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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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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10. 2023

3편 / 2화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

아침이 밝았다. 현성은 웬일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는 미친 의사를 눈으로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때마침 저쪽에서 가벼운 손인사와 눈인사를 남발하며 유유적적 걸어오는 미친 의사가 보인다.


"오~ 나이롱 일찍 일어났네?!"

"아니! 지금. 그렇게 여유로울 때예요? 얼른 경찰서에 신고해야죠!"

"그건 내 일이 아닌데?! 내가 왜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그리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어떻게 신고를 하냐! 생각 좀 하고 말해~ "

"아니 그럼 그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요!"

"할아버지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안 오셔서 이장님께 연락드렸어. 그래서 빠른 시간에 발견되시고 병원으로 가셨어. 생각보다 많이 다치신 것 같진 않으니까 걱정 마"

"그건 다행인데! 얼른 잡아야죠 그놈을!! 계속 러고 다니다가 누굴 또 죽게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어! 그래서 오늘 저녁에 바로 갈 거야. 지체할 사안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준비해."

"네!! 오늘은 그럼 8시에 잘 까요?"

"아니.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9시에 자! 내가 짜 놓은 스케줄 맘대로 바꾸지 말고. 아, 그리고 약속 한 9시에 꿈을 안 꾸면 오늘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자~"


미친 의사의 마지막 말이.. 다른 일이 있을 거란 것인가? 궁금하였지만 역시 답을 들을 일이 없으니 그냥 저녁이 되어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서둘러 노트를 꺼내 어제 본 모든 상황을 적어내려 갔다.



2023년. 4월 12일

피해자. 족발집 아들, 자전거 탄 할아버지             가해자. 김태형


이 사람은 두 번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 번은 신호를 지키지 않고 과속으로 운전하다 사거리에서 족발배달을 하는 착한 대학생 형과 사고가 났습니다. 그 형은 그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습니다.

두 번째 잘못은 시골길을 운전하고 가던 김태형은 어두운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할아버지와 사고가 났습니다. 본인이 사고를 낸 것을 알고 내려서 확인도 했지만 119 신고도 안 하고 그대로 운전을 하고 가버렸습니다.

이 두 사고 모두 음주운전으로 낸 사고입니다.


찰칵! 전송.


'접수완료'








약속한 저녁 9시.


"오늘 아니고 내일 일을 했음 싶었는데.. 역시 괜한 기대였네."


한껏 눈을 날카롭게 뜨고 저 뒤에서 빨간 정장의 미친 의사가 걸어오며 말한다.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하다.


"오늘 일과 내일 일이 달라요?"

"응. 많이 다르지~ 내일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본인이 한 선택이니 나는 오늘 알려줘야겠네.. 이런 일은 나도 하기 힘든데 말이야.."


평소와 다른 미친 의사의 말에 나까지 불안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감히 예상도 하기 싫었다.





불길한 나의 예상은 역시나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곳은 장례식장이다. 영정사진엔 6살 정도의 정말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못한 채 축 늘어진 모습을 한 아이의 아빠가 넋을 잃고 아 있다. 그 아이의 아빠는 다름 아닌 김태형이었다.


조문객들마저 침울한 표정을 하고 한쪽에선 눈물을 훌쩍이는 사람들도 몇몇이 보였다.


"아휴....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세상에.. 불쌍해서 어떡하니..."

"이야기 들었죠..? 세현이.. 음주운전 뺑소니라고...."

"아니. 거기가 CCTV도 있고 그런덴데.. 어째 아직도 못 잡고 있는 걸까.."

"요 며칠 천둥번개 때문에 카메라고 뭐고 다 망가져 있었다잖아요... 참.. 하필 그런 때 사고를 당할게 뭐람..."

"사고날도 비 때문에 도로가 파인곳도 있고 해서 차단돼있었다는데.. 그날 거길 어쩌다 간 거야 대체..."

"애기엄마가 가게차린 다고 그 앞에 상가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잖아요~ 비 때문에 침수돼서 가게 상태 보러 갔다가 이것저것 챙긴다고 정신없을 때 애 혼자 밖에 나가는 걸 못 봤다나 봐..."

"그래서 지금 애기엄마는 어딨 어요? 안 보이는데.."

"사고현장에서 애기랑 병원 와서는 애기 저렇게 단 이야기 듣고는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아직도 병실에 있는 거 같더라고요.... 정신 잃을 만 하지.. 결혼하고 임신이 안돼서 시험관도 몇 번을 하고 힘들게 생긴 애라던데..."

"얼른 엄마 아빠가 정신을 차려야지.. 어떻게.. 저러다 줄초상 치르겠어.."



사람들이 나눈 이야길 들으니 나까지 침울해지고 있었다.


