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고생이다. 이 말이 옅어지다 못해 흩어져버리는 세상이다. 동쪽 끝의 조용한 나라 국민들은 그런 세월이 언제 있었냐며 섬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여행가지 못하면 잘못 사는 인생인 양 여긴다. 친정 부모님은 이런 세상의 돌아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 전 두 분의 긴장을 역력히 볼 수 있었고, 겨우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 자신감에 기분이 좋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뭔가 해냈다는 기분의 두 사람, 고깐 제주도 왔다 갔다 함에 기뻐하는 두 사람, 이 모든 과정은 잘난 딸 덕분이라고 했다.
기분파인 친정엄마는 어떻게든 이다음 일정을 잡아보려고 마음이 급했다. 마치 굶다가 한 상차림을 차리니 허겁지겁 집어먹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는 친구에게 제주도를 다녀온 자랑을 했단다. 사위가 한 번을 마다 앉고 제주도 사방을 운전해 갔으며, 딸이 여행일정을 잘 짜서 태풍도 피해 날씨가 최고였다고 했단다. 그림 같은 하늘, 엽서 같은 바다,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다 우리 부부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니, 다음은 어디를 갈 거냐고 묻는다. 엄마는 시간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오늘만 살 것처럼, 시한부처럼 내게 조른다. 엄마는 오랜 시간 이 날을 기다렸고 나의 독일 생활 5년과 적응 4년이란 시간 동안 삶의 낙이 없었던 사람 마냥 조급하다.
신경쇠약의 정도가 전보다 한껏 심해진 친정아버지는 걱정과 안도 사이를 넘나 든다. 태풍으로 제주도에 묶인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하나님께 안전한 여행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하신다. 이역만리 독일 간호사나 중동 건설 노동자로 나간 이들의 마음으로 2박 3일의 제주도 일정에 임하는 아빠는 요샛말로 엄근진이다. 보통 엄근진이 아니다. 엄격, 근엄, 진지. 아빠는 이 세 가지중 한 가지라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미래를 계획하고 걱정하며 스스로를 위안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가 설악산까지의 여정 앞에서 운전대를 잡는대에는 아마도 천만번의 한숨과 불안이 있었을 거란 걸 안다. 아빠는 설악산에서의 이틀을 꼬박 새웠으니까. 제주도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다.
두 사람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분노가 떠올랐다. 왜 내겐 이런 일이 일어날까? 도란도란 설악산 숙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가 잘 잘 수 있을까 하고 물으니 엄마는 내가 46년 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서술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간 일이라는 듯이.
입사와 함께 아빠의 공황장애는 극도에 달해 부작용조차 알지 못하는 양약과 엄마가 집에서 장시간 달여야 하는 한약을 10년 동안 거푸 먹어가며 버텼단다. 아빠의 회사생활은 내가 알고 있듯 실수에 의해서, 아빠의 친구가 저지른 사고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중단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사고는 트리거였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아빤 이미 40년 전의 사회생활, 대기업이란 공동체에서 간신히 간신히 일하고 있었다는 걸....
친할머니가 구해온 독한 신경정신과약을 엄마는 몰래 버렸다고 한다. 아빠에게 먹지 말라고 했을 터이다. 그렇게 아빠의 공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젊은 날의 엄마는 30년 후, 화병이라는 이름의 불안증을 앓게 된다. 부부에게 마음의 건강을 함께하는 공동체이기에 한쪽을 위해서 버텼던 정신의 힘을 가진 자는 60에 무너져 내렸다.
부모님에 대한 안쓰러움보다 먼저 내게 떠밀려온 생각은 왜 나를 취업을 시켰으며, 왜 나를 경영학과에 보냈을까였다. 왜? 아빠가 간신히 버티다가 철저히 실패한 직장생활을 나를 통해서 성공해보려고 했던 걸까? 세상을 자신만만하게 헤쳐가는 등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부모가 나에게 그런 기대를 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은 즐거움보단 슬픔이다. 3시간이 채 안 걸릴 줄 알았던 설악산행이었는데, 휴게소도 2번이나 가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도 2번이나 사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강원도 맛집도 들렀다가 오니라 숙소에 도착하니 노곤해졌다. 눈을 반쯤 뜨고 감은 머리를 말라고 있던 내게 엄마는 옛날이야기야 라며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직장생활이 그렇게 힘들었다면, 아빠의 정신을 산산이 부쉈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엄마와 아빠에겐 나와 같은 서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생과 내가 있었고, 집을 사야 했고 월급봉투가 소중했다. 잠을 자지 못하면 출근하기 힘드니 억지로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술을 잘하지 못하면 최대한 먹고 집에 와서 다 토해버렸다. 몸이 허해지면 집에서 한약을 달여 먹여 보내 어떻게든 취직상태를 이어나가게 했다.
이게 뭐야..?
왜 그렇고 살았어?
엄마. 왜 내겐 말하지 않았어?
여행은 슬픔이다.
점심시간 부랴부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 어제 잤어? 뭐? 엄마도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 다 좋았다고? 다음엔 지리산 가자고?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