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배드민턴에 빠질 준비는 되었는가
미친 자와 비슷한 어감이라 아마도 그런 건가 싶었는가. 그렇다. 배드민턴에 미친 자의 약자이다. 나는 올봄부터 예년의 눈빛과 사뭇 다른 광기 비슷한 것을 지니고 다녔다. 실력이 모자란 자의 열의가 가상했는지 실력자들이 게임에 끼워주기도 하였다. 클럽에 함께 입단한 초심 동지가 나를 지켜보더니 한마디 했다. "네 눈이 돌아 있더라."며. 한 번씩 듣기는 했다. 가끔 당신의 눈이 무서워요 같은 말. 독서토론에서 혼자 다른 주장을 할 때, 형제 다툼에 나서서 중재역할을 할 때, 남편에게 잔소리할 때. 세상에 주로 방어하고 수비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이다만 가끔은 말을 공격적으로 쏘아야 풀리는 상황들이 있었다. 아집처럼 느껴지는 발상이지만 두고 보기만 해서 풀려버린 나사 같은 상황을 드라이버로 쪼듯이 나서는 것이다. 무엇보다, 좀처럼 균형을 잃기는 싫어해도 한 번 빠지면 매섭게 파고드는 나였다. 그런 쪼임이 신체에도 필요해진 것 같았다.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을 생활화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슈퍼계획형 성격이기에 중간에 포기할만한 제약요소를 모두 검토했다.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는 점, 길면 70대까지도 할 수 있다는 점 등. 테니스와 배드민턴 중에 '멋있다'는 요소가 두 운동 사이에서 저울질하게 만들었으나, 비용과 접근용이성이라는 항목에서 테니스는 아쉽게 탈락되었다. 한 번씩 친구를 데리고 동네체육관에 가 보기도 하였다. 라켓과 셔틀콕은 늘 트렁크에 구비되어 있었고 평상복에 가까운 운동복에 깨끗한 운동화만 챙기면 되었다. 게다가 코트비도 한 시간에 천 원.
견학차 오전 시간에 체육관에 가보기로 했다. 마라톤 복 같은 경량소재의 짧은 복장을 한 다수의 아저씨들이 앞쪽 무대 쪽에 긴 가방들을 늘어놓은 채 네 명씩 여러 코트를 쓰고 있었다. 옆 코트에서는 일대일 수업인지 어쩐지 혹독해 보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 더!! 하며 손으로 셔틀콕을 한 곳으로 계속 던지고 그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강생은 헉헉거리며 계속 받아냈다. 선수지망생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반 레슨이었다.
퍽(여기다)!! 빡(여기 보라고)!! 셔틀콕을 후 드려 패듯 치는 아저씨들이 다시 우리 시선을 일제히 잡아끌었다. 견학인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주려는 듯 마침 라켓이 부러지는 광경(우리 장난 아니거든)도 목격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나와 친구가 웃으며 핑퐁 하는 배드민턴은 지나가는 애들 장난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당시 외부인이었던 내 눈에도 그 사람들 역시 단체로 미친 사람들 같았다. 모두 땀으로 옷이 홀랑 다 젖었는데도 집에 갈 생각들이 없어 보인다. 힘든 기색도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해봐서 아니까 자문자답이 가능하다. 바로, 재밌으니까! 눈이 빛나는 것이고 그만큼 진심인 것이다.
문득, 미친 것을 말하니 생각나는 인생 책이 있다. 저자 로맹가리의 <자기 앞의 생> 첫 페이지에는 "오직 미친 자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라는 말이 나온다. 마치 미친 것처럼 무엇에 빠진 적이 있는가. 살면서 한 번 정도 미쳐보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닐까. (물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내 글에서는 이렇게 변용하고 싶다.
"오직 배친자들만이 배드민턴의 맛을 알 수 있어."라고.
동시에, 단체로 미친 그들 속에 나도 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