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 하나 없는 투명한 안전유리 앞에 섰다. 3년 전 무성한 숲을 뒤로한 U-Bahn 우반을 타려고 교외 기차역 앞에 서 있었다. 유리에 비친 모습이 낯설다. 독일서 산 머플러와 경량 패딩, 폭신한 단화까지 같은 차림인데 완전히 다른 배경 속에 서 있는 탓이다.
독일 지하철 우반은 1호선보다 50% 정도 더 낡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에도 기차가 고마웠다. 될 수 있는 데로 기차를 이용하고 살았다. 운전은 해도 해도 낯설고 주차는 늘 어려웠다. 이해하기 힘든 독일 문화에 차를 매개로 소통해하는 운전은 더더 어려웠다.
그러니 낡으면 어떠하랴? 기찻길이 보이는 역 앞 독일 집 위치가 고맙기만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타면 그리 눈치가 보였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차가 있는 독일이니, 기차를 이용하는 이는 저소득층 중에서도 최저소득층.
낡고 지저분한 기차와 허름한 사람들.
어울리는 데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이들이었다.
해맑고 보송보송하고 시끄러웠다. 반짝이는 보석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듯한 불안감이 덮치곤 했다. 나도 편견과 선입견에 똘똘 뭉친 뻔한 젊은 엄마였다.
기차만 타면 잔소리가 심했다. 가만있어라. 말하지 마라. 목소리가 높다. 냄새나니까 뭐 먹지 마라.
평균 기차 이용객이 많지 않은 데다 외곽선이라 기차간은 여유로운 것이 다반사였지만, 눈칫밥을 잔뜩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 때마다 아이들은 반짝반짝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싫어했던 한 가지가 있다면, 낯선 이 옆에 앉는 것. 우반은 4인석으로 두 명씩 마주 보며 앉게 되어있다. 우리 일행은 3명. 빈 좌석에 큰 덩치의 무슬림이나 커다란 키의 흑인이 앉는 일은 흔했다.
누가 옆에 와서 앉으면 벌떡 일어나 서있는 아이들 때문에 무안했다. 4인석에 한 명이 앉아있으면 그 사람 옆엔 내가 앉곤 했다.
"모르는 사람 옆에 앉는 거 싫어!"
영어를 제 말처럼 하고 독일어도 잘하던 아이들은
그런 말은 한국어로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독일 지하철의 가장 낯선 풍경은 검표원이다.
유럽 물가 오른다 했을 때 독일에서 먼저 거론된 것이 교통비. 일괄 정액으로 월 9유로, 1만 2천 원짜리 교통권 카드를 독일 정부가 꺼내 들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터지고 물가난과 에너지난이 겹치자 파격적인 대책을 내민 것이다.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Single 1 day 티켓이 4.6유로, 4500원 선이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검표원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표검사를 하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독일. 독일 답다.
내 돈 내고 당당히 탄 것인데도 검표원을 만나면 표 어디다 뒀더라 갑자기 우물쭈물한다.
까짓 거 표 어디다 뒀는지 잊어먹었으면 벌금 100유로, 15만 원 내면 된다. 그까짓 것.
그런데도 떨렸다.
매표기엔 늘 사람이 없다 보니, 초반 독일어 까막눈일 때는 적합한 요금의 티켓을 산 것인지 미심쩍을 때가 있었다.
검표원을 만나서 이 티켓이 아니라 하면 추가 요금을 더 내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겁을 먹고 지낸 것일까?
남편과 저녁을 먹다, 독일 기차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자신은 독일 기차를 타기 힘들었고 헤매기 싫으니 기차를 포기했다고.
내가 못하겠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을, 결국 나는 다 해내고야 말아야 괜찮은 나라고 여겼나 보다. 독일 지하철 못 탈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수인가.
안되면 십만 원씩 내고 택시 타고 다니면 된다.
안되면 안 나가면 된다.
얘들이 떠들어서 시끄럽다고 하거나 우리를 주목하고 시비 걸었던 독일인은 결국 한 명도 없었다. 시비 건들 응하지 않으면 된다. 시끄럽다고 핀잔주면 알겠다고 하면 된다.
쫄보로 살았구나 싶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도 쫄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낯선 한국에서, 늘 새로워지는 한국의 속도를 바라보며 미리 겁먹고 미리 조심하고 살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지하철을 타든 릴랙스!
지금 이 순간을 춤추듯 즐기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