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도 대회에 나간다

돌고 돌고 도는 로테이션

by 오아린


선수 등록 하세요

클럽에서는 분기별로 동호인 선수 등록 시기가 있다. 언젠가는 경기에 나갈 테니 미리 선수 등록을 해둔 것이 다행이었다. 등록을 해두지 않으면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같은 시기에 입회한 동기들끼리 단톡방이 있어서 너도나도 등록하자고 의기투합한 덕에 등록을 한 것이다. 나보다 조금 뒤에 클럽에 가입한 왕초는 금방 실력이 늘었지만 선수 등록을 하지 않아 이번 대회 출전은 아쉽게 못 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신 나와 파트너 언니를 볼 때마다 며칠 남았냐며 응원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클럽의 다정한 왕초들의 마음을 모아 더 열심히 연습해서 잘하고 와야겠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겼다.


클리어, 스매시, 헤어핀, 언더, 드라이브 정도까지 레슨을 받은 A와 B가 대회에 나간다는 말이 돌자, 선배들도 격려 반 걱정 반의 눈으로 조언과 코치를 쏟아냈다.


똑바로 안 온다. 라켓 안 돌아가게 잘 잡아봐요.

롱서브는 더 확실히 멀리 보내야지.

언더 방향이 어떻게 돼요.

스텝 배운 대로 해야지.

목적을 가진 공을 쳐야지.

퍼져야지.

공격했으면 파트너는 앞으로 들어가고.

높이 뜨면 퍼지고.

들어가고.

퍼져!!


우리는 퍼지지도 나올 줄도 몰랐다. 사실 클리어도 언제 써야 하는지 잘 몰랐다. 애매한 수비와 어중간한 공격만 계속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왕초들 사이에서는 먹혔다. 왕초 중에서는 진도가 제일 빨랐고, 게임을 할 때는 주로 왕초들끼리만 했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자리배치나,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전략적인 수비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당신은 공격형 플레이어니까 주로 앞에서 전위를 지키라는 말도 주고받았다.


로테이션합시다


파트너와 나는 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레슨 시간에 로테이션을 배우기로 했다. 수비대형과 공격대형을 날아오는 공에 맞춰서 그때그때 만들어야 했다. 핵심은 빈 곳 채우기. 빈 곳은 공격이 들어오기 좋은 허점이다.


주의할 점은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 파트너가 공을 높이 띄우는지 낮게 때리는지 확인하러 고개를 뒤로 돌리다간 자칫하다 얼굴을 맞을 수 있다. 내 머리 앞쪽으로 날아가는 공을 보고 클리어인지 스매시인지 확인하고 대형을 만들어야 한다. 클리어로 높고 길게 넘어간다면 처음의 수비대형으로 돌아간다(네트와 평행 대열, 수비대형). 하지만 스매시가 머리 앞쪽으로 낮게 뻗어간다면 나는 앞쪽 중앙을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한다(네트와 수직대열, 공격대형).


초보들은 공을 치고 나서 발이 멈춰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다음 공에 대한 대응이 늦어져 놓치기 일쑤. 배드민턴은 가만히 있는 순간이 거의 없는 운동이다. 공이 나한테 오지 않더라도 그 움직임에 따라 빈자리를 찾아 다음을 준비하며 쉴 새 없이 스텝을 밟아 이동해야 하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멀리서 보면 두 명이 다이아몬드 모양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리 돌고 저리 도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서 스매시를 계속 때리다 먹히지 않으면 한 번쯤 스매시 대신 클리어를 쳐서 대형을 바꿈으로써 한 템포 여유롭게 전략을 만들어갈 수 있다. 클리어는 공격을 위한 전 단계로써 자리를 재정비하기 위해 쓰는 기술이었다. 제일 먼저 배우는 클리어가 중요한 이유는 내 몸이 익히는데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도 하지만, 잘하게 되면 상대 팀 선수를 코트 끝 이쪽저쪽으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가 불분명한 스트로크는 로테이션을 헷갈리게 한다. 클리어는 클리어답게 높이, 스매시는 스매시답게 때려줘야 파트너가 공의 신호를 보고 자리를 제대로 잡을 수 있다. 클리어도 스매시도 아닌 어중간한 공은 상대방이 공격하기 수월하도록 내어주는 기회가 된다. 특히, 전위에 있다가 그런 공을 맞닥뜨리게 되면 질끈 눈이 감기며 수비는커녕 공에 맞을까봐 등을 돌리고 싶어진다.


이런 것도 모르고 '언니는 전위를 무서워하니까 내가 앞에 주로 서 있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매시를 때리고 뒤를 지키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던 것이다. 공이 무서우면 뒤를 지키고, 공격이 강하면 앞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코치에게 로테이션을 배우며 저 멀리 아주 멀리 날려버렸다.






이제 대회까지 남은 날은 열흘 정도. 다른 클럽에서 우리 체육관에 놀러 온 왕초보 선수들이 게임도 제안하였다. 우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지 대회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었나 보다. 같은 초보들끼리니 붙을 만하겠다 싶어 응했으나, 결과는 대패. 알고 보니 왕초보라고 말하는 기간은 최소 시작한 지 한 달부터 2년까지 매우 길었다. 그 사람들은 구력이 1년 반이었고, 로테이션은 물론 빈 곳이 생기면 바로 그곳으로 스매시를 꽂을 줄 아는 노련함이 있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셔틀콕을 손으로 줍지 않고 라켓 헤드로 무심하게 주워 올리던 여유였다. 왕초도 라켓으로 공을 주울 수 있다니. 아니, 저 사람들은 왕초가 아니라 레벨 D급으로 어서 승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게임 내내 져서 떨어진 콕을 이삭 줍는 우직한 농부들처럼 자꾸만 허리를 숙이며 점점 주눅이 들었다.


공이 라인에 떨어질 때마다 상대편 플레이어들은 공이 땅에 닿기도 전에 OUT!!을 외쳤다. 그러면 우리는 IN 아니냐고 조용하게 구시렁거린 말을 목구멍 뒤로 넘겼다. 우리에게는 기세라든지 깡도 부족했다. 그런 것도 구력 안에 포함되는 것 같았다.


구력 5개월. 이제 걸음마를 뗀 유아 같은 배친자가, 뛰어노는 어린이들 사이에 껴서 곧 있을 달리기 시합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심정이었다.


종종종 짧은 스텝을 숨길 수 없다.

날아보려는 기세로 쉬지 말고 날개를, 아니 실력을 달아야 한다.

종종종. 뱁새야 퍼뜩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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