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선희 책여울 Nov 15. 2023

나를 닮은 식물을 찾아서

호프자런의 랩걸을 읽으며


"땅에 떨어진 낙엽들을 모아 관찰하면 그것들 하나하나는 모두 밑동 부분에서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게 잘린 것을 볼 수 있다.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것은 고도의 연출이 필요한 작업이다. 먼저 엽록소가 잎맥과 가지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좁은 세포다발 뒤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모르는 신비스러운 이유에 따라 정해진 날이 되면 이 세포다발들에서 물이 빠지면서 약하고 바삭바삭해진다. 이제 이파리는 자신의 무게만으로도 꺾여서 가지에서 떨어질 정도가 된다. 나무 한 그루가 1년 내내 쌓아온 공든 탑을 모두 무너뜨리고 버리는 데에는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 1년에 한 번씩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몇 주 사이에 모든 것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호프자런 랩걸 _140


눈부신 글이다! 호프자런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과학으로 궤도 변경했으니 통섭의 과학자라 할만하며 그래선지 필력이 대단하다. 자신이 연구하는 식물에 대한 사랑이 깊고도 넓어 모든 길이 그 안에 있음을 은유로 보여주는데 페이지마다 진지하면서 아름답고 가끔 웃음을 선물한다. 출판사는 책에 대한 애정을 잔뜩 보여준다. 그리하여 랩걸은 책꽂이에만 두기 아깝다. 예쁜 표지에 끌려 책을 빼들면 두께가 상당한데도 아주 가볍다는 느낌이다. 글씨 폰트도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개발한 아리따 글꼴로 퍽 예쁘고 정갈하다.


어디서 날아든 버드나무 새싹. 호프자런은 라푼젤 같다고 했다.



랩걸을 읽으며 나랑 닮은 식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버드나무는 머리를 풀어헤친 라푼젤 같다고 했다. 우리 집 마당 연못가에 싹을 틔운 버드나무가 얼마나 예뻤는지 알고 있는 나는, 나랑 버드나무를 비교해 봤다. 어디서나 씩씩하게 뿌리를 내린다는 점은 나랑 닮았지만 거대한 버드나무와 조그만 나는 시작부터 같지 않아 아쉽지만 땡!! 혹시 버들마편초를 아시는지 여쭤본다. 버들마편초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피고 지길 반복한다. 야리야리 큰 키지만 유전적 도플갱어들이 어느새 일가를 이뤄 웬만한 비바람에도 꺾이질 않는다.


버들마편초는 나비를 부른다. 긴 꼬리 제비나비는 친구다.

옅은 보라색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리 지어 보랏빛을 발사하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장미처럼 첫눈에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봐도 봐도 처음처럼 설렌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꽃 중에 나는 버들마편초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나 뿌리를 쑥쑥 내리며 병나지 않고 서리 내릴 때까지 꽃을 피우는 버들마편초를 닮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꽃 이름 버들마편초는 유감이다. 버들까지는 좋은데 마편이 문제다. 아편이라고? 오해의 소지도 있다. 그래도 버들마편초를 알게 되면 꽃의 매력에 금방 빠질 거라 생각한다

지난주 버들마편초 정리해서 주차장 옆 텃밭에 씨 뿌렸다. 내년엔 우리 동네에 버들마편초 잔치가 열리겠다. 동네 어르신들 우리 집 지나시며 버들마편초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겠지. 벌써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시간을 담기에 충분한 1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