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원의 행복

by 김인영

지금 일어나는 일. 일어날 수 있는 일. 언젠가 일어났던 일.


때로 행복했고 조금 아쉬웠으며 생각만 해도 입가가 올라가는 일. 그런 일상이 되풀이되는 아침 나는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1번 2악장에 담긴 우수에 젖은 서정성 가득한 느림의 시간을 즐기며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가노라면 며칠이고 계속 나타난다는 넓은 평원을 상상한다.


상상은 또 하나의 상상을 잉태한즉 이제 내게 5만 원이 주어졌다. 나는 좋은 기분으로 곰곰이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생각해본다. 차라리 1만 원의 행복이 쉬웠다. 아무 망설임 없이 몇 개의 떡을 사서 우리 부부의 아침을 우유와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양말 두어 켤레 집어 들어 많이도 혹사시킨 내 발을 감싸 준다는 신통한 생각도 한다. 하지만 손에 쥔 5만 원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차라리 조금 더 많은 돈을 가졌다면 쉬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담아 늘 그렇듯이 나의 마르타인 남편에게 묻는다. 그는 주저함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장만하겠다고 정답을 말한다. 주변의 지인들은 주로 맛있는 것으로 행복을 산다고 답했다. 영화. 옷. 책. 가방. 찜질방 가기. 교통카드 구입. 어떤 이는 그냥 통장에 넣겠다고 말하며 다양한 얼굴처럼 각자의 모습과 취향대로 씀씀이를 알려주는 정다운 이들과 차를 마시며 쉼을 갖은 오후.


그럼 정작 나는 무엇으로 5만 원을 사용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아마 교보에 들러 신간 서적과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살핀 후 한 권의 책을 사들고 위층에 자리한 파리 크롸상에서 샌드위치를 집고 커피를 마시리라. 그리고 가을볕을 즐기며 흥국생명 빌딩에 있는 시네큐브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새로 단장한 광화문 광장에 내게 허락된 자리가 있다면 잠시 앉아 있겠다. 아직 남은 돈이 있으니 내킴 김에 인사동으로 발을 옮겨 북촌 칼국수 집에서 겉절이 김치와 따끈한 칼국수를 먹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전히 내 주머니에서 나오기를 원하는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변이 소란스러워 오전에 마음껏 즐기지 못한 커피 한 잔을 안국동 어니언에서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이 계획은 내가 평소에 보내는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신선하지 않다. 내게 하늘에서 떨어진 귀한 것이니 정말 귀하게 써야겠다.


산소 같은 손자 손녀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 19개월의 손자는 스티커를 좋아한다니 1년 동안 사방에 붙여도 남을 만큼 충분히 구입하여 보내고 싶다. 그리고 작고 사랑스러운 녀석처럼 예쁜 블루와 옐로 그리고 레드 색깔의 미니카도 사서 곱게 포장하여 할머니로부터 ~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보내리라. 송료를 포함하면 5만 원을 넘겠으나 사랑의 포장으로 물건만을 구입하는데 50.000원을 아낌없이 쓰겠다.


늦게 보아 더욱 소중한 손녀 차례이다. 2달이 채 안되어 인간 세상이 낯설기 만한 그 앙증맞고 귀한 아이가 백일을 맞을 것이니 아기 천사에게 꼭 맞는 날개옷을 사주고 싶다. 요즈음은 백일 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전해 들었지만 상차림을 떠나 2022년 10월 17일 새벽에 우유병을 입에 문채 내가 보낸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횡재한 50.000원이 조금 아쉬웠던 마음이 든 것에 이유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두 천사가 내게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늦게 만난 만큼 오래오래 사랑해주며 지켜볼 시간도 줄었다고 생각하면 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더욱 건강을 신경 쓰는 우리 부부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것이 기도 제목이 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은 엄마 초년생인 큰 딸은 내게 말한다. ~엄마 저는 지금 이 순간은 전처럼 운동하고 전화로 실컷 수다를 나누고 그리고 잠을 푹 잘 수 있는 시간만이 필요해요.라고.


생각지 않은 돈이 생겨 잠시 이리저리로 바빴지만 결국은 버리고 갈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물질과 더불어 나누는 사랑.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건강과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느새 음악은 바뀌어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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