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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수영장 물 베기

식사시간에는 읽지 말아 주세요.

by 호박씨

독일 수영장 물은 따뜻하지 않다. 생존 수영을 배움에 있어서 물 온도가 강이나 바다와 같은 온도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독일 오기 직전 세월호 사건으로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는 수영 수업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큰아이의 아토피가 심해 수영장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능한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도고 파라다이스를 갔다. 내가 물려준 아토피란 생각에 온천 수영장을 가기 전보다 부드러워진 아이 피부를 보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독일 수영장은 물 온도를 올리지 않으니 염소 냄새가 덜하다. 염소 소독을 덜해서인지 수영 강습을 받아도 큰아이 피부가 괜찮다. 물 온도가 차니 겨울철 실내 수영장 온도는 높은 편이다. 독일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걱정이 된다는 핑계로 외투만 사물함에 벗어두고 핸드폰만 가지고 어린이 탕앞 타일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독일어 교재에 부록으로 딸린 녹음파일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 두었다. 외울 때까지 듣겠노라 마음먹었으니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듣는다. 따스한 수영장 공기며 적당한 습도, 독어는 몰라도 강습에 익숙해진 아이들. 모든 것들이 평화로우니 눈이 감긴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독어 음원은 자장가가 된다.


그런데, 머리가 왜 이리 간지러울까? 독일어 자장가도 이겨낼 정도의 가려움이다. 수질이 다른 독일 물에 적응한다고 독일 오자마자 예민한 나의 피부는 두피는 물론이고 온몸이 가려움증으로 고생했다. 한바탕 가렵고 났으니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발생한 것인가 보다. 적응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아이들은 냉탕에서 50분 강습 중이라 입술이 파래졌는데, 졸다가 머리나 벅벅 긁는다면 꼴이 흉할 것 같다. 샤워실 옆 화장실에 들러 머리도 긁어보고 잠도 깨본다.


국제학교의 소통채널은 메일과 페이스북이다. 영어로 오는 메일은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미국계 학교지만 학교 운영은 독일스러운 면이 커서 1년의 행사가 매년 변동 없이 되풀이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연도부터는 학교 일정에 적응이 되면서 쏟아지는 메일도 중요도에 따라 선별해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Lice 주의에 대한 메일을 받은 날이었다. Rice를 잘못 썼나 했다. 반복해서 읽어보니, lice가 몇개 학년에서 발견되었다고한다. lice를 발견한 경우의 대처방법을 상세히 알려준다. 머릿니가 맞다. 언제 적 '이'란 말인가? 7살 즈음에 어디서 옮아온 이인지 모르겠으나 고생했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이' 자체에 대해서 징그럽다고 생각했고, 내 피를 빨아먹은 '이'에 대한 생명적 취급은 전혀 없이 물리쳐야 할 원수처럼 여겼다. 엄마가 어렵사리 구해온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 주었었다. '이'가 동생과 나에게서 엄마에게까지 옮겨가 뒤늦게 당황했던 엄마의 표정도 떠오른다.


'이'는 위생 상태와는 상관없다는 의견이 크다. 그러나 학교의 미국인들이나 주변 독일인들의 생활양식을 보면 한국인과는 다른 위생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위생 개념의 차이가 여전히 이들 사이에서 '이'가 생존하게 만드는 것일테다.

이웃 한국인이 독일어 시간 앞에 앉으신 할아버지의 머리를 타고 내려오는 이를 보고 기겁을 하셨단 이야기를 해주신 게 엊그제였다. 아이들보다 큰 개를 키우는 집이 한집 건너인 독일이다. 개를 매일 산책시켜야 하는 법 또한 있는 것이 독일이다. 산책시키고 난 후 어른만한 개를 매일 목욕 시킬 리가 없다. 반려동물로부터 오는 '이'나 진드기 따위의 벌레도 많을 것 같다. 독일이 한국보다 선진국이지만 위생 선진국은 아니라는 것으로 분석, 판단, 이해하고 있었다. 때때로 오는 국제학교의 전체 메일에서 Lice주의보를 읽으며 독일 위생에 대한 나름의 이론은 거듭 검증되고 있었다.


