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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Nov 16. 2022

방사란과 휘낭시에 원가가 한판 붙으면

"싼 계란 쓰면 안 돼?" 

사장님한테 반말 안 하기로 했는데, 쉽지 않다. 여왕의 오후 사장님은 동생이지만, 파티시에다. 물론 지난달 월급은 20만 원 줬지만 월급은 주긴 줬으니까, 사장 맞다. 음료류를 제외한 모든 디저트들을 만드는 이도 그녀뿐이다. 그러니 반말도 그만하고, 재료에 대한 건의도 그만해야 한다. 

계란을 바꿔보면 안 될까 싶다. 20만 원이나 월급을 준다는 게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입장에서는 기특하다. 20만 원 밖에 주지 못한다고 미안해하거나 월세 낼 날이 돌아올수록 예민해져서 초조해지는 그녀를 보면 안타깝고 애가 탄다. 무항생제 유정란 안 쓰고 쿠*에서 제일 싼 계란, 갇혀 자란 닭에서 나온 공장식 달걀을 쓰면 안 될까? 그럼 동생이 더 많이 남기고 더 부자가 되지 않을까? 




동생은 동물을 좋아했다. 엄한 편이셨던 엄마는 동생이 데려오는 동물들에겐 관대했다. 엄마도 사실 그들을 예뻐라 했으니까. 약사인 아버지와 하루 종일 함께 약국에서 근무를 하셨던 엄마는 퇴근이 거의 10시였다. 우리 집에 왔던 어떤 동물도 온종일 혼자 지냈다. 

 요새 '개는 훌륭하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엄마도 동생도 예뻐는 했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해줬는가 하고 질타하곤 한다. 나만 그러했다.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면서 뭐하러 데리고 오나  싶은 사람은 친정에서 호박씨뿐이었다. 있는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줬다고 하는 것이 엄마와 동생이었다. 닭장에 갇힌 닭들이 달걀을 낳는 데에 전 생을 바치고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동생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낳고 동물 복지에 관한 다큐를 보고, 채식을 해야겠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편의 반대로 채식은 포기하고, 지금의 계란 농장을 찾았다. 풀을 먹여서 방사해 키운다는 웹페이지의 설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 세종시에 위치하고 있다기에 직접 신선농장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마침 농장체험 코스를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채식까지는 안되더라도 농장 체험을 빌미로 건강하게 닭을 키우는 누군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동 동물 복지를 지지하는 소비를 하고 살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농장 앞 시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병아리 부화장도 구경할 수 있었다. 제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니던 농장 고양이가 부화장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병아리를 보고 잽싸게 입어 쑤셔 넣었다. 고양이를 귀여워해 주던 딸아이가 순간 번개처럼 야수로 돌변하는 고양이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급하게 병아리를 쑤셔 넣은 고양이의 입은 생각보다 느슨했는지 병아리는 입에서 톡 튀어나왔고, 그 모습에 딸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쓰다듬어 주던 고양이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여왕의 오후를 열며 농장을 동생에게 알려주었다. 아이들과 갔었던 7년 전의 농장 체험 스토리도 자세히 전해주었다. 동생은 농장 사장님에게 사진과 설명을 받고서는 기꺼이 계란을 주문했다. 방사란을 디저트에 사용한다고 홍보해달라며 광고 담당인 내게 배너 디자인까지 부탁했다. 

사람들이 무항생제 유정란을 사용하는 것에 동생만큼 관심이 있을까 싶었다.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은 동생의 감수성을 이해할 이가 얼마나 많을까? 동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고 더 비싼 값을 주고 디저트를 구매할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방사 유정란을 소개해준 것은 나였지만, 창업으로 돌입하니 원가 계산기만 계속 돌아갔다. 

" 배너까지 걸어뒀는데 어떻게 싼 계란을 써?"

약속은 깨질 수도 있는 것인데, 더 이상 방사란을 쓰지 않는다고 말 안 하면 될 것인데 동생은 화를 냈다. 절대 바꿀 수 없다며 제품에 관해서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태세를 전환해서 동생을 설득해본다.

"사장님, 고생하시니까 그렇죠. 더 많이 남겨가시라고요." 

 개업 3개월뿐이지만 그럼에도 손해보지 말고, 동생의 생돈을 쓰지 않았으면 싶은 언니의 마음이라고 설명해본다. 동생도 누그러진다. 

"언니..... 계란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40년을 함께 해온 이가 동생이다. 이 파티시에가 얼마나 동물을 사랑하는지 잘 안다.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잘 안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고 개업을 한 것이지만, 자꾸 언니로 돌아가 아르바이트생의 본분을 잊는다. 그녀를 오래 알아온 남이라 여겨야겠다 싶다. 15년 차 경력단절녀에게 출근할 기회를 준 사람, 집에서 사회로 발을 내딛게 해 준 사람이 동생이다. 고마운 파티시에에게 사업이라고 충고질 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 계란 건은 앞으로도 살살 꼬드겨보긴 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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