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에서 돌아와
아버님의 나흘간의 장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서울은 겨울이 되어버렸다.
나의 코로나 격리 기간이 끝나자마자 부산으로 떠난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산책 길에서 나무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아버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 떠난 그의 사정을 나는 뻔히 아는데도 코로나의 무게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남편이 그 답지 않게 자꾸 나를 뒤돌아 보고, 자주 전화를 해댄다.
그러나 나는 이 길에서 오롯이 혼자 치유하고 있었다. 아프신 아버님은 보실 수 없는 이 생명들의 시간을 나는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버님은 밟아보지 못하시는 이 낙엽들의 바삭한 질감들을 나는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맑은 날은 사박거리는 소리를, 비가 흩뿌린 날은 푹신푹신한 느낌을 온전히 느끼면서 나는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겼다. 가족이기 이전에 가까이 곁에 있던 인연이 그 생명의 불이 꺼져가면서 나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간다. 오늘 이 산책길을 걷고 있는 너의 삶에 감사하렴 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르침을 산책길 걸음마다 새겨내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나에게 이제 낙엽들은 죽음과 같아 보인다. 두 손으로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상자에 다 담기는 뼛가루처럼 산책길을 밝히던 빨갛고 노란 낙엽들은 바닥을 덮을 만큼 수북해져 이제 그 시작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신발보다 땅에 더 가깝게 바짝 붙어 있는 낙엽들은 죽음이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는 이제 가지들 사이로 훤히 초겨울 하늘이 보일 만큼 텅 비었다. 산책길 초입에서 내가 느낀 것은 무無였다.
바람이 차가워 한겨울 패딩을 걸쳐 입었더니 금방 몸이 뜨듯해지고 등을 따라 슬 땀도 난다. 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열기가 더해진다. 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와 텅 빈 나무들은 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내 곁에서 사라진 인연도 나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니 말이다. 산책을 마치자 나에게 떠오른 것은 영원한 삶이다.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 기억 속에서만 살 수도 있지만, 글로 새롭게 남겨질 수도 있다. 오늘 남기고 있는 이 글로 나는 영원히 읽히며, 늘 이 속에 살아 현재형으로 남을 수 있다.
디즈니의 '코코'속 영혼들은 이승에서 영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줄 수록 점점 투명해지고, 종국에는 사라지고 만다. 자, 여기 그의 영혼을 영원히 기억해 줄 글을 남긴다. 가을의 끝에 바닥 수북이 쌓인 낙엽들은 내년 봄 새싹으로, 여름에는 창대한 이파리로 영생을 산다. 아버님이 투명해지시지 않도록 남편은 아버님을 추모공원에 모시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이름을 명패로 단다. 그리고 나, 글쟁이는 나의 방법으로써 그가 사라지지 않게 이 하얀 여백에 한 자 한 자 그의 영혼을 기록한다. 코로나, 격리, 죽음, 장례식. 2021은 글 거리가 넘치는 파란만장한 해이기에 나의 글을 풍성하게 해 주며 글쟁이로 성장시켜주고 있는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