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도 선하게
민주 언니. 그녀는 나와 함께 인생 배드민턴 첫 대회를 함께 하였다. 내가 클럽에 가입하고 적응 중이던 시기에 혼자 입회 신청을 하러 체육관에 총총 뛰어 들어왔던 첫인상이 기억에 선명하다. 혼자서 왔구나, 혼자서. 나도 홀로 이곳에 들어왔기에, 무거운 문을 열고 구름 위를 걷는듯한 그 어색한 발걸음을 잊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팔놀림에 주저함이 없었다. 배드민턴 외 다른 운동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시작부터 주눅이 덜 들어 빨리 배우는 시원스러운 모습이 있었다. 나는 열린 마음과 솔직한 눈으로 관찰하게 되었고, 순하고 단단해 보이는 민주언니에게 말을 붙였다.
-(왜) 엄청 잘하시는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분명) 많이 쳐보셨죠?
-아아, 남편이 하고 있어서 저도 2년 넘게 대회장 따라다니고 가끔 같이 치면서 배워요.
-(역시나) 그렇군요, 부럽습니다.
착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을 응원하러 다니다 이제는 함께하고 싶어서 배우러 온 것이니까. 그리고 언니는 계속 웃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시작되었다는 눈빛과 함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 또 새로운 분위기를 가졌다.
그래도 내가 2개월 앞서 들어왔으니 멀뚱멀뚱 혼자 있으면 챙겨줘야지 싶었다. 실력이 좋은 선배가 잡아주는 게 좋지만, 그들은 대부분 게임하느라 바빠 오랫동안 잡아달라고 하기도 미안하다. 하릴없이 초심자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난타를 쳐야 했다. 멀리서 짬이 난 선배 동호인이 보다 못해 와서 한 수 가르쳐주고는 하니까.
-언니, 난타 치실까요? (죽을 쑤어 봅시다)
-네, 좋아요. 클리어합시다.
-오, 오! 오, 오! (밥 같은 죽이다!)
-어? 잠시만요. 저 라켓 줄이 터졌어요.
말이 되는 건가. 믿을 수 없었다. 초심자가 줄이 터지다니. 거트 스트링 작업을 맡기고 돌아오는 언니에게 놀란 눈으로 묻자, 더 큰 눈으로 답해주었다. 잘못 빗맞으면 터진다고(그런 것도 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임팩트가 좋다는 말, 그 이상의 증명이었다. 크게 될 인물이 아닌가.
민주 언니와 대회 준비를 하며 많이 배운 것은 클리어도 스매시도 아닌, 대회에 임하는 자세였다. 대회에 같이 나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도, 크게 망설이지 않고 좋다고 한 것부터 '나가서 깨져봐야 는다'라는 공식을 익히 봐와서인지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언니는 늘 입으로 오케이를 외치고, 눈으로 스마일을 잃지 않는 강한 초심자였다.
다니던 체육관에서 벗어나 다른 체육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다른 모임에도 민주 언니를 따라가 볼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내향인이지만, '깨지러 다니는' 것에 진심인 언니는 낯선 곳도 잘 다녔다. 원래 운동하는 시간인 오전 타임을 벗어나 주말 새벽 아침, 평일 저녁에도 시간이 나면 배드민턴을 친다고 했다.
정신은 이미 승급자의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부부는 한 몸이라는 말대로, 배우자의 구력만큼이나 보는 눈과 기준이 언니에게도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여 익혀야 하는 실제 구력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고.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실력이 쌓이는지도 아는 것 같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틈나는 대로 연습하고 피드백 받기. 지적받아도 웃으며 예-이! 하는 언니였다. 제대로 들은 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밝았다.
-저녁에 시간 되면 다른 체육관에 함께 가보자. (네? 집에 아이들은?)
-대회가 주말에 열리니까 앞으로도 우리 초심자 중에 스케줄 되는 사람끼리 대회 나가자. (어?그래도 되나?)
-이 병원에서는 발목만 치료하고, 엘보는 또 다른 맛집이 있어. (응...? 괜찮은 거?)
안될 게 없이 말하는 민주 언니의 말들이 모두 나에게는 주옥같이 느껴졌다. 나는 자주 성격이, 가족이, 시간이, 몸이 각각 핑계로 작용되어서 좋아하는 것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었다. 아니,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안돼'부터 생각하는 나와 '하면 돼'로 시작하는 언니의 열정과 광기는 결이 달랐다. 그 곁에서 한 달간 밀착 연습을 한 결과 나도 모르게 언니를 닮아갔다. 덕분에, 그간의 내 세세하고 답답했던 성격이 조금 시원하게 풀어진 것을 느낀다.
열심히 기어다니던 초초심의 스트롱베이비들이 이유식을 떼고
이제는 뛰거니 날거니 하며 서로 밥을 사겠다며 난리여서
앞으로는 승급하는 사람만 한턱을 낼 수 있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언니, 요즘 정-말 잘해.
-오-예!!
-제일 먼저 승급할 거 같아.
-예-이!!
정말이지, 그녀는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 슈퍼 햇살 파워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