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이웃에게 얻어먹기만 하는지라, 이런 때야 말로 보답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이웃보다 내 손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청귤청을 내가 담기도 전에, 이웃이 먼저 우리 집에 갖다 줄 테니까!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청귤이 도착했던 날은 하필 우리가 캠핑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급한 대로 냉장고에 청귤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산더미 같은 캠핑 짐 정리와 더불어, 밀린 숙제 같은 청귤이 냉장고에서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하지 않으면 신선한 청을 담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해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청귤을 씻어 물기를 말리고, 병을 소독하고, 설탕과 각종 도구들을 꺼내놓고는 본격적으로 청귤청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슬라이서 채칼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았다. 써는 기분이 아니라, 톱날로 끊어내는 느낌이랄까? 마음은 급한데 칼날이 무뎌져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 그냥 칼로 썰지 뭐!
청귤을 칼로 썰고 있으니9살 큰 아들이 와서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본인도 청귤 주스를 만들겠다며 옆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는, 청귤을 반으로 잘라 즙을 냈다. 그걸 지켜보던 7살 둘째 아들도 재미있어 보였는지컵 하나를 들고 와서는 마찬가지로 자리하고는 즙을 내고 있었다.
내게는 아주 큰 살림 이벤트인데, 너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소꿉놀이구나!
그렇게 열심히 자른 청귤과 설탕을 반반씩 섞어 병에 담았다. 백색 설탕보다는 갈색 설탕이 몸에는 낫다기에 갈색으로 담으니, 색깔이 영 먹음직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맛은 있겠지?!
후다닥 만든 청을 이웃에게 나눠주니 벌써 청귤이 나왔느냐며반가워했다. 안 그래도 자기 집 꼬마가 이제 청 담을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며, 청귤청 담자고 했다는 이웃도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주지도 못할 뻔했다.
분명 청귤청을 나눠주고 왔는데도 집으로 돌아올 땐 나갈 때보다 더 손이 묵직해져 있다. 내가 준 것보다 받아온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소소한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불러오고, 그 나눔 또한 다른 나눔을 불러온다. 마치'뫼비우스의 띠'처럼.
올해는 그렇게 청귤청을 2번 담았다. 예약판매로 산 것과 이후에 한 번 더. 올해 청귤청은 이것으로 끝내려 한다. 부디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에 청귤청이 보탬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