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주에서 요 몇 년 동안 다른 주보다 범죄율이 낮게 나타난 원인을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20년 전 그 주에서는 다른 주와 다르게 낙태를 허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낙태가 불법인 주에서는 어쩌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 정서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읽어주었던 이야기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 외딴 섬에 양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섬엔 맛있는 풀도 많았고, 맑은 우물도 있었고, 풍경도 좋아서 양은 참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양은 우연히 파도를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혹시 내가 잠든 사이 저 파도가 나를 덮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양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산 중턱에 있는 동굴로 올라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양은 불안했다.
‘혹시 저 파도가 동굴까지 덮치면 어쩌지?’ 그래서 양은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갔고 그럴수록 불안은 더욱 늘어만 갔고 양은 더더욱 깊이깊이 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무도 그 양을 보지 못했다.
몇 명의 아이와 그 아이 엄마들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경훈이는 내가 볼 때 천재인 것 같다. 5살인데도 웬만한 한자는 다 외운다. 학습력이 엄청 뛰어난 아이다. 하지만 그림 실력은 꽝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돌배기도 그보다는 나을 성싶다. 한자나 글자와 단어 등은 그리 잘 알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라면 힘들어한다. 세모와 네모는 더더욱 어렵다. 경훈이의 지능이 궁금해서 카우프만 지능검사를 해보니 학습력이 IQ 142로 나왔다. 그런데 정서 쪽은 IQ 89 정도로 경계선 지능을 살짝 벗어났다. 뇌의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새가 양쪽 날개로 날아야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데, 이리 양 날개가 차이 나니 어찌 멀리 날 수 있을까?
경훈이네 엄마는 경훈이가 어릴 적 이혼하고 우울증을 앓았다 한다. 엄마가 한 번 잠들면 경훈이는 혼자 알아서 놀아야만 했다. 이처럼 경훈이는 기본 학습 두뇌는 천재로 타고났지만 어릴 적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했다. 이런 경훈이에게 엄마는 늘 상 짜증을 내며 대한다. 살갑게 대하는 것을 그닥 본적이 없다. 말도 참으로 짧다.
“이거 하랬잖아!”
“집에 가자”
“안 돼”
얼굴도 늘 어둡다. 마음이 짠하다. 이런 천재적인 두뇌를 조금만 보담아 준다면 엄청날 텐데….
경훈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큰데 살갑지가 못하다.
지민이는 참 예쁘게 생겼다. 갸름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을 가졌다. 그리고 참 똑똑하다. 그림 실력도 대단하다. 그런데 말이 없다. 눈으로만 얘길 한다. 선택적 함구증인 것 같다. 이 증상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자기가 편하게 느끼는 사람과는 얘길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얘길 하지 않는다.
“어머니! 꽃을 그렸는데 너무 색상이 다채롭고 좋아요!”
“뭐, 다 그렇게 그리는 거 아니에요?”
어떤 날은
“어머니! 지민이가 청설모 털을 참 잘 표현했죠?”
“옆에 친구가 더 잘 그렸는데요”
지민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큰데 칭찬이 참으로 박하다.
센터에는 동명인 도훈이가 있다. 큰 도훈이 얘길 먼저 하겠다.
어느 날 도훈이 엄마가 인터넷을 보고 센터에 찾아왔다. 엄마는 도훈이가 지능발달이 느리고 ADHD 성향도 높다며 걱정을 많이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수업을 해봤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 제가 볼 땐 도훈이가 지능이 낮은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높으면 높았지. 그리고 ADHD 성향도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니에요. 4살 때까지 눈을 못 맞췄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예요. 매년 지능검사를 해보는데 늘 낮게 나왔어요. 올해 해보니 많이 좋아졌어요”
도훈이 엄마는 도훈이랑 이야기를 참 재밌게 한다. 한 번도 도훈이에게 소리 지르는 걸 보지 못했다. 수업하지 않으려 할 때도 윽박지르지 않고 조근조근 설명한다. 그러면 도훈이는 엄마의 뜻에 따라 수업을 한다.
도훈이를 많이 사랑하고 또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작은 도훈이는 엄청남 웅변쟁이다. 잠시도 입이 가만있질 못한다. 입으로 그림을 그렸으면 몇 트럭은 그리지 않았을까? 도훈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재미없어한다. 그런데도 엄마는 어떻게 꼬셨는지 늘 잘 데리고 온다. 도훈이도 불만 없이 잘 온다. 그렇게 재미없어하면서도. 도훈이 엄마는 그 말 많은 도훈이의 말을 다 들어준다. 그리고 대답도 꼬박꼬박 해준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짜증 날만큼.
도훈이를 참 많이 사랑하면서 관심 있게 들어주고 답변한다.
모든 동물이 정서를 느끼지만, 정서를 조절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는 자녀에게 본인의 정서를 잘 다스려 조근조근 이야기하므로, 아이가 산만하더라도 마음은 덜 다치게 된다. 정서적으로 어려운 엄마는 자녀에게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지 못하고 ‘욱’하고 소리친다. 이러한 엄마의 정서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작은 눈송이가 조금씩 조금씩 쌓이듯 아이의 마음에 쌓여간다. 결국, 그 작은 눈송이 하나 하나가 쌓여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아이의 마음은 삐뚫어져 비행이나 우울로 이어지게 된다.
센터를 하면서 ‘아이는 엄마에 따라 변하는구나'를 배웠다.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그리고 이웃이, 사회가, 나라가 행복해지는구나….
운전면허증을 따야 운전을 할 수 있듯,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자녀자격증을 따야 자식을 키울 수 있게 하자던 주장이 생각난다. 안 그래도 자식을 낳지 않아 문제인데 자격증까지 따라면 더 낳지 않겠구나!….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