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이븐 Apr 29. 2022

타인의 결핍이나 실수를 유머 거리로 삼는 화법

사실 그건 실수도 결핍도 아닌 경험이었다는 것…

나에게 있던 정말 좋지 못한 습관 하나가 있었다.

타인의 결핍이나 실수를 유머 거리로 삼으며 놀리던 습관이다.


근 몇 년간 나의 이 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좀 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하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해왔다.

이 습관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고민하다 해답을 가족 모임에서 찾았다.


바로 우리 아버지께서 이 화법을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지인 분들이나 형부와 같이 우리 가족이 아닌 타인을 만날 때면 대화의 분위기 띄우고 재미를 조성하고자 나의 과오를 들추는 화법을 즐겨하신다.

예를 들어, 나에겐 엄청나게 창피스러운 일인 고등학교 시절 전교회장 선거에서 꼴찌 표를 받았던 일이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정말 지치지도 않고 남들에게 웃으며 전하신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엄청난 분노도 피어오르지만 오르지만 제일 큰 감정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창피함, 수치스러움이다.

아무리 싫다는 표현을 해도 저 농담은 그치시질 않는다.

그저 아버지에겐 하나의 좋은 유머 거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저 이야기로 분위기를 고조시키셨는데 그때도 어김없이 내 창피함이 올라왔고 난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창피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다다른 결론은 아버지가 줄곧 해오던 이 화법과 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는 사람들과 그 모든 상황들이 나가 내 자신을 창피하게 느끼게끔 만들어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난 그때 그 시절 전교회장으로 뽑히지 않았을 적 별로 창피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겨우 몇 표를 받았고, 꼴찌를 했음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한 말을 그 순간부터 장난거리로 삼아 내가 33살이 된 지금까지도 신나게 놀리며 나를 작게 만들고 창피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나도 내 자신을 실패하고 창피한 사람이라 여기게 만든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게 되니 그동안 느껴왔던 창피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난 그저 결과와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행한 용감한 학생이었고, 회장 선거를 준비하는 동안 친구들과 모여 함께 팸플릿도 만들고 선거공약도 만들던 재밌는 추억들을 아직 가슴속에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아버지의 화법을 통해 느껴온 이 안타까운 감정들처럼 나도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똑같이 무심코 우스갯소리라 던진 화법에 상처받은 타인들도 분명히 존재할 거라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먹먹하고 미안하다.


앞으로는 좀 더 나의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고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자라고 다시 상기시켜주는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의 열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