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외가에 간다
-주영기 수필집을 읽고
최원돈
조그만 집 속에 기와집이 있다.
희자(喜字) 격자무늬 끝에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장지문 앞 섬돌 위에 화초가 놓여있다. 마당에는 나무에 가린 돌우물 사이로 장독대가 있고 기다란 기와 돌담이 가지런하다.
<나는 오늘도 외가에 간다>
주영기 수필가의 수필집 표지 그림은 외손녀 이아영의 그림이다. 외할머니의 추억 속 외갓집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작가는 오늘도 외가로 간다고 했을까. 얼마나 얘기를 들여 주었으면 어린 외손녀가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예닐곱 살 적 오리를 걸어서 간 외할머니의 추억이 서린곳이다. 육이오 그해 여름은 토마토농사가 풍년이라 대청마루엔 소쿠리마다 토마토가 가득했다. 할머니는 어린 외손주가 메워할까 봐 김치를 물에 씻고 찢어 밥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밥 한술 뜨면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얼른 집어 밥 위에 얹어 주셨다."
그 맛을 못 잊어 오늘도 감기기운으로 입맛을 돌려본다.
"이제는 외할머니도 친정어머니도 내 곁에 없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그립고 아련함으로 꿈속의 외가 동네를 서성인다. 아직도 예닐곱 살인 나는 타박타박 오 리나 걸어 외가에 가는 중이다. 언제쯤 외가에 닿으려나 그저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오늘도 외가에 간다
나도 올 유월 외가에 갔다. 오 십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외갓집 찔레꽃을 보러 갔다.
"사랑채를 돌아 안채 마루방을 지나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 머 물던 작은방 앞에 멈추었다. 낡은 문틈으로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규수 시절 이 방에서 수를 놓으셨다. 어머니가 손수 수놓은 목단꽃 한 폭이 우리 집에 있다. 어머니는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그 수를 놓았으리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새 교과서 네 권을 받았다."
책이 귀한 시절이라 아버지는 달력을 찢어 책 표지를 입혀 붓글씨로 써 주었다. 엄마는 진감색 세루 천으로 자수를 놓아 가방을 만들어 주었다.
어렵던 시절이라 월사금 독촉을 받고 집으로 간 딸애의 눈물을 보고 아버지는 교장실로 달려가 따졌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따로 불러 가방을 가져오라고 했다. 교실을 아무리 뒤져도 가방은 없었다. 선생님은 새책 네 권을 보자기에 싸서 안겨주었다.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목에 감아주며 꼭 안아 주었다. 선생님은 울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어릴 적 선생님이 안겨 주시던 교과서 네 권 을 잊지 못한다. 나를 꼭 안아주시며 등 뒤로 울고 계셨던 선생 님의 흐느낌을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영원히 잊지 못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마음의 귀중한 책이다." -내 마음의 책
그 시절 우리는 월사금을 제 때 못 내면 집으로 쫓겨갔다. 집에 가 보았자 돈이 있을 리가 없다. 학교 뒷동산에 올라 풀밭에 누워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 하염없이 보았다. 학교로 돌아온 나는 손바닥에 자 끝으로 매를 맞았다. 철없던 시절 선생님은 야속하기만 했다. 뒷동산에 올라서 보았든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시골로 귀촌한 시누이가 보내온 햅쌀을 받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다섯 마지기 농사를 지으며 어떻게 하던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아버지였다. 어느 해 장마로 보리농사를 망치고 아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보리를 져다 방안에다 말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참으로 애간장이 탈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얼마간 방에서 말린 보리로 연명을 했다. 보리쌀에 팥을 넣어 불긋불긋해진 보리밥은 차지고 부드러워 먹기에는 좋았다. 대나무 소쿠리에 보리밥을 퍼 담아 삼베 보자기로 덮어 놓으면 학교 갔다 온 우리들은 찬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아버지의 여름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보리밥을 많이 먹었다. 여름날 광주에 담아놓은 삼베로 덮어놓은 꽁보리 밥이지만 찬물에 말아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보리밥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돈 주고는 절대 사 먹지는 않는다. 그 시절 배 고팠든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주영기의 수필을 읽으면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書如其人이라 했든가.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오늘도 외가에 간다>는 주영기의 이야기이자 그 시절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이다. 본문 곳곳에 그린 작가의 그림을 보면 畵如其人이라 해야겠다.
나도 오늘은 외가에 가고 싶다.(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