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아니고 스포츠

바람은 헛스윙을 거들 뿐

by 오아린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움직이기 딱 좋은 온습도. 라켓 세 개와 셔틀콕 세 개를 챙겨서 남편의 손을 이끈다. 배불리 먹었으니까 소화시키러 나가자고. 애들도 따라 나온다.

목표는, 왔다 갔다 열 개.


네트가 걸려있지 않은 야외 코트지만 상관없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잘 넘겨주기만 하면 되니까. 큰 애는 아빠와 한 팀. 채가 없는 작은 애는 나와 한 팀. 큰 아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 잘못하다간 채까지 날려버릴 기세의 몸짓을 보인다. 다섯 살 작은 아이는 장비도 없고 실력도 없어 하릴없이 떨어진 셔틀콕을 이리저리 잽싸게 주우러 다닌다.


가끔 바람이 휙 불어서 공이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깃털 공은 가벼워서 바람이라는 변수를 잘 살피며 쳐야 한다. 바람이 불면 잠깐 기다렸다가 서브를 넣어야 몇 번이라도 더 주고받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초딩에게 날아간 공은 전력으로 휘둘러 맞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엄마 잠깐- 이라며 발밑에 떨어져 있던 공을 발견해서 내 앞으로 난입해 오는 둘째의 머리도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열 번은커녕 다섯 번도 쉽지 않다. 무엇에 애를 쓴 것인지 이마와 등에는 땀이 맺혔다. 30분만 치려던 것이 40분을 넘기고 있다. 해가 떨어지고 있어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운동을 마쳐야 한다. 두 아이는 옆에 빈 농구코트로 넘어가 주인 없는 공으로 놀고 있다. 셔틀콕보다 몇십 배는 커진 공이 컨트롤하기 수월한지 신나게 공을 튀긴다. 우리는 이제야 인간 방해꾼들 없이 열 번을 채울 수 있겠다는 눈빛을 교환한다. 자- 집중 집중.


바람이 없는 사이 서브를 넣었다. 반가웠던 살랑바람도 이제는 나머지 훼방꾼으로 느껴진다. 놓칠세라 발도 재빨리 움직여 공을 받아낸다. 어쩐지 남편의 실력이 예전보다 는 것 같다. 두세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우리는 열 번 주고받기에 성공했다.

-여보! 잘한다. 실력이 늘었네?

-이번에는 양손으로 쳐봤다네.

-...?!


그러나 다시 하자고 하기에는 하늘이 어두워졌고, 땀은 원하는 만큼 흘렸다. 하긴, 처음부터 제대로 된 배드민턴은 아니었다. 네트도 없었고, 코트 라인을 지킬 생각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실외에서 했다는 것부터 목표를 달성하기 힘든 조건이다. 집으로 가면서 남편이 묻는다. "왜 양손으로 치면 안 돼?"


애초에 배드민턴이라는 스포츠를 하기로 했다면, 남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콕이 날아왔을 때 라켓을 다른 손으로 넘겨서 치는 순간 반칙 적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을 활용한 마당놀이를 했달까. 그것은 국민체조, 좋게 말해 국민운동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뭐, 양손으로 쳐도 상관없지."


바람에 날리면 날리는 대로, 어디까지가 IN이고 OUT인지 경계 없는 코트 안에서 점수가 아닌 횟수를 채우며 놀았던 배드민턴이다. 많이 맞추지 못해도 채를 휘두르기만 하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국민운동이 된다. 앞마당에서 즐기는 대국민 체조는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숨 가쁜 30분 이상의 유산소 활동만으로 족하다. 상대방이 치기 쉽도록 받아쳐주는 센스만이 기술이다.



