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만났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 내리던 오후에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생소한 두 사람이 오랜 세월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처럼 가슴에 남아 여운을 남겼다. 대한민국에서 80년 대 중반을 살았던 이웃집 청년이었을 수도 있고 희박한 가능성으로 나와 피를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한국인 영호. 다른 분은 독일인이며 세계적인 신학자 몰트만 박사.
우리에겐 참 다양한 인생의 크레파스가 놓여있다. 어떤 색으로 바탕을 입히고 어떤 색을 선택하여 덧칠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완성된 그림은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그리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마감의 그날은 또 언제일까.
영화 박하사탕을 보았다. 꿈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한 사나이가 절규하며 달려오는 기차 위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아직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젊은 날.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나이 40. 반전으로 다가 올 수도 있는 남은 생을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칠흑의 어둠으로 마감한 그를 보며 나 또한 캄캄한 나락 속으로 빠져든 느낌이었다. 아픔이었다.
어릴 적, 인생은 무지개 빛으로 내게 다가와 주인공인 나는 동화 속 왕자와 공주처럼 행복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터팬처럼 아름답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현실은 너무나도 상상 밖이다. 가끔은 황당한 소원조차도 들어주는 지니나 우렁각시가 나타나 쨍하고 해 뜰 날을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일까. 시련을 주시돼 감당할 만큼만 주시면 안 되는 것일까.
독일에서 먼 길을 오신 노학자는 93세라고 했다. 오르내리시는 계단이 보기에도 힘들고 숨찼다.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의 포로로 수감생활을 하고 신학자의 길로 들어선 분. 강연이 시작되기 전 그날 모인 우리들 모두는 앞으로 아마 이 세상에선 다시 그분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는 사회자의 말에 공감하고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생각을 갖고 경청한 2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이 살아낸 세월이 ‘나 돌아갈래’ 라며 떠난 영화 속 주인공의 삶 보다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지극히 각별하며 특별하고 참으로 다양한 인간의 삶을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겠느냐만. 안타까운 마음에 박하사탕의 주인공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쉽게 생을 마감한 다른 이들의 생명을 생각해본다.
노 교수님이 젊은 날 감옥의 창살에 갇혀 지내며 절망으로 계속된 날들의 연속에서 발견한 것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체험했다. 시작 가운데 성취의 약속을 믿게 되고 희망의 미래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어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목적과 당위성을 깨닫해 주는 책을 쓰셨다.
나는 문득 권정생 님의 강아지 똥을 기억한다. 전혀 쓸모없다고 믿던 강아지 똥은 버려진 그것이 빗물에 흙 속에 녹아들어 아름다운 민들레를 피우지 않던가.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 누군가에게 가슴을 열어 나가면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저 스며드면 되는 것이다. 내게 늘 등대의 카드를 보내주고 여행 중엔 작은 등대 모형을 구입해 전해주는 분이 있다. 외딴섬에서 홀로 고독과 함께 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한 가닥 실 같은 희망을 품게 해주는 등대. 현재보다 미래를 보게 해주는 믿음직한 존재. 살면서 등대를 갖고 살자. 그래서 포기하지 말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존재하는 것이 꽃피우는 것이다. 꽃이 지나간 자리엔 때가 되면 열매를 맺지 않던가. 나이가 든다고 사랑하는 이가 나를 떠난다고 때로 폭우가 쏟아져 앞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자. 견디며 새로운 희망을 품자. 열정과 꿈의 무지개를 그리자. 그리고 다가올 기쁨을 기대하며 남은 도화지에 붉고 푸른색을 입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