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은 정확한 값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략 가치가 정해져 있다. 집, 자동차, 토지, 가구 등 모두 사고파는 가격이 있다. 그리고 이 가치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만, 원활한 거래를 위해서 대략 표준 가격으로 정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가치는 대개 금을 기본으로 하여 발행하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로 표시되는데 이는 금을 가지고 다닐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현재는 꼭 금 본위정책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가치라는 것이 사물뿐만 아니라 생명체에도 정해져 있어서 돈을 주고 사거나 판다.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이 그러하며 심지어 물에서 사는 물고기도 그 가치가 정해져서 시장에서 사고파는데, 그 수요나 공급에 따라 가격은 변동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평범한 동물이 어느 한 가정의 반려동물로 키워지면 그 가치가 달라진다. 주인 없던 고양이나 개가 어느 가정에 팔려서 그 가정의 주인과 반려동물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순간 그 동물의 가치를 더 이상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그 주인에게는 더 이상 동물이 아닌 가족과 같이 간주되어서 돈을 준다고 해서 팔지를 않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농사짓는데 기계가 일을 하기 때문에 이제는 소가 필요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에만 해도 소는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정의 보물과 같이 취급되었다. 농사짓는 사람과 관계가 형성된 소는 더 이상 그저 그런 소가 아니라 그 가치를 정하기 어려운 한 가정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그 동물을 반려 동물이나 농사에서 이제 그만 놓아주기로 결정을 하면 그 동물은 다시 시장에서 팔리고 사는 그저 그런 동물로 그 신분이 낮아지면서 다시 가치가 결정된다. 이렇게 일부 동물이나 가축은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단지 주인과의 관계만으로 그 신분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어떨까? 우리는 운동선수나 예술인들 또는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 사람의 몸값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가 벌어들이는 돈을 기준으로 몸값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치가 얼마인 삶을 살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 삶의 가치는 그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다른 어떤 것들로 판단하는데, 그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나 종교마다 다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몸값은 그야말로 그냥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나의 몸값을 올릴까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까?”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적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몸값을 올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이를 위해서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물은 우리 인간이 반려의 관계를 맺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동물의 가치를 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듯이 우리 인간에게도 그 어떤 존재와 관계가 설정되는 순간 우리의 삶의 가치가 더 이상 몸값이 아닌 창조자가 의도한 본래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우리들이 요즘 이야기하는 몸값으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면 훌륭한 능력과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은 지극히 불평등한 현실에 대하여 억울할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판단 기준이 몸값이 아니고 다른 가치가 있기에 평범한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럼 그 다른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고, 판단하는 분은 누구일까? 혹시 우리도 고양이나 개와 같이 주인과 반려 관계를 맺는 것으로 그 가치가 달라지듯이 그분과 관계를 맺는 순간 우리의 가치는 더 이상 몸값이 아닌 그분이 정한 가치로 신분 상승이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