공을 어디로 주는 건데

그러니, 나는 제대로 배우려고 간 체육관에서도 자꾸만 코치님 몸 쪽으로 공을 날리는 것이었다. 국민운동에서 스포츠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선생님은 공을 앞쪽으로 똑바로 치라고 수없이 얘기하면서 반대편 네트 너머 대각선 앞쪽에 서 있다. 공이 떨어져야 하는 위치를 지정해 줬음에도 나는 말을 안 듣고 계속 사람을 향해 준다. 채 휘두르기 마당놀이의 부작용인가.


배드민턴은 사람이 없는 곳에 공격해서 상대방이 못 받아야 점수가 나는 종목이다. 레슨에서 정확한 스트로크를 연습하는 이유다. 보내려고 하는 공의 방향으로 강하고 정확하게, 힘 있게 날리거나 힘을 빼고 거리를 조절하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지나 달이 뜨나 배드민턴은 실내경기로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공중에서 훼방을 놓는 자연물이 없으며, 바닥에 떨어진 땀이나 깃털은 즉시 치우고서 경기를 재개한다. 하얀 바탕이어야 색깔이 잘 구별되듯, 장비부터 공간까지 거슬리는 것이 없어야 진짜 배드민턴을 할 수 있다. 라켓을 잡는 손가락 하나가 위를 향하냐 아래를 향하냐에 따라 공을 칠 수 있고 없고가 정해지는 세심한 운동이니만큼 환경 또한 변수가 있으면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콕이 쳐지는 소리, 신발이 바닥에 마찰되는 소리가 잘 들리고, 자세와 스텝이 눈에 잘 들어온다.


앞에! 뒤에! 빈 곳!

네트를 가까스로 넘어가는 공을 받기 위해서는 공이 떨어지기 전에 그 지점까지 이동해야 한다. 가만히 서서 팔만 휘두를 생각으로 있다면 실점이다. 내 머리 위를 넘어가는 콕을 어떻게 해서든 네트 너머로 넘겨야 한다. 게임 중에 빈 곳을 찾아 앞에! 뒤에! 공을 떨어뜨려 보는 선배들의 솜씨에 왕초는 뒤늦게 앗 비명을 지르며 따라가기 바쁘다. 네트 쪽으로 나아갈 때는 펜싱선수의 자세로 두세 걸음 큰 스텝을 박자에 맞춰 가야 한다. 또, 뒤로 넘어가는 공은 깨갱발 스텝으로 후진하는데, 공이 뜬 위치를 바라보며 허리를 젖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으로 쳐내야 한다.


선배들이 끼워주는 복식 게임에서 왕초보들은 빈 곳을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 공격을 넣는 상대방 한 명과 우리 팀 두 명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삼각형 구도로 수시로 변형하며 배치하는 것이 안전하다. 삼각형 구도가 허술하거나 사라지는 즉시 허점이 생겨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스매싱이 날아온다. 축지법에 가까운 스텝이나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는 것 아니고서야 받아낼 재간이 없다. 기본기를 갖춘 뒤에 게임을 하게 된다면 속히 로테이션을 익혀야 앞에! 뒤에! 빈 곳!이라고 알려줘도 못 치게 되는 답답함을 줄일 수 있다.


기본 구력이 10년 내외인 선배님들은 왕초보 새내기들이 날리는 공만 봐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바로 안다. 게임을 끝내고 잠깐 쉬는 그들은 눈에 보이는 허점을 바로 잡아주러 한 분 한 분 다가와 짚어주고 간다.

-(틀렸네.) 준비 자세 해봐요.

-(틀렸어.) 채 한번 잡아봐요.

-(틀렸는데.) 서브 넣어봐요.

-(틀렸다고.) 팔이 안 펴지는데.


말로만 들어서는 고쳐지지 않는 습관들이 굳어가고 있었다. 내 눈으로 살펴봐야 이해가 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동원하기로 했다. 동영상 녹화를 하며 연습을 했다. 뭐 도대체 어떻길래 다들 잔소리인가 싶었다.


클리어를 하려는 자.

집에 돌아와 영상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아... 뭐 하냐."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