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안산 둘레길을 걸었다. 한 자리에 변치않고 있어 가지 않아도, 보지 못해도, 계절마다 숲으로 둘러 쌓인 곳. 북한산의 바람이 가슴으로 흐르는 곳. 가파를 것도 없는 길을 조금 오르면 데크로 연결되어 메타세쿼이아길의 호젓함을 맛보는 2시간 정도의 산책을 나는 몹시 좋아한다.
가을이 손짓하며 부르는 월요일. 친구들과 약속된 장소에서 난 조금 일찍 도착하여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렸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더위를 피해 헉헉 거리지 않는 아름다운 날.
서재필 박사와 유관순 열사의 동상도 보며 잠시 어두웠던 과거를 돌아보았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금의 풍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피와 땀을 흘리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모았다.
세란병원 뒤의 동네 맛집에서 조금 늦은 점심으로 전주비빔밥을 먹고 평소 다니지 않던 길을 찾아 인왕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신선했다. 우리는 숲 속 쉼터에서 자리를 잡아 책도 돌아가며 읽고 노래와 오카리나를 합주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멋진 하루를 보냈다. 하늘의 선물은 계속 되는 듯 예기치 않은 길고 긴 황톳길을 동무 삼아 걸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에 아쉬움을 담아 가성비 좋은 영천시장의 순대와 튀김과 떡볶이를 곁들인 막걸리 딱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돌아왔다.
다시 피어나 내 마음 한 곳을 밝혀주던 꽃무릇의 붉음을 담는다.
사찰에서 탱화 재료로 쓰인다는, 꽃잎이 거미줄처럼 퍼지고 꽃술이 길고 하려 하게 뻗어 있는 꽃. 우리가 혼동하는 상사화와는 다르다. 상사화는 잎이 진 뒤 꽃이 피나 꽃무릇은 꽃이 진 뒤 잎이 돋는단다. 개화 시기 또한 다르다고 한다.
만나니 반갑던 꽃.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고맙던 꽃 . 피어나며 노을을 생각하게 하던 꽃. 나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던 꽃.
나는 꽃무릇이 피는 가을이 참 좋다. 안산 둘레길의 편안한 숲길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