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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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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11. 2023

3편 / 3화

잘못을 바로 잡았었다면.

아침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7시도 안 된 시간이다. 아직 주무시고 있는 다른 환자분들이 있어 조용조용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온다.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하나 꺼낸다. 의자에 앉아 한 모금 마셨을 무렵 미친 의사가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음료수만 마시고 있다.


힘겹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제 꿈을 안 꿨었다면... 오늘은 어떤 꿈을 꿨을까요?"

"만일 어제가 아니라 오늘 보러 갔었다면.. 아마 그 아이는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을 거야. 뺑소니 범도 잡을 수 있었을 테고.."

"왜 결과가 달라지는데요?"

"자수를 하고 할아버지의 치료비를 부담했었다면 그만큼 마음 아픈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사과를 했을 거니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사자와 가족들한테 든 미안함 때문에 자수를 하는 거지 않겠어? 사고가 났던 현장은 우리가 봐서 알잖아. 범인을 검거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곳이라는 걸. 본인이 절대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사죄를 위해 자수를 하는 걸 테니 그는 분명 용서를 받았을 거야. 그런데 그 기회마저 잃은 거지.. 어찌 됐는 아이의 사고는 피할 수 없었을 테지만 아이를 잃을 일까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좀... 안타깝네요.. 늦게 라도 자수를 했었다면 좋았을 덴데.."

"그날도 분명 그 친구가 운전대를 잡는 걸 말린 이가 있었을 거다. 그 말을 무시하고 잘못을 저지르다니.. 그 말만 잘 들었어도..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임마! 너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도 귀 담아 듣고 해! 너한테 도움 주는 귀한 분일지도 몰라."

"갑자기 불똥이 왜 이리 튀어요!"

"들어가! 잠이나 더 자!"


이내 자리를 뜨는 미친 의사. 난 의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침을 먹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 무료함에 나는 휴대폰을 열어 친구에게 톡을 보낸다.


'야~형님 문병은 안 오냐~?? 오라고 해야 오냐?'

'아침댓바람부터 뭐야. 야. 난 학교 다니는 학생 아니냐. 겁나 바빠~ 숙제가 겁나 많아ㅠㅜ  안 그래도 주말쯤 가려고 그랬다~'

'어. 그래 수고하고. 올 때 닭꼬치나 좀 사 오고.'

'그려 알았어. 연락할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 봤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지금까지 단짝인 친구.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고 있지만 늘 등하교와 PC방까지 함께하는 친구다. 내가 처음 병원에서 의식이 없을 때 자주 왔었다는데 구라인 것 같다. 난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 미친 의사가 나에게 한 이야기 때문에 이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 같다. 나에게 유일하게 쓴소리도 잘해대는 친구. 가끔은 엄마 같고 아빠의 빈자리도 채워주는 듯한 친구. 잔소리대왕이라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버렸었는데 그래도 늘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바르게 지켜주는 친구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이 친구의 잔소리도 귀담아 들어 봐야겠다. 미친의사의 말처럼 나한테 도움을 주는 귀한 분일지도 모르니까.




4월의 중간. 봄의 싱그러움이 점차 더위에 가려지는 듯하다. 옛날의 사계절은 정말이지 뚜렷했는데 요즘은 마치 두계절의 나라가 된 듯. 짧은 봄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다. 봄이 주는 아름다운 온도와 푸르름. 여름의 건강한 푸르름과는 다른 지켜주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나무들의 새 순들. 그 계절 속에 있을 땐 미처 모르고 있다가 지나간 뒤에는 좀 더 만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 늘 내 옆에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 우리는 시간들과 많은 사람들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 옆에 존재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실로 소중하고 값진 것이란 것을. 떠나간 뒤 부재에 대해 후회가 들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나의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선. 후회가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용서를 구하는 타이밍도 적절할 때가 멋지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자수를 해야 할 때를 놓쳐 소중한 자녀를 잃은 김태형처럼. 세상은 돌고 돌아 나에게 반드시 돌아온 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바로 그 이치를 잊지 말라는 창조주의 뜻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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