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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ug 29. 2021

아들 키우는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곤충과의 동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앞마당에는 지렁이들이 온 데서 꿈틀거렸고, 방 안 형광등 아래엔 하루살이가  모여들었. 배추 애벌레는 귀엽다고 생각할 정도로 뱀과 벌 - 딱 한 번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왔던 박쥐 -  제외하면 그다지 무서울만한 물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도시에서 산 지 3년쯤 됐을까? 언제 시골에서 자랐냐는 듯 벌레만 보면 기겁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잡아 온 곤충은 놀이터 풀숲의 콩벌레였다.  역시 어릴 때 자주 잡고 놀았던 곤충이었다. 그런데 이젠 아이들이 콩벌레를 잡아서 보여주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이런 나에게 나조차 놀라면서도 차마 그 벌레를 만져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런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빠와 캠핑을 함께 다니며 개구리, 메뚜기, 여치, 사마귀 등 눈앞에서 풀쩍이는 모든 곤충들은 잡아왔다.

아이들이 잡은 사슴벌레 암컷이다

  사슴벌레 역시도 아이들이 캠핑장에서 잡아왔다. 이때까지는 늘 잡은 곤충을 풀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두 녀석이 그날따라 떼를 썼다.

엄마, 나 진짜 사슴벌레 꼭 키우고 싶어요. 집도 내가 치우고, 먹이도 내가 줄 테니까 제발요, 네?!


하아... 아이들이 스스로 돌보겠다고  하는 말은


내가 학교(유치원) 가고, TV 보고, 게임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밥도 먹고, 하고 싶은 거 싹! 다 하고, 그런 다음에도 시간이 남아서 너무너무 지루해지면 그때 한 번 잘 지내는지 보기만 할게요

라는 뜻이다. 어디 한두 번 속아야지! 이번에는 절대 안 속으리라!! 그래서 나는 정말 너희가 키울 마음이면 사슴벌레 키우는 방법 - 사육장, 먹이, 수명 등등 - 을 공부해서 엄마에게 얘기해보라고 하였다. 다 대답할 만큼 공부했다면 키우겠다고. 얼마 전에 앵무새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얘기했더니 2분 만에 포기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17분 정도 되는 유튜브 동영상을 일시정지까지 해 가며 아주 꼼꼼하게 스케치북에 메모하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내가 싫다고 못 키우겠다고 발을 빼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자고 나는 조건을 저렇게 달았을까, 키울 마음도 없었으면서! 

암컷 사슴벌레를 위해 인터넷으로 마련한 사육장



그렇게 키우게 된 사슴벌레. 그런데 이번에는 수컷이 없다고 다음 여행에서는 수컷도 잡아오겠단다. 남편은 참나무에 바나나를 살짝 묻히면 사슴벌레가 냄새 맡고 몰려든다며, 다음 여행에 바나나를 꼭 챙기라고 했다. 아이들도 여행 가기 전에 나에게 바나나를 챙겼는지 계속 물어봤다. 어째 분위기가 영 나 빼고 대동단결인 듯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남편과 아이들은 수컷 잡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바나나 냄새를 맡고 몰려든 건 사슴벌레가 아니라 민달팽이와 개미들이었다. 이 나무뿐만 아니라 저 나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계속 사슴벌레가 나오는지 살펴보고, 또 살펴보고 있었다. 이쯤 되니, 갑자기 가족들에게 미안해졌다. 저만큼이나 좋아하고, 키우고 싶어 하는 걸 곤충 싫어하는 나 하나 때문에 가족들이 그간 못 하고 참아왔구나...




결국 수컷 사슴벌레는 인터넷으로 샀다. 자연에서 잡아온 암컷과 달리 수컷은 낮에도 톱밥에서 빠져나와 있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야행성인 녀석이 낮에도 자주 나오는 걸 보니 뭔가 서글펐다. 아마도 이 녀석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느 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사육장에 갇혀 살다 보니 야성을 조금조금씩 잃었을 것이다. 우리가 키우는 암컷 사슴벌레의 새끼들도 그렇게 되겠지?


누에가 고치에서 탈피하고 나외자마자 짝짓기를 했다

아이들의 조름에 누에를 나방으로 키워 보낸 지 한 달 여도 되지 않았다. 그때 나방이 된 누에들을 숲에 풀어주었는데, 아쉽게도 뽕나무는 없었다. 누에들은 나방이 되자마자 짝짓기를 하고, 수십 개의 알을 낳았다.  처음엔 누에 10마리만 거둬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수백 개의 생명 유기한 셈이다.

앞으로는 그 새끼까지 키울 자신이 없다면 어떤 생명도 집에 들이지 말아야겠다

이 생각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또 사슴벌레를 집 안에 들이냔 말이다.


벌써 2주가 돼가는데도 난 아직 사슴벌레에 적응 중이다. 먹이 그릇에 핀 곰팡이를 보고 씻어주려고 꺼내다가 그릇 아래에 있던 사슴벌레를 보며 기겁하고, 바퀴벌레 같이 생긴 저 녀석을 왜 그리 키우고 싶어 하는지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런 나를 억지로 사슴벌레와 가까워지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 키우다 보면 저 곤충이 어느 순간 아이들 눈처럼 멋져 보이는 때가 오지 않을까? 바라건대 곤충은 이제 더는 그만 집으로 데리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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