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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울 수 있다면 선물

by 호박씨

독일 가기 전 시흥동의 외국인은 조선족, 중국인이었다. 조선족 엄마는 취업을 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겼고 그녀의 친정엄마가 두 손녀를 픽업하고 돌보려고 좁은 그녀의 집에 와서 함께 지냈다.

큰 딸은 아들과 한 반이었는데 늘씬한 대륙인의 어린이답게 아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나면 건너편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곤 했다. 파리*게뜨에서 뽀로로 카스텔라나 루피 초콜릿을 대여섯 개 사서 같이 노는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엄마들은 놀이터에 있는 얼굴 아는 애들 숫자만큼 상가 슈퍼나 빵집서 간식을 사다 날랐다.

먹성 좋은 그 아이도 여동생도 잘 받아먹으면 조선족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셨다.


그날은 할머니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날따라 놀이터에 노는 애들이 많진 않았다. 하필 할머니가 사 오신 것은 막대 아이스크림. 쭈삣 엄마들이 모인 벤치 쪽에 다가오신 할머니를 보고 얼른 봉지를 받아 들었다. 나눠주시면 될 터인데 할머니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연신 고마움을 표하고 다 나눠주고 나니 더운 날씨가 야속하게 녹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이 서넛 남아있었다.

봉지를 돌려드리며 민망해 생전 안 먹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까서 먹었다.

"감사해요. 날 더운데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셨다.


국제학교 놀이터에서 조선족 엄마와 할머니를 수백 번 떠올렸다.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독일인들에게 당시의 그녀 정도의 조건일 테니 말이다. 쭈삣 거리며 다가가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적응시키고 싶은 욕심은 한가득이던 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뭐든 악착같이 열심히 할 듯한 표정이던 그 아이 엄마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더라면 국제학교 놀이터에서 난 혼자가 아녔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어린이집에서 스칠 때마다 그녀에게 파이팅을 외쳐줬더라면 놀이터에 혼자 서있던 내게 누군가 말 걸어왔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먼지처럼 한 올 한 올 쌓여 만들어진 나다.


삼성전자 본사가 코앞이라 똘똘해 보이는 인도인 주재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족들을 다 초청한 듯 보이는 날도 있고, 주재원 엄마들끼리 어울려 놀러 나온 날도 있다.

그들에겐 내 도움이나 말 한마디 필요해 보이는 기색이 없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건 내게 선물 같은 천운이라는 사실은 진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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