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는 자기 나름의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한다. 혼신의 노력이 때에 따라서는 헛된 물그품이 될수도 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하는 것이다. 이 자존심이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원동력이 되는 때가 있다. 별일 아닌것도 자기의 기분이 나빠서 다투는 것을 흔히 본다. 사실 자기가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자기의 양심에 부끄러움도 없다. 다분히 내가 너한테 이런 작은 일로 질 수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다.
흔히들 이야기 한다. 저존심을 건드렸다니 하는 말도 많이한다. 그 사람의 본의도는 이것이 아닌데 마치 그가 의도에 안맞는 행동이나 말을 한것처럼 오해를 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무시당하는 사람은 나도 너만치 할수 있는데 나를 제외한다니 기분이 상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빠져도 가능한데 나의 인격이 무시되는 데 대한 강한 반발심이다.
전화도 친구한테도 하지않는다. 지난번에 내가 했는데 너는 한번도 나한테 먼저 하지않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다. 한국의 정서는 아랫사람이 아니 먼저 전화한 사람쪽이 머 모자라서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것같다.
내가 한발짝 물러서서 양보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리며 하는 말이다. 먼저 양보한 것이 싸움에서 진 것처럼 인식하는 데 문제가 있다. 사실 전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하는 데 사실은 그렇지않다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마 이것은 자기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현실에서는 져준 쪽이 잘못하고 무언가 잘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져준 쪽은 상대에게 떳떳하게 대하지만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무언가 쑥 스러워하는 것을 볼수도 있다.
이기기 위해서 져 준다는 말이 있다. 당장은 모든 손해를 감수하면서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인생이란 모든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곤란한 일이 닥치면 그때는 먼저 고개숙인 쪽에게 비굴하에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있게된다. 인생이란 마라톤과 같은 일이라서 아무도 앞으로 닥칠 일을 알수 없는 것이다. 한번쯤 내가 조금 손해나드래도 아니 자존심이 상하드라도 한번쯤 고개를 숙이고 상대방의 기분을 올려주자. 그도 사람인지라 자기가 깨닫는 때가 오면 오히려 미안해하고 그때부터 고개를 숙이고 들어 올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잖는가.
누구 말마따나 자존심이 밥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을 당해보아야 남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