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하듯이 채찍 휘두르듯이

정확하게 맞잡고 매우 쳐라

by 오아린
너는 말을 참 나긋나긋하게도 한다

좋게 말하면 나긋나긋, 지적을 한다면 매가리가 없다는 뜻이다. 통역대학원에서도 수없이 들었다. 오상은 메리하리(メリハリ:강약, 팽팽함과 느슨함)가 없군요. 한국어도 매가리가 없는데 일본어도 그렇다니. 문제는 언어에 앞서 눌린 성정인가 싶었다. 딱히 무엇에 억눌려 자란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를 키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분위기를 해친다든가 화를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미숙했던 신조가 나를 누르고 또 눌렀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고 싶어서 알맹이가 약한 목이 되었던가.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 의견을 죽이는 것이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화를 참는 것이 덕으로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도 아님을.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특히나 엄마로서 화를 참고 넘기는 것은 아이들을 훈육할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인내였다.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은커녕 무시를 당하기 쉽다. 화는 수용 가능한 감정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선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나를 지키며 부정적인 감정을 숙련되게 표현할 줄도 알아야 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한 번도 화를 건강하게 다뤄본 적이 없었다. 참고 참다가 엉뚱한 대상에게 스윽 번지는 짜증이 다였다. 그것이 친정엄마가 될 때도, 남편이 될 때도 있었다. 육아 중 사소한 설득에도 애를 먹은 날은, 뒤돌아서 설거지하던 중에 접시를 소리 나게 떨어뜨려(보고 싶기도 했고) 깬 적이 있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정도의 해프닝이었지만, 나는 내가 무서워졌다. 이 쌓여가는 평생의 화를 어찌한단 말인가. 참고 참고 더 참다가 혹여나 내가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화는 형태를 바꾸어 질병이 될 수도 있는 에너지였다.




"정당하게 치고받고 싸우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복싱을 배워요."

아들 육아에 고민이 많은 약 400명의 한국 엄마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이었다. 웃음도 잠깐, 흘려 넘길 수 없는 깨달음과 충격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 엄마라고 왜 공격성이 없겠는가. 엄마도 모성애만큼이나 본능을 가진 인간이다. 내재된 공격성. 그것을 아들을 키우며 재발견하는 순간이 나만 있었던 것은 아니리라. 평생 화다운 화를 내 본 적이 없었고, 누구와도 싸워본 적이 없던 나지만, 아들을 반듯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적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화 낼 줄도, 때릴 줄도 몰랐다. 어쩌면 첫째 아이는 온화하거나 참는 것 중 하나인 엄마를 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정당하게 칠 것이 필요했다. 시원하게 내리치면 먼지처럼 쌓여 딱딱해지고 있는 화 덩어리들을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사그락 책장을 넘기는 정적인 독서는 아이를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줬지만, 점점 커지는 화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눌린 것들을 바깥으로 던져 보는 과격한 행동을 해보고 싶었다. 배드민턴을 치며 유난히 "때려!"를 많이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파트너는 "쳐, 쳐!" 한다. 때려고 치는 순간, 평생 쌓이기만 했던 화딱지들이 두들겨 맞고 사방으로 튄다.




팔이 굽었는데요


빵-! 빵-! 소리만 들어도 속이 시원했다. 한 번씩 시범을 보여주는 코치님은 팔다리도 긴데 자세까지 완벽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클리어로 맞고 시원하게 뻗어가는 셔틀콕 또한 그 깃의 출처답게 새처럼 날아간다. 나는 사랑과 욕망의 신, 큐피드의 마음으로 부지런히 자세를 따라 했다. 날아오는 콕을 보고 왼손을 허공에 뻗쳐 조준한다. 오른팔은 접어서 뒤로 당겼다가 라켓 헤드를 어깨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 휘둘러 올리며 공을 쳐 낸다.


퉁-. 나의 클리어는 공 소리가 약했다. 매가리 빠진 증상이 또 발현되었다. 라켓이 활이고 셔틀콕이 화살이었다면 화살이 튕겨지는 것만 보더라도 그 누구도 해칠 수 없는 소리였다. 총이어도 마찬가지. 빵-! 이 아니라 벙- 같은 소리가 났다. 선배들이 한마디씩 하러 온다. 파트너도 귀띔해 준다. 코치님은 몇 번이나 얘기한다. "팔이 왜 다 안 펴져요?"


