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Mar 04. 2023

가족 간의 소송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인걸요.

내 인생 드라마는 끝이 없네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버스정류장 근처의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집은 우리가 모아놓은 돈과 외할아버지께 빌린 돈을 모아 작은 땅을 샀습니다.

그곳에 조립식 건물로 만든 방 4칸과 거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입니다.

거실은 큰 통창하여 마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버스 타기도 쉽지 않은 시골 안쪽동네에 살면서 불편한 점이 많아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함께 살 집이었습니다.

집이 다 지어질즈음 할머니는 많은 약을 드신 후 어찌할 세도 없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겁니다.

할머니 발인 때 버스를 타고 새집의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그동안 살던 동네에 비하면 정말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곳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마지막 터전이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고등학생이 됐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 신도시 계획이 발표가 됐습니다.

그간의 고생이 조금 보답을 받나 보다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값이 오를 테니까요.

좋은 소식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또 터지고 맙니다.

외할아버지께 빌려 산 땅이 땅값이 오를 테니 외가식구들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유산의 일부이니 팔아서 형제들과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친척들은 우리 집을 경매로 넘기기도 하여 합의금을 쥐어주면 취하하기를 여러 번...

형제들과의 합의는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합의금을 받아도 또다시 말을 바꾸니 그렇게 끝이 없는 싸움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죽어 마땅하다는 협박문자와 밤늦은 시간까지도 이어지는 협박전화는 생활이 힘들 정도였고.. 

전화벨소리에 공포를 느끼는 엄마는 다시 또 병원을 다니시며 약을 드셔야만 버티실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싸움은 우리 생활에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싸우는 일이 많아지시고 매일밤 전화를 붙들고 우시는 엄마의 모습도 많이 보아야 했고..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상황을 지켜보느라 밤늦게까지 우리들도 잠들지 못한 채 밤을 보낸 뒤 아침에 일어나

어제일은 모르는 척 아무 일 없었던 듯 또 하루를 지냈습니다.

4년여를 소송으로 시간을 허비한 듯합니다. 하지만 내가 체감하기엔 10년 이상 긴 싸움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1년처럼 길게 길게 살았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저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갑니다.

수학여행 때 쓰라고 받은 용돈을 모아 친구와 서울로 쇼핑을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학여행지에서 음료수 한 캔도 두 명이 함께 사서 나눠먹을 정도로 용돈을 아끼고 아꼈습니다.

드디어 수학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은 친구와 서울을 갑니다.

15만 원 정도의 돈으로 즐거운 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말인 내일. 입을 옷도 코디를 해두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날새벽.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외가댁의 소송문제로 자주 다투시던 시기라 오늘도 싸우시나 보구나. 싶어 뒤척거리고 있었습니다.

내방 밖에서 아빠의 큰 목소리가 들립니다.

"OO야!! 얼른 일어나!!!! 얼른!!!!"

무슨 큰일인가 싶어 화들짝 일어나며 방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그 순간 뜨거운 매캐한 검은 연기가 나를 덮치며 온 방 안으로 퍼졌습니다.

내 힘으로 방문을 연 것이라기보다 검은 연기가 한꺼번에 들이치며 열린 듯합니다.

연기를 피해 반대편 창문을 두드리며 밖으로 소리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아빠!! 아빠!! 살려주세요!!!!"

아버지는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셨습니다. 그리곤 팔을 넣어 저를 꺼내주셨습니다.

여름날밤. 얇은 옷차림을 한 터라 날카롭게 깨어진 유리창으로 빠져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제 몸에는 단 두 곳만 유리창에 찢어진 상처가 있었습니다.

반면 저를 밖으로 꺼내주신 아버지의 오른쪽 팔은 여기저기 찔리고 찢긴 상처들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딸 나올 때 유리창에 배라도 찔려 큰 상처가 날까, 본인의 오른팔로 저를 받쳐 들고 꺼내주신 겁니다.


제가 나옴과 동시에 거실에 있던 큰 통창이 펑!!! 소리와 함께 우리 집은 불길에 휩싸이고

조립식 패널로 지은 집이라 전소가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가 도착하고 아버지와 전 응급실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찢어진 팔을 치료하시고 10군데 정도 봉합을 하셨습니다. 저도 팔과 다리에 입은 상처를 소독하고 몇 바늘 꿰맨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 집이 또 없습니다.


그리고 더 암울한 것은 불이 난 뒤. 임시방편으로 2개의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외가와 싸우는 소송은 아직도, 앞으로도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들과 나눠야 할 몫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했으니 천벌을 받은 것이란 말들도 함께 들어야 했습니다.




이전 07화 산속의 작은 집. 그곳이 우리 집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