두 아이들은 촉감에 예민하다. 작은 아이는 머리카락에 예민한데, 머리카락이 가늘기까지 해 엉키기 일쑤였다. 빗질을 하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려서, 아이의 머리는 까치집인 날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미용 비용이 저렴하니 한 달에 한번 정도 아이를 데려가 바가지 스타일로 깎아주곤 했는데, 독일은 미용실만 가면 20유로, 아이 머리 깎이는데 우리 돈 3만 원이 드니 자주 가긴 힘들었다. 앞머리는 독일 슈퍼에서 미용가위를 사서 잘라주고, 뒷머리는 중단발로 길렀다. 문제는 머리 빗기였는데, 한국인 절친이 마법의 빗을 알려주어 머리 빗기의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마법의 빗이란 디탱글러, 즉 엉킴 방지 빗을 부르는 딸아이만의 유아어다. Knot Genie라고 머리에 터번을 쓴 지니가 엉킴을 아픔 없이 풀어준다는 문양이 빗 정면에 새겨져 있다. 독일에는 흔한, 가늘고 긴 금발이라면 낫지니가 유용하겠다 싶다. 절친의 추천에 따라 아마존에서 딸이 좋아할 만한 핫핑크로 주문했다. 그야말로 마법을 부리는 지니였다. 반짝이는 핫핑크 빗으로 아이 스스로 머리를 빗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 머리를 빗겨주는데 아이의 머리 뿌리에서 3cm 정도의 위치에 일정하게 하얀 비듬이 붙어있다. 건조한 날씨니 그런가 싶다가 얼굴이 달아올랐다. Lice 일 것 같다. 균등하게 줄지어 있으니 머릿니 알인 것 같은데 아니었으면 좋겠다.


둘째를 데리고 등교 시간보다 10분 일찍 갔다. Nurse room에는 우리 집에서 500m 정도 거리의 라인 하우스에 사는 독일인 간호사 할머니가 출근해 계신다.

" 머리가 검은색이라 착각한 거야. 검은 머리는 비듬이 잘 보여."

다행이다. 나의 촉보다 간호사의 권위를 믿고 싶다.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머릿니가 아닌 것으로 판정이 났으니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보건실에서 나와 교실로 향하다 옆반 한국 아이 엄마,가자미씨랑 마추졌다. ( '수능날이 생일인 딸에게' 글에 등장하시는 가자미씨입니다.) 오늘따라 이 엄마의 가자미 눈매가 매섭다. 머릿니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스친다.

교실 문의 안과 밖에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옷걸이가 설치되어있다. 안쪽 걸이는 가방걸이용, 바깥 걸이는 겉옷을 거는 용도이다. 국제학교 유치원은 매주 숲으로 산책을 나가는데, 비가 잦은 독일 날씨 때문에 우비와 방수 바지는 필수라 바깥 걸이는 부피가 있는 잠바, 우비와 바지 덕분에 복잡하다. 아이들의 잠바들이 맞닿아 걸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도 코팅된 잠바들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테다. 학교는 '이'의 온상이었고, 한 아이가 '이'가 생기면 며칠씩 격리조치되었다. 딸아이 머리의 흰 점은 비듬이 확실한 것일까?


