에 가야겠다고 응했다.


오케이, 그대들 대단한 롱서브! 예측해서 받았고-.

그렇지, 머리 위로 날아오는 클리어! 예상해서 되받아쳤고-.

그리고,

전위를 지키던 A선배의 오른쪽 뒤편으로 날아오는 애매한 스매시,

코트 왼편에 서 있던 나에겐 멀지만 스텝을 크게 해서 달려가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발을 잘 안 움직인다고 했었으니까,


핫 ㄷ, 으 ㅇ 뿌드득....!!


으학-, S선배가 발이 꺾일 때는 저항하다 더 다치지 말고 차라리 그냥 넘어지라고 했었지.

넘어지자.


우당탕탕!!! 쿵-.


웅성웅성, 사람들이 다가온다.



에이 참...이거 완전 (개)망했는데?


나를 넘어뜨린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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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