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해변에 누워 남프랑스를 느끼다
드디어 남프랑스에 도착했다. 오래전부터 미뤄뒀던 남프랑스 자유여행을 실행했다. 아들과 셋이 함께였다. 아들은 호주에 살고 있다. 가끔 여자 친구가 없을 때는 우리와 휴가를 맞추고 현지에서 만난다. 이번에도 아들이 니스에 먼저 도착해 공항에서 우리를 마중하기로 했다. 니스 공항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우리나라 어느 작은 공항보다 시골스러웠다. 그래도 니스니까 공항 시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 러브 니스’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트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낯선 지중해의 향기가 느껴졌다.
에어 비엔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해변은 걸어서 10분 정도 가야 했다. 숙소 주변은 해수욕장 상권으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복장이 자유분방해서 온 동네가 해변 같았다. 즐비게 늘어선 식당에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골목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해변에 도착했다. 말로만 들었던 지중해의 중심 니스 해변이다. 오후 여섯 시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바닷가는 한 낮이었다. 햇살은 아직 강했고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었다. 동양 사람들은 보기 힘들었다.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니고 자갈밭이었다. 눈부시게 멋진 여성들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별천지에 온 기분이었다. 당장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일정상 다음을 기약하고 해변을 산책하며 들뜬 분위기만 즐겼다.
해변을 한 바퀴 도는데 피곤이 엄습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다. 모두 그렇게 느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첫 식사라 기대가 됐다. 프랑스는 영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주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들 덕분에 무난하게 주문이 가능했다. 나도 음식주문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아들에게 맡겼다. 나는 연어스테이크, 집사람은 지중해식 샐러드, 아들은 사슴고기를 주문했다. 앞 접시를 요청해서 나눠먹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일인 1 메뉴를 먹는다. 세 명 정도 나눠먹을 피자를 한 사람이 먹고 있었다. 나눠 먹는 것은 테이블 매너가 아니라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각각의 음식을 맛봐야 했다. 와인도 한잔 했다. 프랑스에 왔으니 식사에는 와인을 곁들여야 한다. 평소에 아내에게 와인의 유익한 점을 설명했었다, 요즘은 막걸리 대신 와인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다. 이곳 프로방스 지역에는 로제와인이 유명해서 로제와인으로 한 병 주문했다. 우리 가족도 이제 와인 한 병을 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교육의 효과를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기분 좋은 상태로 숙소에 들어왔다. 모두 피곤해서 바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내일 일정은 고성이 있는 중세도시 에즈에 가는 날이다. 잠을 잘 자고 가뿐한 마음으로 내일의 일정을 시작하고 싶었으나 모두 잠을 설쳤다. 주변이 여행객들로 너무 시끄럽고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밤새 큰 소리로 울어댔다. 니스의 첫날밤은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에즈는 산꼭대기기에 있어서 버스로 한참을 올라갔다. 내려서도 꽤 오래 좁은 길을 올라갔다. 중세 도시를 느낄 수 있는 골목들이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최종 목적지는 선인장 공원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비탈길을 올라가니 선인장 공원이 나왔다. 수많은 선인장들이 세월을 말해주듯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꽃이 활짝 핀 선인장도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어디를 찍어도 그림엽서감이 될 것 같았다. 유럽은 소매치기가 많아 카메라를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했다. 이런 때 필요해서 카메라를 샀는데 소매치기가 무서워 안 가져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싶어 가져간 것이 다행이었다. 힘차게 셔터를 눌렀다.
배가 고팠다. 점심 먹을 식당도 검색으로 찾아갔다. 평점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앉아 있으니 역시 한국 아가씨들이 옆자리에 앉았다.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봤던 아가씨들이다. 평점을 보고 찾아오니 같은 장소로 모이는 것이다. 장소는 비좁았지만 재미있는 식당이었다. ‘올리브’라는 식당인데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인아저씨가 올리브를 테이스팅 하라고 했다. 모든 테이블에 동시에 여러 가지 향이 나는 올리브를 재미나게 소개했다. 설명을 마치고 티스푼에 조금씩 따라 주었다. 10가지 정도를 테이스팅 했는데 맛도 좋았지만 아저씨의 제스처나 설명이 너무 재미있어 손님들 모두 손뼉 치며 좋아했다. 장인의 포스가 느껴졌다. 음식도 맛있었다. 짐이 될까 봐 올리브는 사지 않았다. 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내려올 때는 니체의 산책길로 내려왔다. 니체에 좋아해서 그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 버스 대신 그 길로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내체가 에즈에 머물면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처음에는 산책길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라 싶게 생각했는데 많이 가팔랐다. 우리는 내려오는 길을 택해서 그나마 다행인데 올라가는 사람들은 힘들어 보였다. 남자들은 웃옷을 벗고 고행하는 스님들처럼 힘겨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니체는 이 길을 걸으며 ‘영원회기’ ‘운명애’ ‘초인’ 등의 의미를 사색했을 것이다. 힘겨웠을 성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니체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내려오니 지중해의 드넓은 바다가 비단결처럼 펼쳐졌다.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영감을 떠올렸을까? 나도 니체의 기를 받아 삶의 영감을 얻고 싶었으나 고통이 부족했는지 날씨가 너무 덥다는 생각뿐이었다. 니체의 숨결을 느낀 것만으로 가슴이 충만했다.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니스 해변에 몸을 담글 시간이 왔다. 준비를 마치고 해변으로 향했다. 천막을 살 수도 있고, 해변 위에 큰 타월을 펴고 누워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천막을 이용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해변의 빈자리에 타월을 깔고 자리 잡았다. 집사람은 수영을 못해 자리를 지키며 선탠을 하기로 하고 둘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고, 아들은 수영을 좋아해서 둘이는 신나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지중해 바다는 차갑지 않고 미지근해서 낯설지 않았다. 고향처럼 포근했다. 지중해 바다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쳐다보는 기분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한참을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람은 솔솔 불었으나 춥지 않았다. 헤엄을 치다가 힘들면 배영으로 떠 있으면 편안했다.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도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 보다 바다 위에서는 우리가 주인 같았다. 그 사람들은 선탠을 주로 하고 물속에는 오래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지중해 주인 역할놀이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가 니스에서 마지막 날이니 고기를 구워 먹자고 했다. 숙소 앞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 고깃집이 있다. 등급이 제일 높은 스테이크용 등심을 샀다. 와인 숍에서 교황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또네프 드 파페’라는 레드와인도 한 병 샀다. 마트에서 버섯 등 야채도 샀다. 숙소에 취사시설이 돼있는데 생각을 못해서 마지막 날에야 요리를 직접 한 것이다. 아들이 요리를 했다. 소금만 뿌린 최고급 등심에서 나오는 진한 질감의 육질과 바디감은 풍부하지만 부드럽고 깊은 여운으로 혀를 감싸는 와인의 환상적인 페어링은 여기가 남프랑스임을 일깨워 주었다. 저녁은 매일 이렇게 먹었어야 했다며 아내는 몹시 아쉬워했다. 그렇게 니스의 마지막 밤은 지중해의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