다음날은 주말이라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나섰다. 주차장 남편 차 앞에서 머리를 격렬 하게 긁고 있는 작은 아이가 보인다. 심상치 않다. 아이의 머리를 뒤집다 '엄마이'와 맞닥뜨렸다. 그간 비듬으로 오해받았던 그녀의 알들은 그녀와의 만남으로 정체가 드러났다. 이렇게 태연히 쓰고 있지만, '이'를 발견한 그 순간에는 이의 생김새를 보며 영화 에일리언을 떠올릴 만큼 공포스러웠다. 그래도 호박씨는 엄마가 맞나 보다. 공포보다 큰 것이 분노였다. 감히 딸의 피를 빨아먹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니. 찰나에 잡아 손가락으로 짓눌러버렸다. 운동신경이 안 좋은 편인데 그때는 순발력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외식은 무산되고 남편을 채찍질해 한국인 소아과로 갔다. 소아과는 진료시간이 아니라 문이 닫혀있었다. 소아과 옆 약국에 가 머릿니용 빗, 샴푸 2통을 샀다. 비싸다. 독일인 약사는 샴푸가 독하니 눈에 안 들어가게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두 통이나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강력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내 '이'를 향한 증오심에 불타는 호박씨의 눈을 보더니 순순히 내어주었다.

할 일이 많다. 아이 침구와 웃옷을 세탁한다. 아이 머리를 감겨준다. 서캐를 빗으로 제거한다. 빗으로 제거 안되는 것은 손으로 띠어낸다. 밥도 안 먹고 휘몰아치듯 반나절동안 일을 하니 남편과 아들은 없는 듯 가만히 글리고 조용히 있었다. 남편에게서 당황함의 기운을 느꼈다. 일처리 속도를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듯 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겼다. 바로 내 머리다. 아이 머리를 빗겨주다 보니 나의 가려움이 생각났다. 나도 분명 옮아 왔을 테다. 그래서 수영장에서 못 견디게 가려웠구나. 남편에게 빗으로도 제거하지 못하는 서캐를 손으로 머리카락에서 떼어달라고 했다. 남편의 동공 지진이 보인다. 안 해줄 생각이구나 싶다.


'엄마이'에게 쏟아졌던 분노보다 더한 것이 그에게 쏟아졌다. 낯선 일에 그는 왜 행동하지 않을까? 가장 난처한 순간에만 도움을 청하는 호박씨임을 그는 아직 모른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내가 청하는 도움은 희소함과 절박함을 띤다. 그 자신도 도움 청함에 능숙하지 않다. 그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캐는 제거해야 한다.


결국, '이'를 향한 집념과 분노에 동감하지 않는 남편 덕에 남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싶었다. 생각나는 이는 한 명이었다. 마법의 빗, 낫지니의 추천인이다. 언니가 부르던 그녀와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 머리카락에 붙은 서캐들도 독일어 수업에 함께했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언니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았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녀의 점심 식욕조차 방해한 셈이다.

'이'스토리를 들은 그녀도 동공 지진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점심 식사 후 독일 집 거실에서 서캐를 제거해주었다. '이'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속도 가볍고, 그 덕에 점심도 잘 먹은 호박씨는 오래간만에 비추는 독일 햇살을 맞으며 거실 바닥에 앉아있다. 서캐와 씨름하는 언니를 대하기 민망해 그간 이와의 전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머릿니 샴푸가 독해도 서캐는 안 떨어진다는 둥, 남편과 아들은 이가 끓지 않아 다행이라는 둥, 집안 이불보와 베겟닛을 두 번씩 세탁해 댔다고 연신 주절댔다.


이의 한자는 '슬보蝨甫'다. 슬기로운 보물의 줄임말이라도 되는 냥 예쁜 단어로, 부르면 입 끝에서 부드럽게 터진다. 슬보 덕분에 남편은 절친 인증에서 탈락했다. 슬보 덕분에 호박씨는 강해졌다. 그리고 슬보 덕분에 마법의 빗 언니와의 인연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었다.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하는 성격은 남의 나라 살이를 고되게 한다. 도움을 청하지 못하면 주재 생활은 고달프다. 내 손에 죽어간 엄마 슬보에게 조의를 표한다. 당시에는 슬보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못하여 이렇게 글로 남긴다.


P.S 이 글을 읽으시는 동안 머리가 가려우셨다면 그건 호박씨의 글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없으십니다. 걱정 마세요. 한국에서 이가 자취를 감춘 지는 오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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