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다녀와

by 김인영

캠핑을 다녀와


사소한 일상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탓에 만나 함께 밥 먹는 것이 어렵게 된 날들의 연속이다. 친구의 2박 3일 일정의 캠핑 소식을 접했다. 일주일 후 여고 동창과 함께 남편들을 앞세우고 강화를 찾았다. 고려산 자락에 위치한 연개소문이라는 캠핑장 입구에서 미리 도착한 친구들의 환영을 받았다.

눈앞에 자리한 탁 트인 벌판 덕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저물어 가는 태양을 지켜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에 누리는 자연과의 해후였다.

베란다에 유배되어 빛을 잃고 먼지 묻어 탁한 꽃이 아닌 산속에 피어 흔들리는 봄꽃을 보고 새삼 경탄했다.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니 눈이 따가울 만도 하련만 매운 연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불 앞에 모여 앉는다.

푸짐하게 장만해온 야채를 이것저것 겹치고 풋마늘을 올려 쌈을 싸고 구수한 된장찌개를 입에 털어 넣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살아온 이야기도 들었다. 못 만난 세월 만큼 우리가 걸어온 길은 달랐다. 여고 시절에 꿈 많고 순수했던 날은 이미 너무 멀리 떠나왔고 더구나 남편들은 초면인 그 자리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풀어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 아들과 딸을 두고 온 타국에서의 힘들었던 날들을 담담히 회고할 수 있는 것은 지는 해와 더불어 불어오던 봄바람 때문이었다. 실가지 사이로 지나는 바람은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지 기억에서 지워버린 망각의 방의 자물쇠도 풀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봄에 부는 바람은 부드러우나 뿌리를 흔들어 죽어있는 생명을 깨우고 대지를 살리지 않는가.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다가옴으로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바람 속에서 어마어마한 의식을 치른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준비해 간 시집을 돌아가며 시를 읽는 시간을 갖었다. 각자의 모양과 속도와 감정을 이입하여 읽는 시간은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

액자에 넣어 간직하고 싶은 순간. 세월 지나도 다시 열어 보고픈 상자 속의 보물. 그 밤은 바로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저무는 태양 아래서 시를 읽으며 오래 보아야 예쁜 풀꽃도 생각하고 아름다운 만남도 그렸으며 1988 년 시인의 올림픽도 참가했다. 그리고 이젠 눈에서 멀어진 다만 가슴속에 영원히 꽃으로 남아있는 나의 어머니도 수국에 담았다. 아 그날 그 자리에는 깊은숨과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느림이 있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며 알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숲 속에 텐트를 치는 친구 부부의 마음을. 상상컨대 비록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땅에 밀착한 밤을 보내고 호흡하며 신성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스며드는 평화와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그곳엔 가난한 마음이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조금 더 숲 속 나무들의 색이 깊어지면 과수원이 있는 곳에 짐을 풀고 플라타너스 그늘 속으로 평안을 찾아 다시 떠날 친구 부부가 부럽다. 그리고 그 밤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남편들이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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