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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ug 25. 2021

청귤청, 그리고 이웃

소소하지만 끝없는 이야기

  인터넷에 청귤 예약판매 글이 올라왔다.

  매번 이웃에게 얻어먹기만 하는지라, 이런 때야 말로 보답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이웃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청귤청을 내가 담기도 전에, 이웃이 먼저 우리 집에 갖다 줄 테니까!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청귤이 도착했던 날은 하필 우리가 캠핑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급한 대로 냉장고에 청귤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산더미 같은 캠핑 짐 정리와 더불어, 밀린 숙제 같은 청귤이 냉장고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하지 않으면 신선한 청을 담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해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청귤을 씻어 물기를 말리고, 병을 소독하고, 설탕과 각종 도구들을 꺼내놓고는 본격적으로 청귤청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슬라이서 채칼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았다. 는 기분이 아니라, 톱날로 끊어내는 느낌이랄까? 마음은 급한데 칼날이 무뎌져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 그냥 칼로 썰지 뭐!


  청귤을 칼로 썰고 있으니 9살 큰 아들이 와서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본인도 청귤 주스를 만들겠다며 옆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는, 청귤을 반으로 잘라 즙을 다. 그걸 지켜보던 7살 둘째 아들도 재미있어 보였는지 컵 하나를 들고 와서는 마찬가지로 자리하고는 즙을 내고 있었다.

내게는 아주 큰 살림 이벤트인데, 너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소꿉놀이구나!


  그렇게 열심히 자른 청귤과 설탕을 반반씩 섞어 병에 담았다. 백색 설탕보다는 갈색 설탕이 몸에는 낫다기에 갈색으로 담으니, 색깔이 영 먹음직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맛은 있겠지?!

  후다닥 만든 청을 이웃에게 나눠주니 벌써 청귤이 나왔느냐며 반가워했다. 안 그래도 자기 집 꼬마가 이제 청 담을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며, 청귤청 담자고 했다는 이웃도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주지도 못할 뻔했다.

  분명 청귤청을 나눠주고 왔는데도 집으로 돌아올 땐 나갈 때보다 더  손이 묵직해져 있다. 내가 준 것보다 받아온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소소한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불러오고, 그 나눔 또한 다른 나눔을 불러온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올해는 그렇게 청귤청을 2번 담았다. 예약판매로 산 것과 이후에 한 번 더. 올해 청귤청은 이것으로 끝내려 한다. 부디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에 청귤청이 보탬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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