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 무시하다 큰코다친다

누가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다 하였나

by 오아린
그냥 집에 있는 걸로 하면 됩니다. 운동화도 깨끗한 거 아무거나 들고 가세요.
VS
운동은 장비빨이지. 좋은 걸로 사. 매장에서 추천해 주는 거 사면 돼.


둘 중, 어느 말이 맞을까. 첫 번째는 최근에 승급대회에서 D등급을 달고 왕초보를 졸업하며 우승으로 받은 가방을 지원해 준 동네 이웃의 말. 두 번째는 구기종목은 약하지만 그 외 취미가 부자인 남편의 말이다. 트렁크에 자고 있는 라켓과 신발장 구석에는 쓸만한 신발도 있었지만, 늘 장비빨 세우는 남편의 표정에서 뭔가 더 확신이 보여서 새로운 것을 사기로 했다.


먼저 신발이다. 직접 추천받은 신발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디자인이 겹칠 것 같아서 일단 피했다. 신어보고 사는 것이 정확할 텐데 매장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온라인에서 깔끔한 외양과 리뷰를 살펴보며 배드민턴 전용 운동화를 샀다. 레슨 전날 배송된 운동화는 빨리 신고 싶은 마음에 내 발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을만하다 싶어 개시를 해버렸다. 바닥이 전체 고무로 되어 있는 것이 무게감을 더하고 외관이 낯설어 평소에는 신을 수 없는 모양새다. 가벼운 일반 운동화와는 느낌이 달랐다.


절뚝거리며 나에게 걸어오는 지인의 신발은 깨끗한 일반 운동화였다. 레슨 중에 신발 안에서 발이 헛돌았다는데 아무래도 다친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끈이 헐겁게 묶여 있었고 평소 보행할 때 발이 갑갑하지 않도록 신었기 때문에 발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나 보다. 아직 기본 동작을 배우는 단계에서 다쳤으니 망정이지 이대로 계속 갔다가 크게 접질렸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에 아찔했다. 살짝 삔 것 같다고 하니 며칠 쉬면 낫겠지 싶었다. 그런데 코끼리발이 되었다며 보내주는 사진을 보니 부기도 심하고 멍도 많이 들어 있었다. 지인은 운동화 대신 반깁스용 초록 슬리퍼를 신고 한 달 넘게 휴식 기간을 가졌다.




운동 메이트를 잃은 나는 허전한 마음에 신발을 바짝 조여 매며 허공을 살핀다. 고무가 마룻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천장에 닿도록 뻗친다. 삑삑-삐빅-. 넓은 체육관을 울리는 마찰소리는 이제 소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지키는 버팀목 소리로 바뀌어 들렸다. 발을 내딛을 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또는 신발에서 발을 딱 감싸는 압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뛸 때 생기는 충격 에너지는 어디에서 받을까. 근육이 붙지 않는 발은 거의 뼈와 인대로만 구성되어 있다. 저항 없이 눌리는 발에는 염증이 생길 것이며, 잘못 착지하면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난다. 그러니 발을 딱 감싸주는 운동화만이 절대적인 보호장비가 되며 바닥은 반드시 고무 밑창이어야 한다. 이쯤 되니 아쉬움이 올라온다. 아, 신어보고 살걸. 취향을 따지다가 안전을 소홀히 한 것 같아 찝찝함이 남는다.


그러나 신발이 잘못한 것은 없다. 알고 보니 내 발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운동이 끝난 후 신발을 벗으면 눌렸던 부분이 붉게 압박된 흔적이 있다. 아프기도 해서 한의원에 가봤다. 부주상골증후군이라 한다. 주상골이라 하는 뼈는 발 안쪽 복사뼈로 모든 사람이 튀어나와 있는 부위이다. 그 아래 부주상골이라 하는 뼈가 문제였다. 보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데, 유전이나 무리한 운동, 불편한 신발이 요인으로 이 부분이 튀어나온 사람이 전체 중 10% 정도라고 한다. 발을 착 감싸는 운동화를 계기로 통증이 느껴졌고, 덕분에 신체 중 몰랐던 부분의 명칭도 알게 되었다. 운동이 과했던 날 통증이 있으면 얼음찜질로 관리하면 된다고 한다. 부주상골을 누르지 않는 모양과 발 아치를 받쳐주는 깔창 항목을 추가하여 새 신 찾기에 나서야겠다. 어쩐지 유리구두에 맞는 매끈한 신데렐라 발 찾기가 더 쉬울 것 같다.

