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가득한 클럽

조용하고도 시끄러운 공간에 들어서다

by 오아린

클럽을 찾은 것은 초봄의 2월이었다.

같이 시작하기로 한 지인은 일상이 바빠서 미리 등록할 것까지는 없다 하였다. 나도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나 시간을 내서 미리 가보고 싶었다. 동호회에 가입하기로 한 결심과 별개로 시작하는 마음을 준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 어쩐지 앞뒤가 바뀐 것 같지만 늘 학원 등록 전에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짧게라도 하고 며칠 후에 수업이 이루어지는 인생을 살아왔었다. 당일 가입에 당일 시작은 체할 것만 같았다.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향인이다.
내가 정의하는 내향인의 특징이란,

1. 집을 나서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2. 행동에 앞서 생각이 많다.

3. 다수보다는 소수의 만남을 선호한다.

4. 시끄러운 곳 보다 조용한 곳이 편하다.

5.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회복된다.


이러니 배드민턴을 배우기로 결심하는데만 2년이 걸렸던 것. 그런 내향인이 혼자서 동네 체육관에 도착했다. 막상 무거운 실내체육관 문을 열자니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투명한 사무실 유리창 너머 직원을 찾았다.

"배드민턴 클럽 가입하려고 하는데요. 어떤 분께 물어보면 될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는데요. 안에 들어가 보세요."

"혼자서 찾기에는 어려운데... 혹시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예의 바른 진상 고객을 물리칠 재간이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직원과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방문객이 함께 외부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그들에게 다가간다. 여러 코트에서 연습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위치에서 누군가와 직원이 눈짓으로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저분한테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자리를 떠버렸다.

열려라 참깨! 많이도 망설였도다.




천고가 높은 실내체육관에는 눈부시게 하얀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있다. 그 아래 공중으로는 희거나 검은 셔틀콕이 날아다닌다. 공을 다양한 자세로 때리는 사람들은 가벼운 옷을 입고 쉴 새 없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눈 마주칠 사람이 보이지 않기에 하릴없이 공중제비를 나는 공을 하염없이 눈으로 좇으며 구석에서 공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기로 해본다. 갈색 롱패딩에 검정 롱부츠를 신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은 장소와 계절을 잘못 찾아 들어온 흡사 한 마리 곰 같은 영혼의 소유자.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뒤돌아 바깥에 나가있기로 한다. 그런데 마침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문의하셨던 분인가요?

".. 아, 네 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일명 전화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력이 없을 때면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받는 일이 꺼려진다. 이번에도 전화로 한 번에 끝내면 될 상담을 굳이 문자로 답변을 요구했었다. 단체로부터 텃세를 받을까 두려워 되레 내가 세상에 텃세를 부리는 꼴이 아니었나 싶다. 문의했던 사람인지 확인하는 말에 머리가 쭈뼛 한번 더 민망해진다.


회장님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회원가입서를 들고 다가온다. 목과 팔에 흐르는 땀이 손으로 내려와 종이까지 눅눅하게 만들었다. 땀을 이렇게까지 흘리는 운동이라니. 실내에서 비가 내리는 것 같다는 농담이 떠올랐지만 머리 뒤로 밀어내고, 가입신청서가 찢어질까 봐 조심스레 글씨를 적었다. 밴드에도 가입을 한 후에 간단한 소개글을 남기고 얼굴이 잘 보이는 사진을 프로필로 저장하라고 한다. 글은 남들 따라 쓰면 되겠는데 '얼굴이 잘 드러난' 사진에서 내향인은 생각이 또 많아진다.


철커덩. 무거웠던 체육관 문이 닫히자마자 잽싸게 밴드가입을 했다. 이번에는 온라인 사전답사다. 다른 멤버들의 사진을 살펴본다. 얼굴이 크게 찍힌 셀카부터 전신사진까지 다양했다. 옆모습이거나 멀리서 찍힌 사진이 많았다. 나도 그 분위기에 맞는 적당한 사진을 찾느라 휴대폰 갤러리를 뒤져본다. 운동 중에 구분될 내 얼굴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화장기가 없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운동 직후의 사진을 찾다 보니 두 해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내 사진첩에 살아남은 내 독사진들은 거의 평소보다 잘 나온 것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살 어렸던 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속이 복잡한 나는 다행히 겉으로는 무던해 보인다. 내향인이 많은 그룹에서는 외향적인 역할을 맡기도 한다. 2시간 정도는 충전된 사회력을 쓰다가 집에 와서 방전되는 편이기는 하다. 그런데 어쩐지 이 체육관 속 클럽 분위기가 그랬다. 내 외향가면을 꺼내 써야 얼른 친목이 형성될 것 같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다들 운동에 열심히였고, 낄 코트가 없는 것이 아니면 쉬지를 않았다. 이렇다 할 대화도 오가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보다 밝고 크게 인사를 해야지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가입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눈을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모두 소리를 놓치지 않고 화답인사를 해준다.


클럽에 왕초가 들어오면 기존 회원들이 난타를 함께 쳐준다. 배운 스킬이 없으므로 공을 맞추는 감각을 익히는 연습으로 자유롭게 치는 것이다. 공을 놓치지 않고 치고는 있으나 어쩐지 등 뒤로 앉아 있는 다른 회원들의 존재가 신경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난타가 끝나면 다른 선배가 와서 그립법이나 기본자세 등을 살펴봐줬다. 그런 조언들이 대체로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이, 슥 와서 속삭거리듯 알려주고 갈길 가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요점만 간단히 도움 주는 분들이 세련된 신사숙녀 같았다. 커다란 실내, 코트 위의 회원들, 지켜보는 사람들. 나는 이 공간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왕초들도 레슨이 끝났거나, 코트가 여유가 있으면 선배들 사이에 껴서 혹은 왕초들끼리 게임을 하기도 한다. 보통은 구석 자리인데, 아주 간혹 중간 코트가 비면 선배들이 가장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왕초들에게 중간에서 하라고 말해준다. 공이 더 잘 보이니까 좋겠다 싶어서 같은 팀 왕초에게 옆으로 갑시다 했더니, 가운데는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왕초에 내향인 동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잘 치시니까 괜찮다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 잘하던 분이 정말이지 가운데 코트로 옮긴 이후로 영 시원찮아졌다. 이런 것에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내향성은 생각보다 무던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뒷 순번이었던 레슨 순서가 다가와 코치님 곁으로 가서 대기를 했다. 선생님 뒤편에 있으면 난타를 치자거나 게임을 하자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또 다른 신입왕초가 근처에 앉아있었다. 사회성이 거의 소진된 나는 얼마 없는 외향성을 꺼내 질문한다.


"레슨 하셨나 봐요? 저기 코트 비었던데요?"(저기로 가 주면 좋겠다)

"아니요. 레슨 기다리고 있습니다."(안 간다)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있고 싶었던 회원이었던 것 같다.


"레슨 순서가 제 앞인가요?"(가라고)

"아니요. 뒷번호입니다."(안 간다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 레슨을 하셨다 했나요?"(가)

"... 안 했다고..."(안 가)

슬슬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때, 누군가가 다리를 절며 나에게 다가왔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