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 부부와 밥을 먹게 되었다. 어린 사수는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사와 지난 6월에 결혼해 신혼부부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서 간단하게 회사가 자리한 공용라운지에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곤 하는데, 둘이서 먹는 분위기인지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나는 알아서 빠지는 분위기다. 그런 둘의 점심 자리에 끼어들 기회가 생긴 건 동생의 마들렌 덕분이다.
동생과의 의견 차이를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그녀의 디저트 카페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고 나니 후회가 되어 매달 택배로 구움 과자를 주문하고 있다. 5만 원어치 주문하면, 10만 원어치 보내주니 받는 즉시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회사 출근할 때 두어 개씩 들고나갔다. 사무실 도착할 때면 적당히 촉촉해진 마들렌을 사수에게도 건네어보았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고마워한다. 빵 좋아하는구나, 사수님. '
사무실 바로 앞 성수동 핫플의 잠봉뵈르를 내일 점심으로 먹어볼까요?'
하는 그녀의 메신저 제안에 어른스럽게 대응해야겠지.
' 이사님도 좋아하시나요, 잠봉뵈르?'
그리하여, 그녀의 퇴근 시간에는 솔드아웃인 잠봉뵈르, 심지어 3개를 아침 출근길에 확보하였다. 그들에게 잠봉뵈르를 건네며, 아침에 만들어간 삼각김밥도 한 개씩 내밀었다. 삼각 김밥은 사 먹는 건데 하는 눈치다.
독일에선 으레 삼각김밥, 그냥 김밥, 스팸 무스비는 만들어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뭐 그런 뿐이겠는가? 그립고, 생각나는 음식은 내 손으로 해 먹는 방법 외엔 향수병을 달랠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 셋의 점심 테이블엔 독일 주재원이란 주재가 튀어나왔다.
주재원에 대한 환상은 존재한다. 독일 생활에 대한 기대도 세상엔 만연하다. 그러니, 독일 생활은 어떠하냐고 물은 이사가 기다리는 답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이사에게 독일은 10여 년 전, 긴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그의 반으로 전학 온 학생의 도시락 통이다. 매끄러운 마감의 필기구와 필통이 이사에겐 독일이다. 새롭지만 멋져 보이던 전학생의 독일제 도시락통만큼 독일에서의 삶은 괜찮았을 거라 기대하는 눈치다.
지내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차별과 차이 그리고 돌아와서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 적응의 문제들을 목구멍 저 아래로 밀어 넣어버린다. 경험해보지 못한 이에게 꿈과 환상을 박살 낼 이유는 없다. 무엇이 독일에서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면이었는가 재빠르게 생각해 본다.
" 저와 아들의 아토피가 없어졌어요."
사실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차로 30분이 걸리는 오버오젤의 타우누스 산자락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바다. 가로등도 없는 검은 밤, 발코니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을 통째로 메우던 별빛들을 잊지 못한다. 가끔 아파트까지 내려오던 사슴, 멧돼지, 그리고 옆집 정원을 파헤치던 두더지는 서울내기인 사수 부부에겐 전설 같은 이야기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의 이름에 온갖 동물들과 각종 나무들의 이름이 닿는다니, 이건 겪어본 사람, 살아본 주재원만이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이사가 기다리던 멋지고 풍요로운 독일 생활은 아니지만, 오롯이 우리 가족이 경험했던 독일의 맛을 잠시 전해주니 사수가 이사에겐 주재원에 대한 바람이 컸다고 말하여 준다. 이 젊은 부부에게 아기를 키우기엔 좋은 곳이었다고 전하고 나름의 꿍꿍이를 짜본다.
20여 년 전, 다니던 중소기업은 PDA라는 지금의 스마트폰에겐 할아버지쯤 되는 단말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였다. 회사는 무럭무럭 컸고, 나는 결혼과 함께 박차고 나왔지만 남은 해외영업 팀원들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혜택을 누릴 기회를 잡았다. 유럽 파견 직원이 2명이나 생겼었고, 2명 중 1명인 남자 대리는 식구들까지 모두 프랑스에서 몇 년간 지내게 되었었다.
이사 부부의 꿈에 불을 붙여본다. 이사가 커머스 사업을 부지런히 뛰고, 요새 내가 맡은 인도 영업도 쑥쑥 자라나서, 언젠간 내 눈엔 예뻐만 보이는 이 젊은 부부가 파견을 나가고, 아기를 낳고 키울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 덕에 회사가 커지고 내 연봉도 2배로 올랐으면 좋겠다!
제 아무리 핫플의 촉촉한 바게트와 적당히 짭조름한 잠봉, 그리고 부드럽고 고소한 버터의 하모니여도 불닭소스에 버무린 감칠맛의 참치 소를 넣은 윤기 흐르는 흰 밥의 삼각 김밥은 이기지 못한다. 맛있다더라, 요새 유행이라더라 싶은 잠봉뵈르 한 개를 해치우고도 우리 셋의 배로 삼각김밥 한 개는 오롯이 파고듬이 가능하다.
나라 밖의 삶이 매혹적인 건, 당신이 나라 안에서 가열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봉뵈르 맛은 좋아도, 늙은 인턴이 만든 삼각김밥이 맛있다는 건 당신이 열과 성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의 생활에 대한 환상을 안고 나라 밖으로 나간 순간 내 나라가 그리워진다. 향수병을 부둥켜안고, 참치 삼각김밥을 만들던 어린 엄마 호박씨에겐 그렇했다. 그럼에도, 오늘을 달리고 매혹적인 주재원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그렇게 환상을 품고, 환상이 박살남을 목도하고 또 다른 무지개를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니까 말이다.
사수 부부와의 점심시간에 그들의 젊음을 훔쳐낸다. 그리고 무지개를 그리는 그들의 꿈을 나눈다. 잠봉뵈르, 아니 동생의 마들렌 덕이다. 나누었는데 얻기만 하니, 신기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