죄인! 그대 타점이 어디에 있는고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레슨보다 게임에 심취한 것을 보고 코치님은 기술을 덜 익힌 상태에서 자꾸 게임을 하니까 치기 편한 타점으로 치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시선 가까운 위치에서 클리어를 치려다 보니 팔이 덜 펴진 상태에서 상대방이 받아치기 쉬운 위치로 치는 것이다. 본래 클리어란, 상대편 머리 뒤로 넘어가도록 높고 길게 뻗어주며 우리 팀이 시간을 벌기 위한 기술이다. 어정쩡한 클리어를 치면 되레 공격을 당하기 쉽다.


게임을 줄이고 타점을 높여보아도 클리어는 잘 고쳐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참이나 헤맨 끝에 배드민턴 책을 뒤적이다 해답을 찾았다.


채찍을 휘두르듯


선생님의 클리어 자세에 반해, 배드민턴에 콩깍지가 씌었던 순간 나는 그것을 양궁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즉, 정확히 조준을 해서 정방향으로 드라이브 치듯 세게 때리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빵! 소리는 나지 않았고, 팔은 늘 덜 펴진 상태로 어정쩡한 클리어를 보내고 있었다. 채찍은 무엇인가. 힘을 주는 것보다 스냅이 중요한 도구이다. 비튼 것을 풀 때 나오는 스냅이 적용되고 있는지 보기 위해 영상으로 내 자세를 체크해 봤다.


배드민턴 클리어 자세에 쓰이는 골반부터 어깨, 팔꿈치, 마지막으로 손목까지. 각 단계에서 뒤로 비튼 다음 차례대로 풀어내며 가속이 붙고 붙어서 셔틀콕이 제대로 발사되었는가. 그것이 라켓 헤드까지 전달되어 분출될 때 총소리가 난다. 내 문제는 라켓을 잡는 법에 있었다.


1) 헤드 면을 수직으로 세운 그립(상대방이 내미는 손)과 내 손을 악수하듯이 잡고 머리 뒤로 넘겼다가 공중으로 셔틀콕을 치려고 할 때 면을 정면으로 돌리면서 손목을 튼다. 골반-어깨-팔꿈치-손목으로 스냅이 연결되며 최종 가속이 펼쳐진다.

2) 헤드 면을 수평으로 눕힌 그립(상대방의 손바닥)과 내 손을 포개서 악수를 하고 공을 치려 한다면 헤드 면이 일직선으로 뒤로 누웠다가 일어나는 것뿐이므로 골반과 어깨 팔꿈치를 제대로 돌렸어도 잘못된 그립 때문에, 손목에서 힘을 잃는다.


배드민턴으로 마당놀이 하는 사람들은 몸 스냅을 이용하지 않으며, 게다가 2) 후자의 방법으로 채를 잡는 사람이 많다. 이 사소하고도 큰 문제로 인해 팔이 접혔었고 매가리가 없는 클리어가 되었다.


공을 던지는 원리와 같다. 로봇처럼 각 관절이 뻣뻣하게 고정된 채 힘으로 던지는 것과, 몸에 힘을 빼고 반동과 회전을 이용하여 던지는 것은 비거리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바르게 악수하듯 잡고 더 시원하게 휘두를 수 있는 배드민턴이었다.




이제 한고비. 첫 번째 큰 산을 넘어가고 있는 왕초보는 구름에 가렸던 두 번째 산, 스매시라는 가파른 언덕을 발견한다. 클리어산을 먼저 올라간 왕초보 파트너와, 그 뒤를 따라 여전히 지적을 받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따라가는 나에게, 어느 날 회장님이 묻는다.


- 두 분 여자복식으로 배드민턴대회 나가 볼래요? (배친자들, 대회 나가고 싶죠?)

- 예?! (제가요?)


나는 흠칫하고 옆 코트에서 수업 중인 코치님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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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