"김태형 저 사람.. 안 돼 보이긴 하네요... 그렇죠?"


나는 미친 의사를 뒤돌아 보았다. 장례식장 앞에 까지는 분명 늘 입고 다니던 빨간색 정장과 은색의 머리칼이었는데 어느 순간 조문객들처럼 검정 수트로 변해 있었다. 손엔 국화꽃이 한송이가 들려 있었다. 이내 미친 의사가 조문을 위해 안으로 들어선다. 인기척을 느낀 상주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상주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목례를 하고 국화꽃을 헌화한다. 그리고 이내 둘은 마주 선다. 미친 의사의 표정에는 아무런 온도가 없다. 화가 났다거나 슬프다거나 안타깝다거나 하는 그 어떠한 감정들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힘없는 목소리로 상주인 김태형이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저희 아이 마지막길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뵌 적이 없는데 혹시 저희 아이와 어떤 인연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요. 댁의 아이와는 전혀 인연이 없습니다. 전 당신과 인연이라면 인연이지요."

"네..? 죄송하지만 전혀 누구신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당신이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 하였던 큰 잘못을 지켜봤고.. 이후 시골 도로의 할아버지의 사고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죠.."


잘 못 들은 건가 싶은 표정으로 김태형은 다시 미친 의사를 바라본다.


"내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본다 한들 전혀 기억은 안 날 겁니다. 나 혼자서만 당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 애써 기억하려 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의 이 일들이 단순히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난달 당신의 죗값을 대신 치러줬다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어린 자녀가 이렇게 허탈하게 간 데에는 당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젊은 어린 날. 철이 없었다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 역시 그런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터이니. 당신의 아이를 이렇게 한 사람 역시 20대의 젊은이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 청년의 앞날을 생각해서 선처해 주세요.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닙니까?"

"그.. 무슨..."

"당신은 지금 모든 것이 기억이 났을 겁니다. 내가 당신의 무슨 잘못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당신은 충분히 기억이 났어요. 혹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큰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본인의 무서운 죄를 기억도 못한다면.... 난 당신이 한 번은 바로잡길 바랐습니다. 그랬다면 아이가 떠나가는 일까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 모든 일은 당신의 잘못이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마저 잡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군요. 사고 수습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길가에 둔 채 지나간 그 밤. 할아버지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연세가 있던 터라 골절된 허벅다리는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치료비는 어떻게 했을까요? 다리를 다치신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더 이상 하실 수도 없으셨습니다. 당연히 소득이 없으셨겠죠? 보험하나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시느라 어떤 날은 병원도 가질 못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된 것 같아서요. 또한 그 자식들은 어땠을까요? 아버지의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실망을 하며 자책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치료 한번 속 편히 못 받으신 아버지께 죄송해합니다. 못난 자식들이라며 아직도 제삿날이면 눈물을 흘립니다. 이 일에 잘못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버젓이 따로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잘못이 전혀 없는. 가족이란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자기 자신을 불효자라 부르며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에 큰 돌덩이를 안고 아직도 살아가고 있죠.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아버지 가게일을 도와 배달일을 하던 그 대학생의 인생은요. 그리고 착실히 대학에 다니며 아버지를 돕는 착한 아들을 보며 그간 잃어버렸던 아들을 이제 찾은 거 같아 행복을 느끼시던 그 학생의 아버지는 어떠셨을까요. 그 아버지는 아직도 고요함만 맴도는 집에서 소주 한잔에 아들을 그리워합니다. 아들이 방황하던 그 시기에 혼내기만 했던 본인의 잘못을 자책하면서요. 좀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한 본인의 무뚝뚝한 성격을 탓하며 지난 시간들을 그리워합니다. 가게일이 끝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서 공부하던 아들에게 배달 그만해도 된다고. 이제 들어가 공부하란 말 한마디 못했던 자신을 자책합니다. 아들의 삶은 뺏은 건 다른 사람인데 본인이 그렇게 만든 상황인 것 같아 본인의 처지를 아직도 한탄하며 살아갑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말들 하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남은 여생을. 앞으로 10년 일지 30년 일지 모를 그 시간 동안. 그렇게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사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힘겹게 힘겹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당신의 잘못하나 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지어준지 당신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사고의 가해자는 절대 잡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도 잡히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말이에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어떻게.. 그런 이야길 제게.."

"나의 존재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린 자녀는 당신이 사죄하면 사죄한 만큼 훨씬 좋은 부모에게 인도할 예정이니 아이의 다음생 역시도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김태형을 뒤로한 채 우리는 그곳을 뒤돌아 나왔다. 미친 의사는 다른 날과 다르게 얼굴에 슬픔이 보인다. 어린아이를 보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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