복숭아뼈가 두 개 더 많거든요




배드민턴 스텝에는 바닥으로 내리 딛는 런지 자세가 많다. 스텝이 들어가면서부터 무릎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운동 후 반나절 이상 통증이 남는 곳은 오른쪽이다. 이쪽이 약했던가. 과거에 무릎 보호대를 써 본 적 있는 다리였다. 요령이 없어서 첫애를 두 돌 때까지 안고 업으며 재울 당시 영차! 소리를 내며 오른쪽 무릎에 주로 의지했었다. 장기간 과로하여 약해진 오른쪽 무릎을 잊고 있었는데, 존재감 없었던 오른쪽 슬개골이 불현듯 화끈거리며 말썽을 부렸다. 아픈 무릎을 덜 쓰려다 보니 자세도 흐트러졌다. 코치님 표정이 안 좋다. 곧장 정형외과를 찾았다. 운동 시작하자마자 이럴 리 없다고 믿으며 물어본다.


"이 정도면 약 먹으면서 계속 운동해도 괜찮은 거죠?"(별거 아니라고 말해줘)

"안 하는 게 제일 좋죠. 근데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실 건가요?"(말 안 들을 거 다 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무섭게 하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물리치료를 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는데 평소에는 관심이 안 가던 코너에 시선이 간다. 보호대 코너다. 어깨 팔 무릎 발 다양한 목들을 보호하라고 까맣고 짱짱해 보이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다. 배드민턴에 필요한 근육이 키워지기 전까지 놀란 슬개골과 강할 리 없는 무릎 부속물을 지키기 위해 무릎 보호대를 새로이 장만했다. 사실 보호장비는 아프기 전에 예방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또 한발 늦었음을 깨닫는다. 톡톡-! 여기다 이 바보야, 하며 뒤통수 때리듯 내가 아플 곳을 한발 늦게 짚어주는 배드민턴의 정령이라도 있는 건가.



더 이상 통증을 따라다녀서는 안 될 일이다. 배드민턴이 나를 밀어내는듯한 얄미운 기운을 꺾고 싶었다. A급 선배들의 루틴을 관찰했다. 그들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와 무심하게 준비운동을 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준비운동에 쓴다.

늘리면서 버티는 동작이 많았다. 큰 근육부터 작은 근육 순서로. 예를 들면,

1. 기지개를 머리 위로, 뒤로 크게 젖혀 내리며 허리, 등, 팔을 늘려준다.

2. 한쪽 팔죽지를 다른 팔로 끼워 눌려서 당겨 푼다.

3. 손목을 돌리고 손바닥을 반대로 젖힌다.

1. 다리를 한 쪽씩 옆으로 뻗어 뒤꿈치를 바닥에 대고 늘려서 푼다.

2. 한 발로 선 채로 다른 쪽 허벅지를 가슴 쪽으로 가까이 당기며 감싸안는다.

3. 양 무릎을 손으로 잡고 돌리고, 발목을 한 쪽씩 돌린다.

양손으로 벽을 짚고 앞으로 미는 듯 등을 풀거나, 무대 앞쪽에 한쪽 양반다리를 걸치고 긴 호흡으로 버티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끝났는가 싶었는데, 실내체육관을 뺑뺑이 돌며 워밍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정도는 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인가. 준비운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신 보호대였다. 정성 들인 준비운동으로 꼼꼼하게 감고, 마무리 운동으로 야무지게 풀어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회원들은 이미 본인이 취약한 부분에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손목 보호대, 무릎 보호대, 종아리를 압박하는 카프슬리브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공도 가볍고 채도 가벼워 거의 맨몸 운동에 가깝다 생각한 배드민턴인데 이렇게 부상이 많을 수 있다니 놀랍다. 무엇보다 운동에 들어가기 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의 부재가 컸다. 내 몸을 몰랐고, 준비물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나도 아픈 곳이 없어 보였던 동호인들이 이제는 한 군데씩은 아픈 곳이 있어 보인다. 모두들 다스리면서 쓰는 것이리라. 누군가의 가방에 꽂힌 에어파스를 멍하니 바라보다 레슨 호출에 화들짝 놀란다.


오늘 레슨은 클리어 연습이다. 클리어는 셔틀콕을 높고 길게 띄우는 기술이다.

코치가 기계처럼 정확히 한 곳으로 공을 던져준다. 나도 높고 길게 쳐서 보낸다.


"아린님, 근데 공을 왜 자꾸 저한테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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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